축도, 목사만 할 수 있나
축도, 목사만 할 수 있나
  • 신성남
  • 승인 2016.06.15 12:24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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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권'의 허상
신성남 집사 / <미주 뉴스앤조이>

요즘 '축도'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있다. 그것을 '축복의 기도'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순히 기도가 아니고 '축복의 선포'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전통적으로 유럽의 개혁 교회들은 예배의 마지막 순서로 민수기 6장 24­26절 제사장 아론의 축도를 주로 사용하였고, 영국 성공회에서는 빌립보서 4장 7절을 사용했다. 그리고 한국교회와 일부 개혁 교회들에서는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을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가장 널리 사용된 축도는 아론의 축도라고 한다.

아무튼 '기도'와 '선포'가 그럼 어떻게 다른가 물으니, 축도를 단지 기도의 일종으로 분류한다면 장로나 집사 등 누구나 축도할 수 있는 반면에 만일 선포로 볼 경우는 말씀의 설교권을 지닌 목사만이축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즉 축도는 단순히 기도가 아니라 '성경 말씀을 선포하고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에 목사만이 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결국 이 문제는 다시 설교권의 문제로 연결되고 있다.

'말씀 선포'는 목사의 전유물인가

그러면 과연 설교는 목사만의 전유물일까. 물론 교회가 일반적인 질서를 위해 일정한 자격과 조건을 지닌 목사에게 공적 예배의 설교를 하도록 한 것에 대해 나는 별다른 이의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매우 적절한 조치라고 본다. 무질서하게 아무나 나서서 설교하면 분명히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누가 "반드시 목사만 설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설교가 무엇인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사역이다. 원칙적으로 전도에 별다른 제한이 없는 것처럼설교에도 특별한 제한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설교가 주로 믿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데 비해, 전도는 단지 그 대상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사도바울의 설교 중 일부는 사실상 전도였다. 전도 역시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선포하는 일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전도할 때에 꼭 '전도권'을 받아야만 할 수 있나. 물론 아니다. 같은 원리로 일반 성도들도 이미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기쁘게 선포하면 왜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진정 모르겠다.

아니면 신학교에 가서 성경과 신학을 몇 년 배우고 안수 한번 받고 교단의 자격증을 받으면 갑자기 영적 신분이 상승하여 다른 성도들에게는 없는 무슨 특별한 선포권이 저절로 생기는 것일까. 만약에 그렇다면 개신교 목사가 가톨릭 신부와 무엇이 다른가.

이는 마치 안전 운행을 위해 "오직 영업용 전문 기사만이 승용차를 운전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만큼과도한 논리다. 오히려 나는 소속 공동체가 인정할 정도로 은사를 지닌 성도는 필요시 설교해도 좋다고 본다. 신학교 졸업장이나 목사 자격증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좋은 예가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 했던 세계적인 설교자 '무디(Dwight L. Moody)' 선생이다. 그는 목사 자격증이 없었다.

사실 '축도권'이란 말은 그저 신학적 미사여구로 포장된 또 하나의 교권주의적 신조어일 뿐이다. 성경 어디에도 목사가 하나님의 대리자라거나, 또는 오직 목사만이 축도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 한글 성경엔 '축도'라는 용어조차 아예 없다. 이는 영어 성경도 마찬가지다. 어학적으로도 축도란 그냥 '축복 기도'를 줄여서 부르는 말일 뿐이다.

본래 중세 교회 축도의 기원은 미사 시간에 사제들이 행하던 '기복 의식'이다. 그래서 이는 소위 성직자 그룹의 교권을 강화하기 위해 이방 종교의 무당이나 주술사들이 행하던 제사 의식을 복제하여 교회 안으로 들여온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축도를 '강복'이라고도 하는데 '복을 내린다'는 뜻이다.

만약 축도가 진정 성경적 기원을 가진 것이라면 차라리 성경에 나오는 용어를 사용하여 'blessing(축복)'이라고 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굳이 'benediction(축도)'이라고 하는 이유는 로마 가톨릭의 사제 '베네딕토'가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기 위해 축도라는 의식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과거 종교 개혁을 한 개혁자들은 중세 교회의 잘못된 교리와 계급적 성직 제도와 종교 의식 등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그 일부를 그대로 가지고 나왔다. 그래서 로마 교회에서 임명한 사제들만이 축도권을 갖는 것처럼, 아직도 상당수 교회에서는 목사만이 축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개신교의 강단은 성도를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정규 신학교는 커녕 아무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던 갈리리의 어부들도 설교했다는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신약 교회에서는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다. 개신교에 성도보다 더 높은 영적 계급이나 신분은 따로 없다. 따라서 성도들도 필요하면 당연히 설교하고 축도할 수 있는 것이다.

본래 이 '설교'라는 용어 역시 한글 성경에 없던 단어이다. 다만 나중에 나온 번역본들에서만 일부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이 이고니온의 회당에서 전도(설교)했는데 '개역개정역'에서는 그 사실을 단순히 "말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행14:1). 회당의 전통과 관례에 따라사도들이 말할 때 무슨 설교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사도들에게 설교란 그저 말로 가르치고 전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설교를 너무 신학적으로 포장하거나 과장할 필요가 없다. 설교는 목사에게만 주어진 초월적특권이 아니다. 다만 공교회는 예배의 보편적인 질서를 위해 신학적으로 잘 준비된 목사에게 우선적으로 설교와 축도를 위임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농어촌 지역의 작은 교회나 특수 지역의 지하교회에서는 전임 목회자가 없을 경우 장로나 권사나 교사나 집사가 설교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본래 개혁 교회의 강단은 성도를 차별하는 곳이 아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개신교 프로테스탄트의 '만인제사장' 정신이다.

유대인의 회당에서는 회당장만이 성경을 읽고 가르치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거기서 제사 의식처럼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 성전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엄숙한 '제사의 장소'였으나, 회당은 사람들이 가르치고 배우고 기도하고 친교하는 '소통의 장소'였다. 필요하면 어린 아이가 성경을 읽기도했고, 아울러 집회에 참석한 누구나 낭독된 성경에 대해 자유롭게 묻고 답하며 토론할 수 있었다. 회당에서는 제단을 세우고 제물이나 헌물을 바치지 않았다.

물론 이런 회당 집회의 소통 정신을 모체로 하여 후일 신약 교회의 예배가 발전되었다. 즉 하나님과소통하고, 또한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름다운 소통이 바로 '화평'인 것이며, 하나님과 수직적으로 화평하고 이웃과 수평적으로 화평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예배의 정신이며 또한 십자가 복음의 정신인 것이다.

사도들은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교회당 예배는 제사가 아니다. 예배를 이방 종교처럼 제사화하지말아야 한다. 성전 제사는 이미 예수님께서 직접 온전한 제물이 되어 '단번에' 다 이루신 것이다.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히7:27)." 그런데 오늘날의 어떤 예배는 왜 또 다시 '날마다' 바치는 제사처럼 헌물(헌금)을 강조하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우리는 민수기 6장에 기록된 제사장 아론의 축도를 다시 읽어 볼 필요가 있다. 그게 분명히 축원의 기도이지 무슨 선포라고 억지를 부리는가. 하나님께서는 성전 제사 제도를 수립하신 후에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어떻게 축복해야 하는지 직접 가르쳐 주셨다.

고린도후서 13장에 번역된 사도바울의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역시 편지에 흔히 사용하는 마지막 인사말이지, 그것을 무리하게 확대 해석하여 무슨 선언이나 선포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예를 들어 그 앞 절의 "평안할지어다"도 평안하기 원한다는 기원이지, 평안하라고 명령하거나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설사 백 보 양보하여 그게 선포라고 인정한다고 해도, "오직 목사만이 선포할 수 있다"는 신학적 근거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 성경에는 신약 교회의 예배 순서에 사도들이 교인들에게 축도를 했다는 기록이 없으며, 장로나 감독이나 목사에게만 축도권을 부여했다는 기록은 더욱 없다.

교회는 성도를 '제사장'으로 대우하라

사실 한국교회 일각에서 축도권과 설교권을 마치 목사 특유의 전유물로 둔갑시키려는 의도는 명백하다. 대부분의 바른 목회자와는 달리 일부 성직주의자들은 예배를 빙자하여 어찌하든 개신교 목사를 일반 성도와 차별화하고, 다른 '특별한 신분의 존재'로 인식시켜 교회 내에서 부당한 특권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지금도 실제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심지어 어떤 부흥강사는 "오늘 내가 지닌 축복권을 모두 쏟아놓고 가겠으니 헌금 많이 바치라"고 큰소리친다. 마치 자신이 하늘 보고의 수문장이라도 되는 양 안하무인이다.

예배가 중요하고, 축도가 복되고, 그리고 설교 또한 매우 귀한 사역이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설령목사나 장로나 다른 직분자가 없더라도 예배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가정에서도 누구나 얼마든지 예배할 수 있다.

개신교의 목사직은 구약 제사장이나 신약 사도의 직무를 그대로 승계한 직분이 아니며, 다만 다른 장로나 집사와 마찬가지로 함께 교회를 섬기는 '은사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교회 내에 오직 목사만이 가진 특권이란 결단코 없다. 목사는 다만 가르치는 사역을 담당하는 장로의 직분일 뿐이다. 일부 목회자들이 주장하는 '축도권', '축복권', '선포권', '설교권', '예배권', '목회권' 그리고 '성직권'이니 하는 요상한 용어들은 모두 교권적으로 터무니 없이 과장된 것들이다.

사실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그리고 축복하는 기본 자격으로는 '성도'라는 아름다운 신분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는 것이다. 모든 성도가 부르심을 받고 기름 부음을 받은 '왕 같은제사장(벧전2:9)'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그런 당당하고 존귀한 제사장에게 "당신은 목사가 아니니설교하거나 축도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하는 게 말이 된다고 보는가. 아니면 요즘 목사직은 제사장보다 높은 직분이라는 것인지.

심지어 어떤 교회에서는 목사가 설교하는 예배는 '축도'로 끝내고, 전도사가 설교한 예배는 '주기도문'으로 끝내고 있다. 그럼 목사의 축복 기도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굳이 둘 중에 양자택일을 따지자면, 차라리 목사도 주기도문으로 마쳐야 옳지 않을까. 왜 똑같이 하나님 말씀을 선포한 전도사는 축도를 못 하게 하는지 그 이유를 정말 납득하기 힘들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성도들의 '설교 사역'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마치 중세 교회가 신도들에게 성경을 읽지 못 하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심각한 오류임을 알아야 한다. 이는 교인들에게 성경을 오로지 듣고 배우기만 하고, 반대로 전하거나 가르치지는 말라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과거 믿음의 선배들이 '만인제사장'을 외치며 종교개혁의 역사가 시작된지 어느덧 500년이나 되었건만, 아직도 이 땅의 순박한 성도들은 교회 내에서 정당한 제사장의 대우를 제대로 못 받고 있다. 도대체 누가 그 거룩한 직무를 새치기하고 있는 것일까.

죄인들이 쓰는 교회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6:23­26)."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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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rk 2018-01-14 00:39:18
하나님의 이름으로 신성남 집사님을 축복합니다.
주께서 전하 전하란 복음을 전하니 어두움이 몸서리를 치는것이 보여집니다.
세상에 묶여 있는 자들이 주의 복된 자유함을 알지 못하니 얼마나 두럽고 떨릴까요.
주의 이름으로 신성남 집사님을 축복합니다.
그이름대로 부름을 받은 자들은 다 형제요 자매 입니다.
누구나 주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으며 누구나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할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의 뜻이고 주의 복음 입니다.
어느누가 주의 이름으로 세레주는 것과 주의 이름으로 복음 전하는 것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하는것을 막았단 말임니까?
목사의 자식들이로군요.
불법의 자식들.
성경을 한 획이라도 고처서 가르치는자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 저들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없는 불법을 행하고있는 목사 자체가 불법인데 무슨 축복권이 있습니다.
심판의 있을 것입니다.
가라지는 태워질것 입니다.
너무나 어두움이여...
주의 이름을 가진자는 누구나 축복할 수 있으며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위하여 예언을 할수 있다.,.
이를 막는자는 심판에 들 것이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성령을 훼방하지 않기를 기도하라..

나그네 2018-01-13 11:51:03
"축도는 담임목사가 하는게 정상이다"는 기사를 읽고 공감하면서 '뉴스엔조이에 현재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기사도 올라오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아래에 '축도, 목사만 할 수 있나'라는 글을 읽고 뭔가 건강한 연구일거라는 기대에 클릭을 했지만 '역시나 주관적이고 부정적인 뉴스앤조이의 기류'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앞의 글은 용기있는 분이 이 글에 대한 반론으로 쓴 기사..라는 생각에 그 분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고 이름도 생각나지 않지만 고맙단 생각을 가진다. 그리고 한 주제에 대해 한편의 기사만이 아니라 두 관점의 기사를 함께 올린 뉴스앤조이도 좀 발전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강남 2016-08-04 10:17:28
전도사도 말씀을 전하십니다.

chin 2016-06-26 07:09:46
신집사님 먹사들 밥그릇 자꾸 건들면 않좋아합니다 성경에 먹사님들만 축복권을 가진다 써있나요? 설교권도 오로지 먹사들만 가질수잇다 써있는것같습니다 먹사님들한태서 설교권축복권 빼버리면 뭘가지고 먹고사나요?

바두기 2016-06-24 04:36:08
이곳에 제가 썼던 댓글들이 지워졌네요... 햇수로 십여년간 활동하던 곳인데 떠날때가 됐나봅니다. 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