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하는 사람도 현지인도 사람다움을 회복하는 시간
선교하는 사람도 현지인도 사람다움을 회복하는 시간
  • 유영
  • 승인 2016.06.28 05: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블루베리 농장에서 일하는 아이티인들과 교제하고 예배하는 '뉴호프미션', 필라안디옥교회 교인들

[미주뉴스앤조이 = 유영 기자]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며, 7일을 주기로 만드셨다. 해 아래 수고하고 어둠 아래 밤을 지내기를 여섯 번 하도록 하고는 하루는 온전히 쉬라고 말씀했다. 6일을 노동하고 하루는 쉬는 이 주기를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했다. 쉬는 날을 통해 하나님의 안식을 기억하는 일로 인간은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 

시대가 지나고 자본의 악함이 인류를 쉬지 못하게 다스린다. 7일간 일해도 사람다움을 찾기는커녕 생계도 유지하지 못하는 이들이 넘친다. 자본은 이들을 착취한다. 마지막 날까지도 쉬지 못하게 하여 인간을 도구로 만든다. 자본을 불리는 도구로 말이다. 

이러한 자본의 욕심은 저 멀리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러 온 사람들에게 더 탐욕스럽다. 미국 동부 한 블루베리 농장에서 만난 아이티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이치가 비켜나갈 리 없다. 일요일 저녁 7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아이티 사람들은 블루베리를 수확한 바구니를 가지고 이제 기숙사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이티 노동자들은 블루베리 한 박스를 수확하면 3달러 정도를 받는다.
아이티 여성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기숙사.

이들을 섬기고 있는 강영기 선교사는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0년, 대지진으로 가족을 잃고 터전이 망가진 체 여전히 복구하지 못한 상황과 이들의 처지가 늘 눈에 밟힌다. 

“그나마 블루베리 농장에 와서 일하는 이들은 형편이 나은 사람들입니다. 밀입국자도 아니고, 비자를 발급받아 미국에 올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이마저도 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 힘겹고 고통스러운 상황과 환경에서 살아야 합니다.” 

아이티에서는 삶의 기반이 있는 이들만 미국 비자를 받을 수 있다. 농장에서야 남루해 보일지 모르지만, 아이티에서는 그나마 좀 나은 상황에서 산다. 라디오 방송국 사장, 지역 유지와 가족, 목사 등 직업과 직책도 다양했다. 

남자 기숙사와 빨래 건조장. 하루 일과를 마치면 이들은 인간 다움에 더욱 목마르다. 예배 사역이 있기 전에는 술과 폭력이 만연해 농장주들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런 이들이 이곳에 와서 버는 돈은 두 달에 2500달러가량이다. 블루베리를 가득 담은 바구니 하나를 채워야 3달러를 받는다.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에는 4000달러 정도 벌었다. 올해는 수확량이 예년에 비해 줄어들기도 했고, 두 달간 힘들게 일하면 1년을 살아갈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에 이곳에 온 사람들도 늘었다. 

하루 한 시간이 아쉬운 아이티 노동자들은 쉬는 날 없이 일한다. 얼마 되지 않은 돈이지만 아이티에 돌아가면 가족이 살고, 국가 경제도 돌아갈 수 있어 더욱 귀하다. 그런 이유라고 해서 이들의 삶이 인간다워지는 건 아니다. 노동의 이유만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겠는가. 

사람을 사람답게

아이티 노동자들이 미국에 오기 시작한 것도 10년이 넘었다. 10년 동안 노동 환경은 많이 좋아졌다. 숙소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숙사도 생겼고, 깨끗한 세면대도 마련됐다. 농장주들도 생각이 조금 변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인 교회와 미국 교회가 뜻을 합해 설립한 ‘뉴호프미션(대표 이진석 목사)’ 역할이 컸다. 

뉴호프미션은 미 동북부 지역 한인 교회 교인들과 미국인 교회 교인들이 설립한 비영리 단체다. 2000년대 중반부터 개별적으로 아이티 노동자들을 섬긴 여러 교회가 같은 목적으로 모였다. 아이티에 염소 보내기 운동을 벌여 현재 약 3000마리의 염소가 아이티 사람들에게 전달됐다. 블루베리 농장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의료 진료소와 여름 성경학교 등을 운영하기도 한다. 

농장주와 뉴호프미션이 함께 건립한 야외 예배당.

처음에는 1000여 명의 아이티 노동자도 농장주도 이들의 봉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힘든 노동과 외로움을 보듬고 싶어 시작한 교제와 예배는 40명 정도의 소수 인원만 참석했다. 예배하는 사람들의 수는 점차 늘어났고, 지금은 300명 정도가 모인다. 

경계의 눈초리로 뉴호프미션 활동을 보았던 농장주들도 이들과 함께하려는 사람들의 진정성을 알고 조금씩 돕고 지지하기 시작했다. 예배당도 없어 마당에서 노천 예배를 드리던 이들을 위해 작은 야외 예배당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한 주에 한 번 하는 예배지만, 예배 참석 인원이 늘면서 숙소에서 일어나던 사건 사고도 많이 줄었다. 

힘든 상황을 술로 풀었던 이들로 폭력 사건이 잦았다. 외로움과 지친 마음을 안아줄 사람도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도 없었다. 심신이 지친 이들끼리 보듬기 쉽지 않았던 터이다. 이러한 상황에 변화를 준 사람들이 뉴호프미션 봉사자들이었다. 주일 저녁이면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신들을 찾는 진정성을 아이티 노동자들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지친 하루를 보내고, 7일만에 예배하는 아이티 노동자들. 이들의 기도 시간은 다양한 감정이 교차한다. 차갑기도 하고, 뜨겁고, 고통스럽고, 기쁘다. 이들은 일상과 인생을 모두 담아 기도한다.

가까우면 한 시간, 멀면 두 세 시간 걸리는 거리를 매주 잊지 않고 달려온다.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논다. 예배 시간이 되면 함께 예배한다. 아이티 노동자들의 예배 시간은 한국 예배 시간과 다르다. 짧아야 두 시간, 길면 네 시간까지도 걸린다. 이처럼 긴 시간을 끝까지 함께한다. 

찬양과 기도를 좋아하는 이들은 몇 시간이고 찬양하고 기도한다. 예배에 참석한 한 노동자는 “이 시간이 좋다. 하나님의 얼굴을 맞대는 시간이다. 자유를 느낀다”고 말했다. 함께 예배하는 한인은 이렇게 말했다. “영어를 못하고 불어만 아는 사람도 많다. 그래도 함께하는 시간 하나님의 위로를 느낀다. 우리 모두 위로받는 시간인 것 같아 좋다”고 설명했다. 

아이티 노동자들과 매주 예배하기 위해 1~2시간 거리를 달려오는 한인 교회 교인들.
예배하는 시간은 모두가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시간이다. 아이티 노동자들에게 주일 예배 시간은 외부 사람들이 자신들과 함께 예배하려고 찾아와 인사하고 한 사람으로 바라봐 주는 시간이다.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간과 예배를 통해 이들은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다움을 잠시나마 회복한다.

아이들이 나누는 사랑의 위로

성인들이 예배하는 시각, 부모와 함께 온 아이티 아이들은 숙소 뒤편 공터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한인 아이들이 눈에 띈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나이도 다양하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여름 성경학교를 진행하는 필라안디옥교회 청소년들이었다.

필라안디옥교회가 아이들 여름 성경학교를 진행한 건 4년 전이었다. 그 전에는 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도 성인들과 함께 예배했는데, 긴 예배 시간을 아이들이 감당하기는 벅찼다. 아이들과 교제하며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 필라안디옥교회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청소년들과 사역을 준비했다. 

이곳에서는 한인 아이들도 많이 변했다. 사랑을 나누며,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일이 다른 이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고, 힘이 되는지 경험했다. 서로 안아주고, 웃는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세상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여름 성경학교는 한인 청소년들이 준비하고 진행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원활히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비슷한 또래를 위한 사역을 주도하게 된 아이들은 더욱 주체적으로 준비하고 섬긴다.

여름 성경학교는 한인 청소년들이 준비하고 진행한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원활히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비슷한 또래를 위한 사역을 주도하게 된 아이들은 더욱 주체적으로 준비하고 섬긴다.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스스로 해결하고, 아이티 아이들과 함께 웃고 놀며 안아주는 일도 모두 스스로 한다. 

말씀을 나누고, 간식을 먹은 아이들은 이인삼각을 진행했다. 그런데 달리던 아이들 다리에 맨 노끈이 자꾸 끊어졌다. 준비한 노끈이 너무 얇아 약했다. 경기 중이었기에 노끈을 새로 묶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다리에 낄 수 있는 노끈을 준비해 바로 끼워주었다. 부모들은 이런 일에 전혀 간섭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아이들이 말하면 함께 돕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함께 있으면 한 편이 되고, 한 데 어우러질 수 있다. 강요되지 않을 때 가능하다. 자발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모습으로 몇 년 동안 지속해서 우정을 쌓아가는 아이들. 아이들은 서로 만날 날을 기대하고 기다린다.
편견 없이 사랑한다 말하고, 교제하며 변화하는 아이들.

아이티 목회자 교육도 시작한다

뉴호프미션은 올해 블루베리 농장에서 일하러 온 목회자를 위해 성경 세미나도 준비했다. 한 농장 창고를 정리해 간이 책상과 의자를 놓았고, 작은 화이트 보드도 마련했다. 성경 세미나도 아이티 목회자들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아이티 목회자들은 신학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이로 인해 성경과 신학 교육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뉴호프미션은 이러한 상황을 인정하고, 목회자의 권위도 존중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5년, 올해 한 젊은 목회자가 성경 세미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강 선교사는 이를 기뻐하며, 준비해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목회자 성경 세미나를 진행할 장소를 마련하고 정리한 강영기 선교사.

현재 노동자 중 목회자는 20여 명이다. 이들의 요청에 성경 세미나가 미국 블루베리 농장에서 이뤄진다. 블루베리 농장에서 시작한 인연은 기다리므로 무르익은 사랑의 장소가 되었다. 서로의 권위를 인정하고, 높고 낮음이 없기 바라는 사람들의 섬김이 켜켜이 얽혔다. 이곳에서 경험하는 기독교가 식민지 시절 지배자의 종교가 아니기를 봉사하는 한인들은 원하고 있다. 서로 사랑하는 말씀이 삶이 되는 것으로 선교하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티 선교가 아이티 사람들을 살리는 지역 부흥과 더 잘 이어지도록 논의 중인 이진석 목사(오른쪽 위), 강영기 선교사(왼쪽), 본지 최병인 대표(오른쪽 아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