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 진득하게 구약공부 해보자!
한여름 밤 진득하게 구약공부 해보자!
  • 홍동우
  • 승인 2016.06.30 0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평] 캐롤 카민스키의 [구약을 읽다](죠이북스)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하면 많은 이들이 성경 통독을 결심한다. 그러나 성경을 펼치기 전에 좋은 참고 서적을 찾아다닌다. 이애실 사모, 문봉주 목사, 조병호 박사, 노우호 목사 등등. 나름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의 서적들이 많이 팔린다며 서점 주인이 권해 준다.

그런 성경 참고 서적의 홍수에 난감해하는 사람들이 곧잘 물어 온다.

"형(혹은 전도사님), 성경을 통독해 보려는데 좋은 참고서 없어요?"

차라리 성경을 함께 읽고 공부하자면 뭐라도 할 말이 있고, 공부해서 가르쳐 줘야겠다는 굳은 심지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다짜고짜 책 추천을 물어보면 난감하다.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추천하기도 민망하고, 그렇다고 성경 통독을 결심한 친구에게 비판을 나열하기도 난감하다. 그래서 괜히 둘러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성경이 최고야! 성경만 펼쳐서 읽어! 그게 최고야!"

하지만 절대로 마음은 그렇지 않다. '오직 성경'을 외치지만, 성경에 대한 진지하고도 바른 참고 서적 없이 그냥 읽는 성경은, 대부분 나의 아집과 프레임을 탄탄히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단지 경건에 유익이 되거나, 성경 전체에 대한 대략적인 감을 잡는데 유익하거나다. 둘 중 하나에 불과하다. 성경 전체에서 도출되는 메시지라던가, 성경 전체적으로 흐르고 있는 암시들을 발견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상징과 암시가 다양한 영화 <곡성>을 영화도 잘 모르는 초짜가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격이다. 물론 (영화 곡성처럼) 성경도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보더라도 충분히 은혜롭고, 유익하다. 하지만 알고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좋은 참고서가 매우 갈급하다. 그리고 현재 유통되고 있는 참고서는 썩 맘에 들지 않는다.

"구약 성경의 신학적 읽기"

<구약을 읽다> (캐롤 카민스키 지음 / 이대은 옮김, 죠이북스)

<구약을 읽다>(죠이북스)를 집어 들었다. 첫 느낌은 매우 독특하면서도 꺼림칙했다. 먼저 꺼림칙한 점부터 짚고 넘어가자. ‘CASKET'이란 단어가 꺼림칙했다. 저자의 해설을 따르면 '성경 연구서의 제목인 빈 무덤(AN EMPTY CASKET)은 핵심 진리를 가리킨다(14쪽)’고 한다. 더 나아가서 신약 연구서는 'EMPTY'라는 단어로 전개되고, 구약 연구서는 'CASKTET'이란 단어로 전개된다고 소개한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구약 연구서의 'CASKET'은 각각 창조(C), 아브라함(A), 왕정(K), 포로(E), 성전(T)을 뜻한다. 이런 명칭은 그 시대에 있었던 대표적인 사건을 의미(17쪽)한다. 물론 아주 깔끔하고, 명징한 구분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성경의 거대한 이야기를 어떠한 구조나 도식에 맞추려고 할 때, 오히려 그 이야기 자체가 훼손되지 않을까?

꺼림칙한 질문은 잠시 접어두고 책의 독특한 점으로 넘어가 보자. 본 책은 겉표지가 거대한 그림 도표로 이뤄져있다. 그림 도표는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창조(C), 아브라함(A), 왕정(K), 포로(E), 성전(T)이라는 거대한 구도로 나뉘고, 각각 그에 해당하는 모티프를 나진한다. 이를테면 ‘창조(C)'의 모티프 아래에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에덴동산 안에서의 삶, 뱀의 거짓말, 죄의 침투, 홍수, 노아 언약 등과 같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들이 열거한다. 왕정(K), 포로(E), 성전(T)에 있어서는 중요한 연대와 그에 합당한 역사적 사건, 속속들이 중요한 이야기들 (혹은 모티프들)이 나열된다.

더 재밌는 점은 각각의 이야기마다 고유한 아이콘을 삽입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미가와 아모스를 통칭하는 아이콘은 '기울어진 저울'이다. 본 아이콘은 공의롭지 못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을 상징한다. 책에 수록된 아이콘들은 이야기, 모티프와 연결되며, 자연스레 구약성경 전체 흐름에서 어떤 주제가 반복되는지를 재빨리 알아차리게 돕는다

지금까지의 소개를 잘 따라왔다면 <구약을 읽다>가 어떤 책인지 대략 감이 잡혔을 것이다. 바로 구약성경의 ‘신학적 읽기’를 돕는 책이다. 저자는 본 시리즈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한다.

"이 책은 성경, 즉 구약과 신약이 창세기로 시작해서 요한계시록으로 마무리되는 구속 이야기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13쪽)"

정리하자면 그는 신구약을 통틀어 '구속-서사'라는 관점에의 '신학적 읽기'를 돕는 지침서를 작성했다는 말이다.

실제로 책을 펼쳐 보면 저자의 말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그는 창조 이야기를 단순한 ‘창조과학’의 이야기로 쉽게 풀어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문학적 구조를 주목한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의 창조와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의 창조의 대칭 구조를 가리키며 '대칭을 이루는 구조는 하나님이 각 영역들을 지으시고, 그 영역에 해당하는 피조물을 주관하는 대상으로 지으셨음을 강조(28~29쪽)'한다고 해설한다. 

이런 지점은 다른 성경 통독 해설서와는 아주 독특하게 차별되는 지점이다. 언약의 중요성을 아주 자세하게 짚어 내고, 그 안에서 메시아의 이미지가 아른거린다는 사실도 의미 있게 짚어 낸다.(117쪽) 또 지속되는 이야기들이 신약과 어떻게 연결되며, 지나온 구약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매우 소상하게 짚어 나간다. 왕국 이야기들 사이, 그리고 포로 시대와 성전 시대 이야기들 사이에 각기의 예언자들을 연대기 순으로 배열하여, 당대의 현실과 마주쳐서 의미를 얻는 예언자들의 신학적 의의를 해설한다. (물론 예언자들의 메시지를 고스란히 살려내기엔 약간 미흡한 구석이 있지만.)

"신약과 구약을 통치하며 흐르는 맥을 잡자"

본 책의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다. 먼저는 본 책이 복음주의 기반의 '신학적 읽기'를 시도한 책으로 '비평학적 연구 결과'는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단순히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다 보니 '비평학적 관점'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의아스러운 지점이 종종 출몰한다. 하지만 본 책이 구약신학의 관점을 익히는 입문자용으로, 구약성경을 처음으로 읽어 보려는 입문자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복잡하고 정교한 비평학적 관점을 배제하고 본문에 기록된 그대로의 이야기 자체의 신학을 분석하고 있으니.)

또 성경의 배열 순서를 '연대기'로 재배열한다는 점이 약간 의아스럽다. 구약성경은 70인역 배열을 중심으로 히브리인들의 '타나크(율법서·예언서·성문서)' 배열과는 달리 짜여 있다. 그 연유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입장 차가 있지만 그 자체로 닫힌 정경인 '타나크'와는 달리 메시아에 대해서 열려 있다는 의미로 재-배열 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한마디로 '배열'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것인데 저자는 본문을 통시적으로 배열하기 위해 예언서와 역사서의 순서를 연대기 순으로 배치했다.

마지막으로는 구약성경 자체의 이야기보다는 신약성경과의 관계성 속에서 구약성경의 ‘신학’을 조망했다는 점이다. 실제 구약신학자들은 신약성경과의 관계를 일차적으로는 제한 상태에서 구약성경 자체가 갖고 있는 풍성한 신학을 논하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구약을 읽다>는 오히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이 역시 <구약을 읽다>가 '구속-서사'라는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을 통치하여 흐르는 맥을 담은 책이기에, 오히려 장점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지금까지 <구약을 읽다>를 리뷰했지만 사실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리뷰하기에는 벅찬 도서다. 오히려 성경을 곁에 두고 비교해 읽으면서, 저자가 언급하는 신약의 모티프들과의 연결점, 반복되는 모티프들을 차례차례 표기하면서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실제로 예쁜 컬러, 좋은 재질, 적절한 여백으로 구성돼 줄 치고, 메모하고, 표기하면서 공부하기 딱 좋은 '교재용'이다.

구약성경이 오늘날을 사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또한 신약성경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이번 여름에는 <구약을 읽다>와 함께 구약을 공부해 보는 건 어떨까? 아주 진득하게. 성경을 곁에 펼쳐 두고서.

홍동우 / 부산장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일단은 경계해야 할 위험한 사람인지, 세상에 대하여 경계를 하고 있는 불안정한 사람인지, 혹은 온갖 경계선 위를 돌아다니는 사람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경계인'이라는 사실. 부산의 한 교회에서 청소년들과 어울리며 삶의 행복을 느끼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