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나라, 이란을 가다
신의 나라, 이란을 가다
  • 양국주
  • 승인 2007.05.05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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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 '세계의 절반'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스파한의 이맘 호메이니 광장에 선 필자. (사진 제공 양국주)  
 
전쟁 상황을 맞은 이란. 밤이면 간간히 굵은 비를 뿌리는 테헤란에는 때마침 원유 개발과 관련한 국제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다. 내가 머물렀던 게스트 하우스에도 한국 유수의 기업체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박람회 기간 동안 비즈니스 상담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하기야 2년 전 쓰나미로 재앙을 입은 북부 반다아체를 찾았을 때도, 단체 관광객을 모집하기 위해 그 오지까지 찾아온 한국 여행사들은 지진이나 재난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은 전쟁 가능성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유전 개발의 환상이나 돈 냄새에 목마른 비즈니스맨들에게도 생사여탈권을 쥔 전쟁은 언제나 최대 의문부호인 셈이다.

금요일 오후,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방문했던 이란 교회의 예배 분위기는 전쟁을 막아보려는 착한 백성들이 안타까운 울부짖음, 하나님을 찾는 통성기도로 긴장감마저 돌고 있었다. 두바이와 마주 보고 있는 이란 최대 항구 도시 반다라바스로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는 현대, 한진을 비롯하여 중국의 코스코, 일본의 NYK 등이 지난 4월 15일부터 서비스를 중단했다. 전쟁의 핏빛을 감지한 것이다.

지금 이란에는 병역 미필자로 분류된 젊은이들에게 총동원령이 내려졌고, 준전시체제로 전환된 지는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시내 곳곳 주요 도로 입구에는 콘크리트 차단벽이 설치되었다. 반 시오니즘과 대미 결사 항전을 부추기는 독전의 캠페인이 그려진 건물 외벽이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개전의 나팔은 이미 울려 퍼진 듯했다. 그야말로 언론에는 오르내리지도 않는 작은 사건들로 인해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 시오니즘을 타도하고 미국을 무너뜨리자는 선전 구호로 요란한 테헤란 시내. (사진 제공 양국주)  
 
원색의 밤을 수놓는 초승달 나라. 이번 이란 방문은 무려 6개월이나 기다린 끝에 이루어졌다. 런던에서는 영국 주재 이란 대사관으로 보낸 비자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무뚝뚝한 대답만 받고 아쉬움으로 돌아서야 했다. 지난해 여름에 경험한 황당한 사건이다. 이번에는 제법 야무진 준비를 했다. 워싱턴 주재 파키스탄 대사관에서 이란 ‘이익대표부’에는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미국이랑 신경전이 붙어 있는 현재, 워싱턴에서 비자를 받기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란 외무성으로 초청장을 보냈다는 연락을 받고, 다방면에 걸친 정보 수집의 노력도 필요했다. 하지만 전쟁을 목전에 둔 이란의 비자 발급 정책이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통에 갈피를 잡기도 어려웠다.

두바이와 호르무즈 해협을 마주하고 있는 키시섬은 이란이 대외 자유무역을 위해 개방한 특별지역이다. 1노트 바지선으로 한 시간이면 닿는 곳이다. 두바이에서 키시섬으로 왕복하는 경비행기가 하루에도 열 차례나 있었다. 키시섬으로 들어가면 45일짜리 비자를 받을 가능성은 있지만, 일주일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부담은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두바이에서 테헤란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했지만 히드류공항 체크인 데스크에서부터 이란행 비자가 말썽이었다. 항공사 직원은 도저히 태워줄 수가 없다고 했다. 결국 두바이에 가서 해결하는 방법으로 보딩 패스를 받았다.
 
비행기에서 밤새 뒤척이며 달린 두바이. 더운 사막 기후가 한증막처럼 이글거리며 몸을 달군다. 요즈음 세계 경제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두바이는 외형적으로 거칠 것 없는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후세인이 거세된 이후 이라크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쉬아 무슬림에 대한 공포감이 있는 사담을 지지하는 기득권 세력은 숨겨 들여온 달러로 경제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또한 지난해부터 이란의 신흥 부호들이나 기업가들이 숨겨서 가져온 비자금으로 두바이는 제2, 제3의 황금기를 맞고 있다. 공항 주변의 산업 공단에는 1년 사이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주미에라 비치를 향하는 지역에는 할리우드를 능가하는 최고급 주택단지는 투자자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부동산 투자에 목숨 건 한국의 복부인들마저 두바이를 휩쓸고 지나간 것은 이미 지난해의 과거사가 되었다.

테헤란으로 떠나는 에미레이트 항공 데스크는 생각만큼 까다롭게 굴지 않았다. 한국인들에게는 일주일간의 비자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으리라는 정보도 공항에서 얻었기에 과감히 도전해보는 것이리라.

'인샬라!!'

그래 나도 한번 부딪쳐보는 게야. 언제나 서비스가 좋았던 에미레이트 항공기에 탑승을 했다. 워싱턴에서부터 자그마치 15시간에 걸친 기나긴 여정으로 몸은 이미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테헤란까지 1시간 40분. '파이팅!' 하고 나지막하게 불러본다.

   
 
  ▲ 쟁반같이 둥근 달이 초승달 차림으로 비색을 머금은 양 불타는 지평선 어깨 너머로 보였다. (사진 제공 양국주)  
 
초저녁이라 창가에 비치는 노을마저 인상적이었다. 도하를 경계로 이란 지경으로 방향을 틀자 밤하늘에 곱게 수놓은 달무리들이 따라왔다. 그리고 쟁반같이 둥근 달이 초승달 차림으로 비색을 머금은 양 불타는 지평선 어깨 너머로 보였다. 사막인들의 운명이 초승달 같은 모습을 닮은 탓일까? 그 초승달은 두 시간 내내 창가에 몸을 기댄 내게 이정표처럼 다가와 속삭였다. 왠지 시작은 좋아 보였다. 졸음이 쏟아졌지만 이 순간을 놓칠 수는 없었다. 비행기 날개가 어느덧 대각선으로 구성을 이루었다. 저 멀리 고대 도시 시라즈 하늘가로 내 마음이 먼저 날고 있다.

양국주 / 열방을섬기는사람들 국제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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