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예장통합 총회장 김형태 목사 장례식 치뤄
전 예장통합 총회장 김형태 목사 장례식 치뤄
  • 예장뉴스 보도부
  • 승인 2016.07.05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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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를 하는 유경재 목사, 우측은 집례자 유의웅 목사(사진: <예장뉴스>)

연동교회 원로 고 김형태 목사의 장례예식이 6월 30일 오전 9시 생전에 시무하시던 연동교회 본당에서 유족들과 연동교회 교인들 전 총회장들과 교단 사무총장 이홍정 목사외 전직원, 연동교회 출신 교역자들과 후배들이 모인 가운데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으로 엄숙히 거행되었다.

예식은 전 총회장들 위주로 하여 유의웅 목사(도림교회 원로)의 집례로 최병두 목사(상신교회 원로)가 성경봉독은 구약 신34:9-12를 전 장로 부총회장 박화섭 장로가 신약은 눅17:5-10를 이양덕 목사(서울노회장)가 했으며 이어 연동교회 연합성가대의 찬양이 있었다.

말씀은 김창인 목사(광성교회 원로) 위 본문을 가지고 1.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충성, 2. 안팎으로 충성, 끝까지 충성 이라는 소제목으로 김형태 목사는 이런 충성을 하신 분으로 하나님의 큰 상급을 고대한다는 말씀을 전했다.  이어 고인의 약력 소개는 현 총회서기 최영업 목사가 조사는 이규호 목사(구정교회 원로)와 유경재 목사(안동교회 원로)가 추모사는 안영로 목사와 허재철 목사가 하였다.

고인의 영상과 육성을 듣는 시간과 고인의 장남 김홍규 선생의 유족가 있었다. 이어 연동교회 당회장이며 현 총회 부총회장 이성희 목사가 광고를 하였다. 총회가 주관하는 예식은 현 총회장인 채영남 목사가 해야했으나 미국한인장로회 총회 참석차 외유중으로 부총회장인 자신이 교단을 대표하여 인사한다는 말씀이 있었다.

끝으로 박종순 목사의 축도로 장례예식을 마치고 고인에게 헌화를 하고 유족들과의 인사례를 한후 광릉내 연동 부활의 동산으로 발인하였다.   이 예식에는 전 총회장들과 NCCK 총무 김영주 목사, 안재웅 목사, 교단의 원로목사들, 교단으 후배목회자들과 장신대 제자들, 101회 부총회장 후보인 최기학 목사와 정헌교 목사, 임은빈 목사, 연동교회 부목사 출신인 강동수 목사, 정태봉 목사, 이만규 목사등과 일반 사회 조문객들이 참석하였다.

이 예식순서중 고 김형태 목사와 같은 서울노회에서 목회하신 유경재 목사의 추모사를 소개한다.  이 추모사는 고 김형태 목사를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오래동안 후진들이 기억하기 위해서다. 유경재 목사는 안동교회에서 은퇴하신후 같은 서울노회 홍익교회 김태복 목사와 같이 "원로에게 듣는 다" 라는 인터넷 팟케스트 방송으로 고 김형태 목사와 인터뷰를 진행하신 적이 있다.

연동교회 '고 김형태 목사' 장례식 조사

유경재(安洞교회 원로목사)

존경하는 김 목사님, 믿음으로 바라보시던 영원한 세계로 올라가셨군요. 밖에는 목사님의 가심을 애도하듯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목사님을 떠나보낸 가족들과 교우들, 그리고 후배들은 슬프고 아쉽지만, 목사님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고자 미리 정하셨던 아버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이 땅의 낡은 장막을 벗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형상으로 갈아입고 찬란한 빛과 행복의 폭풍 속으로 들어가시면서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세계를 보고 감탄하시며 웃음 짓고 계시겠지요.

이 시간 목사님을 회상하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이상하게도 목사님의 단호함과 엄격함입니다. 연동교회 당회장으로 계실 때 직원들이 목사님을 무서워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주보에 오자가 한 자라도 나오는 때는 담당자가 혼줄이 났다지요. 연세대 교수로 계실 때 목사님이 하도 엄격하여 학생들이 논문 지도교수로 모시길 주저했고, 장신대에서 논문 지도하실 때 혹독한 질책과 나무람으로 학생들이 절절 맸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닌 원칙에 충실하고자 했던 목사님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날 원칙도 없고 신념도 없는 정치인들이나 목사들 때문에 나라가 어지럽고 교회가 혼란스럽습니다. 특히 목사들은 “꿩 잡는 것이 매”라고 하며 무조건 큰 교회를 지향했고 그것이 다 옳은 것으로 여기는 풍토를 목사님은 무척 안타까워 하셨지요. “경제 발전과 함께 바람을 탄 소위 교회성장 충동이 기독교 세력을 크게 확장시킨 반면에 목회의 권위를 세속적 돈과 권력에 의존하는 세속화 현상을 촉진시켜 영적 타락과 도덕적 부패를 발생케 하였다”고 한숨 지으셨지요.

돌이켜 보면, 바로 목사님의 이런 원칙주의에 기반을 둔 철저함과 단호함이 활동하신 모든 분야에서 빛을 발하였습니다. 목회와 교육에서,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과 평화통일운동, 더 나아가 민주화 운동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중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1988년 2월 29일 연동교회에서 모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제37차 총회에서 당시 교단 총회장이셨던 목사님이 떨리는 음성으로 직접 낭독하신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박수로 채택한 일입니다. 이 선언은 국내외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고, 그 후 평화통일운동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역사의 큰 획을 그은 사건인데, 유감스럽게도 그해 가을 73회 총회에서 우리 교단이 이 선언을 적극 수용하지 않자 방금 총회장의 짐을 벗은 목사님께서 단 아래서 단호하게 이 선언을 지지하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시던 모습을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80년대 우리 사회가 격동하던 시기에 놀랍게 동분서주하셨던 목사님이 더욱 그리운 것은, 오늘 우리 사회가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암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우리 사회를 민주화 된 사회로, 평등한 사회로, 남북이 평화롭게 통일된 나라가 되도록 만드는 일은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이 되었습니다. 목사님, 계신 곳에서 목사님이 다 하시지 못한 일들을 우리가 계속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를 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님의 호가 고성(孤星)인데 그 호처럼 살아계실 때는 외롭게 홀로 빛을 발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빛나는 별이 되신 지금 우리의 갈 길을 알려 주시며, 우리도 목사님처럼 단호하게 원칙을 지키는 예언자가 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빛을 비춰 주시기 바랍니다. 4대 목사의 가정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셨던 목사님은 정말 목사답게, 예언자답게, 떳떳하고 부끄러움 없는 삶을 마치시고 가셨습니다. 
이제 천사들의 영접을 받으며 가신 그 나라에서 영생의 기쁨과 안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예장뉴스 / 보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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