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를 하면, 복을 받는다?
십일조를 하면, 복을 받는다?
  • 신성남
  • 승인 2016.07.10 01:22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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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변절과 십일조 강요 (4)

어찌 되었든 어떤 분이 자발적으로 십일조를 열심히 하는 것을, 구태여 도시락 들고 따라다니며 말리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목적이 매우 미신적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즉 세속적인 출세와 복을 위하여 십일조를 바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마치 무속인이 천신굿을 할 때 돈을 바치듯, 매우 기복적이라는 것입니다.

필자가 최근에 만난 어떤 분은 "십일조를 하면, 큰 복을 받는다"는 친척 목사님의 말을 굳게 믿고 십의 이조까지 바쳤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정말 놀랍게도 사업에 대박이 터져 수 년 전에 아주 큰돈을 버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맛에 신바람이 나서 나중에도 열심히 십의 이조를 해 오셨는데, 실망스럽게도 근자에는 사업도 잘 안 되고 거의 약발이 떨어진 모습으로 한숨 속에 지내시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한국교회 일부 교인들의 의식 수준을 잘 보여 주고 있는 하나의 삽화입니다. 즉 '십일조의 정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세속적인 복만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설마라고 하시며 웃어넘기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주위를 살펴보면 의외로 십일조를 복 받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시는 순진한 분들이 제법 많습니다. 모두 귀족 목사들의 거짓된 가르침에 감염된 탓이지요.

이는 '돈 놓고, 돈 먹기'인 투기꾼의 심보이며, 성황당에 물을 떠 놓고 손바닥에 불이 나게 비비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여기서 필자는 이런 분들께 분명히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십일조를 바쳐서 어쩌다 부자가 될 수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대로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구를 다 바쳐도 깡통을 찰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십일조를 언급한 말라기서의 핵심 주제는 단순히 '돈을 내면, 복을 받는다' 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난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에 대한 무서운 경고이며 탄식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가증한 일에서 돌이키지 않기 때문에, "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신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즉 십일조를 아무리 잘해도, 행실이 올바르지 못하면 오히려 화를 입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잘하면, 부자가 된다거나 출세하고 성공한다"는 일부 목사들의 달콤하고도 무지한 설교는 성경을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성경대로 충실하게 살아도, 지지리 고생하고 평생 가난하게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큰 상을 받은 자에게는 하늘에서 상이 작아질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하거나 애통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자에게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적은 있으나, '나를 따르면 부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신 적은 결코 없으셨습니다.

거짓 목사들이 이런 사실은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성경의 앞뒤를 다 잘라 낸 후 단순하게 "십일조를 하면, 부자가 된다!"는 식으로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를 철저히 잘하기로 따지자면, 아마 바리새인들보다 더 잘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그들이 복을 받았나요. 오히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책망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요즘 많은 목사들이 시대적 상황이 전혀 다른 신정 국가 시대의 말라기서를 자세한 배경 설명이 없이 단순히 인용하며, "십일조를 하면, 복을 받는다"거나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지 말라"라고 강조하는 것은 십일조의 참된 정신을 왜곡하는 날조이며 기만입니다.

말라기서의 주제는 '십일조와 세속적인 복'이 아니라, 구약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 관련 내용 역시 백성들보다는 오히려 지도자들인 제사장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도적처럼 십일조를 떼어먹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제대로 나누어 주지 않았다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말라기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신정 국가 백성으로서의 '책임'과 '특권'을 강조한 '온전한 십일조'인 것이지, 세속적 축복을 받기 위한 '도깨비 방망이 ' 같은 그런 십일조가 아닙니다. 즉 "복 나와라! 뚝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백성 된 책무인 온전한 십일조를 잘 바치면 비로소 참된 복을 받는다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섬김과 책임'은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거짓 목사들이 단순히 "돈 내면, 복 받는다" 는 식의 미신적이며 주술적인 기복 신앙만을 상습적으로 떠벌리니 교회가 굿 판처럼 매일 복 타령이나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인들이 사업 번영, 자식 출세, 무병장수, 호의호식만을 꿈꾸게 되고, 이에 안주하는 복쟁이들이 되어 교회가 병들게 됩니다.

제대로 양심을 가진 목사라면, 이웃을 섬기는 것이 복이고, 약하고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복이고,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이 복이고,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이 복 이고, 억울한 자와 함께 우는 것이 복이고, 낮아지는 것이 복이고, 가슴을 치며 회개 하는 것이 복이라고 증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울러 형제를 용서하는 것이 복이고, 남을 위해 기꺼이 손해 보고 사는 것이 복이고, 사회의 소금이 되어 녹아지는 것이 복이고, 그리고 예수를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가다가 때로는 눈물 나는 고생을 하는 것도 참된 복이라고 가르쳐야 할 것이 아닌지요.

사람이 만든 올무

십일조 강요는 결코 성경적이 아니며, 현실적으로도 새신자들이 교회에 들어오는 전도의 문을 크게 막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교회에서 은근히 조직적이며 지능적인 십일조 강요로 인하여, 초신자들이나 가난한 교인들이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복음을 위한 고난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올무입니다. 말라기서에는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탐욕스런 교회 지도자들은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는 행위를 재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신자들에게 다시 율법적인 십일조를 강요하는 행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 십자가를 역행하는 처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교회가 마치 국세청을 대신해서 추가로 세금을 더 받겠다는 것과 비슷한 월권입니다.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까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위선적인 십일조로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결국에는 큰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정복자 알렉산더의 후계자들이 세운 왕조인 북쪽의 셀류쿠스 왕국과 남쪽 프톨레미 왕국 사이의 그 유명한 '150 년 전쟁'이 바로 그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가운데에 두고, 양측 군대가 오르내리며 지긋지긋하게 벌린 이 전쟁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완전히 초토화하고 처참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당시에 얼마나 이들 군대의 겁탈과 약탈이 심했으면 귀중품을 밭에 감출 수밖에 없었을까요. 예수님의 비유 '밭에 감추인 보화'는 이런 역사적 배경과 관습을 근거로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왜곡하고 가식적인 제사와 십일조를 바친 결과를 이스라엘의 역사가 생생히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개혁 교회는 이제라도 현대 가톨릭에서조차 시행하지 않는 이 십일조 제도를 공식적으로 폐지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잡다한 명목의 헌금들도 자발적인 '무기명 주일헌금'으로 단순화하기를 부탁 드립니다.

어떤 이유로든, 교회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아 큰일을 하겠다는 생각은 결단코 버리는 것이 옳습니다. 이는 주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부당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바쳐진 온전한 '사랑의 헌금'만을 가지고,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하는 것이 정당합니다.

소모적인 논쟁 이젠 끝장내자

이렇게 십일조 폐지를 교회와 교단에 강력히 건의하지만, 사실 이 분들의 답변에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습니다. 십일조 강요는 한국교회의 변절에 기인한 것이고, 교회의 변절은 교단을 장악한 교권주의자들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마음을 열고 들을 리가 없습니다. 또한 진리 문제를 단순히 다수결로 해결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찬반이 팽팽하여 결론이 나지 않는, 필요 이상으로 소모적인 논쟁은 아무도 원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해결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더 이상 끝도 없이 연구만 하고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실천을 하자는 것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신앙 양심에 따라 이번 주일부터라도 자신의 교회에서 율법적인 십일조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십일조의 정신'에 따른 사랑이 담긴 주일헌금을 하면 됩니다. 구태여 교회에서 우물쭈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집사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자 합니다. 보수 교단 소속의 어느 중형 교회에 출석하는 이 친구는 대학 시절부터 늘 무기명 주일헌금만을 고집하여 왔습니다. 하루는 나이 드신 교회 여전도사님이 다가오셔서, "아무개 집사님도, 앞으로 십일조를 좀 하시지요" 하고 부드러운 충고를 주셨습니다.

그 때 이 집사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변을 드렸다고 합니다. "저는 원칙적으로 십일조뿐만 아니라 그 어떤 기명 헌금에도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제 신앙양심에 따라 무기명 주일헌금을 하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얼마 뒤에는 담임목사님이 같은 권고를 주셨습니다. 물론 동일한 답변을 드렸다고 합니다. 다행히 그런 일이 있은 이 후로는 누구도 이 친구의 십일조에 대해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직 장로가 되지 못 한 것 외에는 교회 생활에 별 다른 불이익이 없었다고 합니다.

혹시 십일조나 감사헌금 실적을 높여서 담임목사의 인정을 받고 장로나 권사 등의 직분을 서둘러 받고 싶으신 분들이 아니라면, 이 집사의 소신 있는 처신도 약간의 참고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는 때로는 힘에 벅찰 정도로 많은 헌금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추가로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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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2020-07-30 07:11:21
저는 지가 가진 모든 재물을 주님이 주신 것으로 인정하는 게 십일조라고 배웠었어요. 물론 기자님이 말씀하신 기복적인 내용도 배웠었고요.
결론은 십일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잠하라 2016-07-14 10:13:32
신성남 집사님.. 이제 좀 잠잠하시지요.
참되게 십일조 헌금을 하시는 분들을 '미신'과 '기복'으로 치부하는 님의 몰이해에 대해 사과해야 합니다. 물론 참된 십일조를 설교하시는 목사님에게도.
십일조도 싫다, 교회도 싫다, 목사도 싫다... 과연 님에게 믿음은 있는지요?
더이상 교회를 공격하지 마세요. 그냥 잠잠히 신앙 생활하세요.

교만함 2016-07-10 12:26:22
신성남 이분은 집요할 뿐 아니라, 독자들의 수준을 너무나 낮게 보는교만함까지 엿보인다. 이 주제를 가지고 반복해서 쓰다보니 자가당착에 빠졌나 싶기도 하다. 요즈음 기복적 신앙으로 십일조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얼마나 있는가? 뭐 눈엔 뭐가 보인다고 줄기차게 같은 이야기 반복하는 것 보면 주위에 바르게 신앙 생활하는 자가 정말 없는가 보다. 참 하나님 사랑하여 마음과 물질이 가는 신앙을 배우지 못한 스스로의 주술적 불행에 갇힌 불쌍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측은하기까지 하다.

교만 2016-07-10 12:23:36
신성남 이분은 집요할 뿐 아니라, 독자들의 수준을 너무나 낮게 보고 이 주제를 가지고 계속쓰다보니 자가당착에 빠졌나 싶다. 요즈음 기복적 신앙으로 십일조 하는 실제로 얼마나 있는가? 뭐 눈엔 뭐가 보인다고 줄기차게 같은 이야기 반복하는 것 보면 주위에 바르게 신앙 생활하는 자가 정말 없는가 보다. 정말 하나님 사랑하여 마음과 물질이 가는 신앙을 배우지 못한 스스로의 주술에 갇힌 불쌍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가? 측은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