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교회에 갇힌 스웨덴보리
유리교회에 갇힌 스웨덴보리
  • 양재영
  • 승인 2016.07.14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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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스 버디스에 위치한 웨이파러스 채플

“나는 과거 20여년 간에 걸쳐 육체를 이 세상에 두어둔 채 
영이 되어 인간이 죽은 후의 세계, 즉 영혼의 세계를 출입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영들과 어울려 수많은 일을 보고 들었다.
내가 지금부터 여기에 기술하는 것은 나 스스로 견문하고 체험한 것의 전부이다.”

스웨덴을 떠나 이국땅 영국에 머물던 어느날 밤, 스웨덴보리(Emanuel Swedenborg, 1688-1772)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인물을 만난다.

“나는 너를 인간이 죽은 후에 가는 영의 세계로 데려가겠다.
그 세계에서 보고들은 바를 겪은 그대로 기록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라."

한국 사회에 소개되면서 큰 반향과 논란을 불러일으킨 스웨덴보리의 책 <나는 영계를 보고 왔다>(서음 미디어)는 30여년 간 지속된 그의 영적 체험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스웨덴보리가 머물렀던 하숙집 주인은 “다른 사람의 출입을 철저히 금하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 많게는 10일 정도 밥도 먹지 않았다"라며 그의 영적 체험의 순간을 묘사하기도 했다.

팔로스 버디스의 웨이퍼러스 채플은 전면이 유리되 만들어져 '유리교회'로 불리기도 한다 © <미주 뉴스앤조이>

“결혼식장이 된 유리교회"

로스엔젤레스 서남부에 자리한 아름다운 도시 팔로스 버디스의 해변가에 자리잡은 웨이퍼러스 채플(Wayfarers Chapel)은 얼마남지 않는 스웨덴보리 교단 소속이다.

주로 영국과 미국에 ‘새 그리스도교회'(Church of the New Christ)란 이름으로 자리잡은 스웨덴보리 교단은 현재 40개 정도의 교회와 1500명 정도의 교인들로 구성된 소수교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내에서도 ‘새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스웨덴보리의 변형된 삼위일체론과 신비주의 등의 문제점으로 다수의 한국 교단과 단체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되고 있다.

소위 ‘유리교회'로 불리는 웨이퍼러스 채플은 교회로서의 명성은 사라지고, 이젠 1년정도 대기해야만 장소를 얻을 수 잇는 유명 결혼식장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드라마를 통해 소개되어 천혜의 자연과 어우러진 드라마틱한 분위기의 교회로 더 잘 알려졌다.

LA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천혜의 휴향지 ‘랜초 팔로스 버디스'(Rancho Palos Verdes)에 자리잡은 ‘유리교회’는 태평양을 바라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알려진 인근 스타벅스와 함께 손꼽히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확트인 태평양의 오션뷰, 아담한 정원과 함께 신비로운 유리 광채를 발하는 채플실의 풍경은 신학적 논란을 떠나 도심의 스트레스를 풀기에 최적의 장소임에 분명하다.

주기도문을 계단에 새겨놓은 채플실 안에는 스웨덴보리가 다녀왔다는 영계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선율이 들리며, 조용히 기도를 하는 관광객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웨이퍼러스 채플에서 바라본 태평양 전경 © <미주 뉴스앤조이>
웨이퍼러스 채플은 젊은이들의 결혼식장으로 유명하다 © <미주 뉴스앤조이>
웨이퍼러스 교회 주변은 아담한 정원으로 유명하다 © <미주 뉴스앤조이>

“선다싱, 에크하르트를 잇는 신비주의자"

스웨덴의 신비사상가인 엠마누엘 스웨덴보리는 1688년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수학자, 과학자로서 남긴 업적도 적지 않으며, 정계에 입문해 활약할 정도의 상류계층 사람이었다. 그가 11개 언어에 유창한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다는 사실은 그의 신비주의 사상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면이 있다.

하지만, 60세에 스웨덴 최고의원 자리에서 물러나 ‘영계의 진실'을 알리는 일에 생애를 바친 신비주의자가 된다. 그가 남긴 50여편의 저서는 그의 신학적 논란과는 별도로 종교와 과학 안에 존재하는 괴리를 정신사적으로 해명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선다싱, 엑크하르트 등의 신비주의의 계보를 이어간 스웨덴보리는 85세에 런던의 한 하숙집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신이 겪은 영적 체험을 저술하는 데 전념했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스웨덴보리를 모델로 했다는 일화는 그의 삶을 더욱 불가사의하게 뒤바꾸어 놓았다.

스웨덴보리의 신앙은 후일 우리에게 잘 알려진 헬렌 켈러의 신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프로이드나 융의 심리학 분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그의 극단적 영적 세계관은 ‘마귀교리의 최고봉'이라는 평가 위에 서있는 것도 사실이다.

팔로스 버디스의 장관위에 세워진 웨이퍼러스 교회는 스웨덴보그의 영적 신앙을 계승하겠다고 설립됐다. 하지만, 스웨덴보리를 기념하는 유리교회는 그가 꿈꾼 자유로운 영혼들의 모임의 공간이 아닌,현대건축의 거장인 프랭크 로이드의 신비로운 교회건축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공간으로 전락했다. 

웨이퍼러스 채플 전경 © <미주 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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