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청소년 단체 목사의 두 얼굴
유명 청소년 단체 목사의 두 얼굴
  • 이은혜
  • 승인 2016.08.0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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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즈업무브먼트 이동현 목사, 목사 지위 이용해 고등학생과 성관계
<뉴스앤조이>는 지난 5월 라이즈업무브먼트와 이동현 목사에 대한 제보를 받고 두 달 동안 관련 내용을 취재했습니다. 이동현 목사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전화·메일·문자·카카오톡·내용증명·팩스로 질의서를 보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동현 목사가 있을 만한 곳도 방문했지만 만날 수 없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기사가 나간 후에라도 이동현 목사와 라이즈업무브먼트에서 반론이 오면 이를 충실히 반영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라이즈업무브먼트(라이즈업·이동현 대표)는 한국 교계에서 대표적인 청소년 사역 단체다. 1999년 분당 지역 청소년 연합을 위해 세워졌으며 '비틴즈'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당시 강도사였던 이동현 목사는 2000년 분당 중앙공원에서 열린 '내일을 여는 축제'를 시작으로 매해 서울광장에서 '라이즈업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대형 찬양 집회를 열고 있다.

이후 비틴즈는 라이즈업무브먼트로 이름을 바꾸었다. 2016년까지 17년이 지나는 동안 이동현 목사와 동생 이동호 선교사가 운영했다. 라이즈업은 RTS라는 이름으로 충남 태안에 기숙형 대안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단체 근거지가 되는 분당 지역에는 RTC라는 자기 주도 학습형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모든 단체 대표는 이동현 목사다.

이동현 목사는 라이즈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이다. 라이즈업 이름으로 진행하는 대부분 집회 주 강사는 이동현 목사다. 매주 주일 오후 분당 계원예술고등학교에서 '신앙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집회, 방학 기간 수련회 성격으로 열리는 컨퍼런스도 마찬가지다. 이 목사는 카리스마 넘치는 설교로 라이즈업을 지금까지 이끌었다.

2016년 5월, <뉴스앤조이>는 라이즈업 관련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는 이동현 목사가 독단적으로 단체를 운영하고, 청소년과 대학생 자원봉사자에게 지나친 헌신을 강요하는가 하면 설교 및 재정 운영상의 문제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뿐 아니라 단체에 몸담고 있던 여성들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음도 암시했다.

<뉴스앤조이>는 제보 내용을 바탕으로 취재에 들어갔다. 라이즈업을 거쳐 간 사람들을 만났다.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두 달 동안 조사했다.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라이즈업의 문제점을 짚은 기사를 차례로 내보낼 예정이다.

"그는 아직도 청소년을 상대로 사역하고 있다"

첫 번째 기사는 라이즈업 대표 이동현 목사가 오랜 기간 자신의 지위와 성경 말씀을 이용해 한 여성의 정신세계를 조종하고 해당 여성을 성적 갈증 해소 도구로 사용했다는 내용이다. <뉴스앤조이>와 연락이 닿은 피해자 A는 현재 모처에 머물고 있다.

우상처럼 존경하고 떠받들던 목사와 비틴즈 사역에 열심이던 고등학교 여학생. 이동현 목사는 이 관계를 파고들었다. 자신을 동경하고 존경하는 여학생이 자신과 성관계를 갖도록 온갖 감언이설로 그를 설득했다. 당시 이동현 목사 나이는 37. 누가 봐도 정상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A를 세 차례 만났다. 긴 시간 이야기를 들었다. A는 끔찍했던 과거 기억을 다 잊고 지금은 건강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다시는 꺼내기 싫은 기억. 그는 왜 꼭꼭 잠가 두었던 12년 전 기억을 대중 앞에 꺼내기로 결심한 것일까.

"이동현 목사에게 악의를 가지고 그가 망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증언을 결심한 것은 아니다. 이 목사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청소년을 상대로 사역하고 있다. 분별력이 떨어지는 청소년들이 또 다른 위험에 노출돼 있다. 혹시라도 나와 비슷한 일을 당하고 혼자 힘들어할 아이들을 위해 용기를 냈다."

<뉴스앤조이>는 피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내용을 재구성해 기사를 작성했다.

이동현 목사는 청소년 사역 단체 라이즈업무브먼트 대표다. <뉴스앤조이>는 지난 5월 이동현 목사와 라이즈업무브먼트에 대해 제보를 받았다. 이동현 목사가 과거 고등학생이던 단체 여학생과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맺었다는 내용도 그중 하나였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함께 공부하자고 불러내더니…데려간 곳은 호텔

A에게 이동현 목사는 연예인 같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인생관을 형성해 준 사람이었다. 특히 신앙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동현 목사는 기성 교회를 비판하며 청소년만이 썩어 빠진 한국교회를 개혁할 수 있다고 했다. 부모와 대립각을 세우던 청소년들은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이동현 목사를 의지했다.

이동현 목사는 처음에는 호의를 베풀며 A에게 접근했다. 특별히 불러내 맛있는 것을 사 주거나 자동차에 태우고 교외로 드라이브를 시켜 줬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요구는 없었다. 사역에 심취했던 여학생은 이동현 목사가 하는 말과 행동에 서서히 잠식당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낸 후, 만 17세이던 고3 봄에 이동현 목사는 본격적으로 성관계를 강요했다.

평소 동경하던 사람이 하는 말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이미 A는 이동현 목사가 하는 모든 말에 심취해 있었다. 호텔에서 공부하자며 불러낸 이 목사는 처음에는 벗은 몸만 보겠다고 했다. 이후에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 완강히 거부하는 A에게 이동현 목사는 이미 늦었다고 했다.

첫 성관계를 맺은 후 계속 우는 A에게 이동현 목사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A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첫 관계 후 죄책감과 두려움에 울고 힘들어할 때 이동현 목사가 위로해 줬다. '비틴즈 그 어떤 여자애들도 자기가 이런 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들이대면 자신을 좋아하게 되고 결국 관계를 맺게 됐을 것이다. 그러니까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로 나를 안심시켰다. 그때는 단순해서 그 말에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지만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웃긴 게, 자기도 알고 있었다는 거다. 자기의 위치가 단체 내 여자 고등학생·대학생에게 다가가 잘 대해 주면 넘어올 거라는, 자신이 가진 지위의 이점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번 시작된 관계는 그 뒤로도 꾸준히 이어졌다. 이동현 목사는 A의 집 앞에서 A를 차에 태워 교외 모텔로 향했다. 카운터를 지키는 사람이 없는 '무인텔'을 주로 이용했다. 교복 입은 A를 발견한 모텔 주인이 뛰어나와 청소년은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막은 적도 있었다.

A는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동현 목사가 하자는 대로 끌려다녔다. 이 목사에게 벗어나려고 머리를 짧게 자르고 거처도 옮겼다. 하지만 이동현 목사는 어떻게든 그를 찾아 냈다. A가 더 이상 만나지 못하겠다고 하면 이동현 목사는 사탄이 사역을 흔들고 있다는 논지로 설득했다. A는 이동현 목사에게 끌려다닌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적어도 다섯 번에서 열 번 정도 아예 연락을 끊고 안 만났다. 하지만 이동현 목사는 어떻게든 나와 연락하고 또 설득해서 다시 성관계를 맺었다. 이런 관계가 쳇바퀴 돌듯 반복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박차고 나오면 되는 건데… 그렇게 붙잡혀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때 이동현 목사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한국 사회에서 여자가 이런 식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네 인생은 망한다'는 거였다. '너 나랑 이래 놓고 이제 시집 어떻게 갈래'라는 말도 많이 했는데,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 말보다 더 힘들었던 건 이 사실을 누구에게라도 말하면 비틴즈 사역을 망친다는 논리였다. 나는 당시 비틴즈 활동에 깊이 빠져 있었고, 내게는 이 사역이 정말 중요했다. 그는 '네가 입을 뻥긋하면 사탄이 그 말을 이용해서 우리 사역을 망친다. 그러니 고통스러운 걸 참아라. 너 한 명만 참고 견디면 성령을 훼방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나이 들어서 읽어 보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 훼방죄는 그 뜻이 아니던데, 이동현 목사는 그런 식으로 많이 말했다. 그런 논리를 펴면서 절대 아무에게도 관계를 말하지 못하게 했다. 당시에는 이 말을 듣고 나면 정말 말을 못했다. 나는 그만큼 비틴즈 사역에 푹 빠져 있었으니까.

정말 못하겠다, 미치겠다, 나를 놓아 달라' 애원해도 안 된다고 했다. 우리는 계속 만나야 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자기가 나를 놓아줄 수 있지 내가 원할 때 떠날 수 없다'였다. 내가 떠나면 자기'는 너무 힘들어서 사역을 못 한다고 했다. 그때는 그 말을 듣고 떠날 수 없었다. 그런 말로 협박을 많이 했다."

이동현 목사는 청소년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동현 목사는 매해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라이즈업코리아대회'를 비롯 라이즈업무브먼트가 주관하는 대부분의 행사에 강사로 나선다. 청소년들은 이동현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자란다. (라이즈업무브먼트 시청 대회 홍보 영상 갈무리)

벗어나려 애써도, 놓아주지 않았다

관계가 시작된 지 두 달 후, A의 엄마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됐다. 하필 어버이날 전날이었다. A는 그때 심경을 토로하며 눈물을 흘렸다. A의 엄마는 이동현 목사에게 전화해 각서를 받았다. 더 이상 딸을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이 목사는 언제나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A와 관계를 가지는 동안에도 경건한 생활을 강조하고 죄에 대해 설교했다. 술 마시고 담배 피는 사람들을 경건하지 못하다 정죄하고 포르노 보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A가 괴롭다고 하면 정신력이 약하다고 나무랐다. A에게 자신이 짓는 죄는 다른 종류의 죄와 다르다는 점도 강조했다.

대학에 간 A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동아리 활동은 절대 하면 안 되고, 남학생들과 일대일로 만나는 것도 안 된다는 이동현 목사의 말을 들었다. 어쩌다 한 번 남자 학우와 식사한 것을 알게 된 날이면 이 목사는 불같이 화를 내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A를 향한 이 목사의 집착은 심해졌다.

대학교 1학년 2학기, A는 극도의 우울증 때문에 일상생활을 이어 가지 못했다. 학교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면증에 우울증이 겹쳐 눈을 뜨면 오후인 경우도 다반사였다.

결국 A는 1학년도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뒀다. 해외로 떠나려고 준비에 돌입했다. 무릎 꿇고 빌어도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이동현 목사에게서 빠져나갈 유일한 방법으로 유학을 택했다.

A가 해외로 가겠다는 완강한 의지를 보이자 이동현 목사는 이별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했다. 기간은 한 달, 장소는 유럽. 어머니가 의심하지 않도록 어떻게 거짓말하면 되는지 이동현 목사가 직접 지시했다. 호텔 팩을 이용해 배낭여행하는 것으로 둘러댔다. A는 여행을 다녀 오면 놓아주겠다는 이동현 목사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유럽 곳곳을 차로 돌아다녔다. 여행 과정에서도 이동현 목사는 자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약 1달 동안 함께 유럽을 여행하면서도 자신이 카메라를 든 채 A의 모습만 사진에 담았다. A 어머니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여행지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면 일부러 그 사람들과 함께 있는 A 사진을 찍었다.

해외에서도 벗어날 수 없던 관계…기나긴 터널 빠져나오기까지

벗어나려 애쓰다 결국 다시 만나는 쳇바퀴 같은 시간이 계속됐다. 한국을 떠날 때도 따라왔던 이동현 목사는 A의 인간관계와 정신세계를 철저하게 관리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고립된 생활을 했다. 그럴수록 A의 우울증은 심해졌다. 이동현 목사는 자신만이 A를 이해해 줄 수 있다며 그를 옭아맸다. 그곳에서도 이동현 목사는 싫다고 하는 A에게 성관계를 강요했다.

2007년 12월, 이동현 목사는 또 한 번 A를 또 다른 해외 모처로 불러냈다. 마지막으로 OO에 오면 정말 놓아주겠다는 말도 함께였다. 그리고 이동현 목사는 약속을 지켰다.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A와 성관계를 강요하다가, 이제 너를 놓아줄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A는 오랜 시간 자신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구속했던 이동현 목사에게 분노했다.

이후 A는 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동현 목사는 꿈 많던 청소년 시기부터 A를 정신적으로 조종하고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분출구로 이용했다.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고3 때부터 A를 괴롭혀 온 우울증 때문에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자살할 때 쓰는 밧줄이 눈앞을 떠다닐 정도였다. 불면증 때문에 처방받은 수면제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동현 목사는 목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 A를 구속했다. 피해자는 이동현 목사와의 관계를 주변에 알리고 싶어도 사탄이 사역을 방해한다는 말에 짓눌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피해자는 정신적으로 고립됐고 결국 극도의 우울증을 앓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마지막이라며 해외로 불러냈던 이동현 목사는 또다시 A와 만남을 시도했다. A가 전화를 받지 않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니 꼭 전화하라"는 메시지를 담아 메일을 보냈다. A는 그때 처음으로 이동현 목사가 신앙적인 말로 자신을 조종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A는 이동현 목사가 "영어에 능통하니 해외 사역에 통역사로 따라다니라"라고 말하자 왜 의도를 숨기고 간사하게 하나님나라를 이용하느냐며 거부했다. 이후 연락이 아예 끊겼다.

정신적으로 고립된 채 4년을 보낸 A는 처절한 외로움에 더 이상 혼자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어머니에게 다시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과거에 끝난 줄 알았던 관계가 이어져 온 것을 안 어머니 역시 분노했다. 이동현 목사에게 연락해 다시는 딸과 만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 냈다. 두 번째 각서였다.

이후 A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약물 치료로 시작해 상담 치료도 병행했다.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학대 피해자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조금씩 회복했다. 더뎠지만 최선을 다해 학업도 마쳤다.

치료 중 만난 누구도 A를 정죄하지 않았다. 오히려 위력을 이용해 청소년을 성적으로 학대한 이동현 목사를 문제 삼았다. A를 상담하던 상담사는 이동현 목사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자고 제안했지만, 이동현 목사가 한국에 있다는 말을 듣고 포기했다.

눈물 섞인 A의 증언…이게 끝일까

10년도 지난 일, 아픈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A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과거 기억을 떠올렸다. 가끔 격해지는 감정에 눈물도 보였지만 이내 평상심을 찾고 이동현 목사가 자신에게 한 말과 행동을 일관성 있게 진술했다. A는 원치 않는 성관계도 힘들었지만 이동현 목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묘한 말로 수년간 자신의 정신을 지배했던 것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

이동현 목사가 A를 OO로 불러내 이제 끝내자고 말한 것은 2007년 12월이다. 관계가 완전히 끝난 것은 2008년 중순이다. 이동현 목사는 그 뒤로 자기 삶을 돌이켰을까. 그 후 이야기는 다음 기사에서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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