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미완성인 교회
영원히 미완성인 교회
  • 최태선
  • 승인 2016.08.06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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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정말 교회를 떠나야 할 때'라는 말의 의미

"보고 싶은 교회"라는 제 글이 매체에 올려지면서 '지금은 정말 교회를 떠나야 할 때'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어떤 분이 댓글을 통해 글의 취지와 다르다는 항의를 하였습니다. '지금은 정말 교회를 떠나야 할 때'라는 제목이 단순히 자극적인 것을 넘어 글을 올린 기자의 성향이 반 기독교적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댓글을 보고 '지금은 정말 교회를 떠나야 할 때'라는 제목을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것이 반 기독교적이 아닐뿐더러 기존의 교회를 부인하거나 허무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글에서 가나안 성도들의 흐름이 이 시대의 영적 흐름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정말 교회를 떠나야 할 때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의미를 조금 더 심도 있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두 갈래 길

<종교의 미래>는 <세속도시>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하비 콕스의 다른 책입니다. '예수의 시대에서 미래의 종교를 본다'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의 원제목은 <The future of Faith>입니다. 이 책에서 하비 콕스는 바야흐로 성령의 시대가 오고 있으며, 이 흐름을 막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바로 '근본주의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설명만으로도 "지금은 정말 교회를 떠나야 할 때"라는 제목을 놓고 갈라졌던 사고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저와 기자님은 바야흐로 다가오고 있는 성령의 시대를 바라보고 있고, 제목에 항의하여 댓글을 달았던 독자의 정체성이 바로 근본주의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바야흐로'라는 단어가 상징하듯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금 한창'의 의미로,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금 막'이기 때문에 아직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거나 과거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거기에 저항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비 콕스(Harvey Cox) 교수

성령의 시대를 하비 콕스는 종교적 감성이 "내재적인 것 속에 있는 신성한 것의 재발견" 또는 "세속적인 것 안에 있는 영적인 것"으로 흐르고 있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러면서 "신의 장엄함이 가득 차 있는 곳은 우리들의 일상 삶의 세계"이지 다른 세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래도록 진지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했던 일상의 영성이 이제야 부각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께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벧후3:8)는 성서의 말씀이 새삼스러워집니다. 

여기서 하비 콕스는 신앙(faith)과 믿음(belief)을 구별합니다. 신앙은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확신"입니다. 신학자 틸리히는 이를 두고 '궁극적 관심'이라 했고, 히브리인들은 '심장'이란 낱말로 그것을 가리켰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견해'와 같은 것으로 훨씬 명제적인 것이어서 신조(信條)처럼 결정적인 마음의 변화가 없이도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도 성령의 시대의 중요한 특징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던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현실을 보고 신앙의 길을 추구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꼭 집고 넘어가야 할 말로, 믿음과 관련해, 콕스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느냐, 안 믿느냐는 논쟁처럼 사람들은 믿음에 관해 "낡아빠진 신 존재 증명들과 반박증명들"을 낳고 있으며, 오늘날도 도킨슨 류의 진부한 찬반의 논증이 난무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저는 개인적으로 개신교의 십일조 논쟁 역시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에서 정한 신조란 이러한 '믿음의 주요 항목들의 다발'이라고 말하면서 "판잣집 미사처부터 고딕형 대성당에 이르기까지 교회건물들이 그렇듯이, 신조는 그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때때로 그들의 신앙을 대변하는 상징물이다. 그러나 교리적인 규준과 건축상의 구성은 둘 다 목표로 가는 수단이다. 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그것을 결정적인 요소로 만든다면 그것은 밑바탕에 놓여 있는 신앙의 실제를 왜곡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개신교, 특히 한국 개신교의 경우는 '전체주의' 경향을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싸움의 빌미가 되고 분열의 원인이 되고, 그 와중에 이단을 양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추호도 틀림없이 복음의 실제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성도들에게는 두 갈레의 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를 떠나 믿음 없는 사람으로, 나아가 안티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이 길이 가장 넓은 길입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면 불과 6주 만에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아진다는 통계를 본 적도 있습니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고, 해보는 데까지 다 해보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시작도 못해보고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어쩌면 해보는 데까지 다 해 보지도 않고 지레 떠난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한 길은 하비 콕스가 말하는 신앙으로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길은 진리가 가지는 속성을 따라 매우 험하고 좁은 길입니다. 수많은 현혹시키는 방해물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특히 초입에 그래서 이단을 좇는 경우가 많고) 과거 익숙했던 믿음의 길이 잣대가 되어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끝까지 가기가 여간 어려운 길이 아닙니다. 가나안 성도들이 끝까지 이 길을 걸어 복음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확신이 되어 그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궁극적 관심이 되고, 마침내 그것이 육화되어 심장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바입니다. 

기독교 역사의 세 시기

하비 콕스는 기독교 역사를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시작한 '신앙의 시대'와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의 '믿음의 시대', 그리고 최근에 나타나기 시작한 '성령의 시대'로 나누고 있습니다.

신앙의 시대에는 예수가 보여준 자유, 치유, 연민의 새 시대가 동터옴에 대한 희망과 확신이 있었는데,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살며 그리스도의 희망을 품고 그리스도가 시작하신 길을 따라 간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그러나 4세기경에 시작된 믿음의 시대에는 예수를 모르는 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교리문답집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예수에게 거는 신앙을 예수에 관한 신조로 대체했다고 말합니다.(이것을 어떤 이들은 신앙의 예수가 믿음의 예수로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특히 이 '믿음의 시대'에 대한 바른 이해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거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속해 있는 시대이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복음과 기독교 이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통념임과 동시에 기준 잣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준이 틀린 자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것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간단해 보이는 이 일이 사실은 신성모독이 되기 십상이고 거기에 폭력이 더해지면 무시무시한 사회가 이루어집니다.

황제의 신학

콕스에 따르면, 4세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아직 단일한 신조란 게 없었고 서로 다른 신학들이 광범위하게 번창했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틴이 제국을 지배하고자 기독교를 이용하려는 영리한 결정을 내린 뒤로 문제가 달라졌습니다. 그는 이전까지 불법으로 여기던 갈릴리 사람의 새 종교를 합법적이라고 선언하며, 교회 위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했습니다. 황제가 주교들을 임명하고 파면하기도 했으며, 봉급을 지급하고 건축비를 지원했으며 구제금을 배포했던 것입니다. 그 동안에도 콘스탄티누스는 예수와 나란히 태양신 헬리오스를 숭배했습니다.(이 사실에서 저는 지난 시절 가끔씩 청년들이 크리스마스의 유래가 태양절이었다는 사실을 듣고 달려와 흥분하던 모습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갑니다.)

황제가 바란 것은 예전의 신들이 떠난 자리에 그들의 영토가 산산조각나지 않도록 기독교 신앙을 제국처럼 단일한 신조를 통해 통일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황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기독교는 제국화 되었습니다!(어떤 이들은 이것을 교회와 국가의 혼인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교회와 국가 간의 밀월시대가 열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회가 국가의 하부기관으로 전락한 가장 결정적인 악수惡手입니다.)

권력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은 허둥대며 황제의 인가 인장을 지닌 교회에 가입했고, 주교들은 제국의 권력과 유사한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오늘날 수많은 목사들이 조찬기도회에서 설교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성직자 그룹이 나타나면서, 이들의 지침은 신조화 되고, 이 신조는 성직계급과 제국의 법령에 의해 엄격하게 감시되었습니다.(개신교의 경우 목사교의 태동을 암시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시대가 가지는 속성이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황제가 소집한 공의회는 공식적인 의사결정 절차가 되었고, 기독교 복음은 황제 신학으로 각색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이단 박멸의 역사'의 개시를 알리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385년 아빌라의 프리스킬리안을 비롯한 여섯 사람이 이단으로 몰려 처음으로 처형당했습니다. 프리스킬리안은 고기와 포도주를 금하고, 성서 연구와 황홀경을 허락했는데, 불행하게도 그것은 황제의 신학과 다른 종교적 견해였기 때문에 처형되었습니다. 그 후 250년 동안 제국 당국은 25,000명이나 되는 사람을 신조상 정확성이 없다는 이유로 처형당했습니다. 그후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이 교황교서 <유일하고 거룩한 가톨릭교회>를 발표해 세속영역에서도 교황의 권위를 주장했던 시대가 되어도 신조를 중심으로 한 이단논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JRkimceo, http://blog.naver.com/prologue/PrologueList.nhn?blogId=jrkimceo)

그러나 계몽주의와 프랑스혁명, 유럽의 세속화, 20세기의 반식민주의 운동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종교적 강박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는데, 2005년에 유럽연합이 그 헌법에 '기독교'(christian)라는 낱말을 삽입하길 거부함으로써 믿음의 시대는 묘비에 비문을 새겨 넣은 셈이라고 하비 콕스는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개신교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개신교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가톨릭과는 단절된 다른 믿음이라고 여깁니다. 물론 다른 부분이 있지만, 개신교의 믿음은 온전한 복음의 회복이 아니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보아야 할 것은 단순히 면죄부와 당시 교회의 타락한 현상들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런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도록 변질된 복음이어야 했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황제 신학이 복음을 각색하였고 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폭력을 정당화하였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비폭력 평화를 말하는 하나님 나라 중심의 예수의 복음으로 되돌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톨릭이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종교개혁자들 역시 폭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더 큰 힘을 갖고자 더욱 폭력적인 교회로 만들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더 많은 전쟁이 일어났던 것은 이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평화의 나라이어야 할 교회가 폭력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황제의 신학은 지금도 버젓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콕스는 실상 지난 1,500년의 믿음의 시대 동안에도 사람들이 신앙으로 살아왔음을 지적합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문맹이었고, 사제들이 미사 중에 신조를 낭송하더라도 그들은 라틴어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교회의 입장과 상관없이 그들에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가 삶의 길잡이였으며, 그들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살아왔습니다. 믿음의 조문들을 별 생각 없이 받아들였고, 그들은 여전히 예전부터 행하던 가장행렬과 민속축제, 성자들 이야기를 즐기며 살았던 것입니다. 믿음의 시대는 이처럼 믿음과 신앙이 혼재한 시대였지만 확실한 것은 믿음이 주도하는 시대였다는 사실입니다.

개신교의 역사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가톨릭의 신조가, ~문답이나 ~신조, 칼빈주의와 개혁주의 등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신조라는 의미에서는 변함이 없었고, 경건주의자나 모라비안들, 그리고 웨슬레와 같은 이들의 신앙을 향한 쇄신 운동들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믿음의 시대는 믿음이 주도하는 믿음과 신앙의 혼재의 시기였던 셈입니다. 결과적으로 믿음의 시대는 믿음의 길에 선 사람들이 신앙의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배척하고 정죄하는 가운데 권력이 되어버린 교회를 지탱해왔고, 특히 개신교의 특성상 수많은 이단들을 양산하면서 서로간의 피아를 구분하며 싸우는 혼탁한 이전투구의 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성령의 시대

이런 혼란 속에서 새로운 흐름이 등장하고, 콕스는 이 새롭게 동터오는 시대를 성령의 시대로 부르자고 제안합니다. 믿음의 시대를 지나는 동안 성직자들은 성령에 대해 줄곧 불편하게 느껴왔습니다. 불고 싶은 대로 부는 예측불가능성 때문입니다. 그것이 교회 당국을 두렵게 만들었고 스스로 권위를 강화하여 교인들을 통제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물론 이 일이 기독교를 위한 것이라 믿었지만 바로 그 일이 성령을 무시하는, 다시 말해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신성모독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에 반항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지만 그들은 모두 신조라는 잣대에 미달하는 이단아들이 되어 단죄나 처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도미니크 수도회의 사제였던 에크하르트와 같은 사람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며 한국 개신교에서는 이현필, 유영모, 김교신 같은 이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회의 떼이야르 드 샤르댕은 "우주 역사의 총체적 전개를 '영성화'의 과정"으로 보았으며, 독일 신학자 본회퍼는 <옥중수기>를 통해, 교리적 사슬에서 해방된 미래에는 '종교 없는 그리스도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오늘날에는 종교 안팎에서 스스로 '영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고, 하비 콕스는 이를 가리켜 우리 시대에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경계가 흐려지고, 서로 침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요가에서 신비주의까지 그들에게 '영성'은 일상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바티칸에서는 요가교실에 참여하는 신도들에게 위험성을 알리고 있지만, 가톨릭 수도자들 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아시아적 영성수련인 선을 행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분야를 가리지 않고 침투해 있는 뉴에이지 운동 역시 이런 시대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타로와 같은 것 역시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현대인의 불안감과 영적인 희구의 자연스러운 발로입니다.

이런 현상들을 우려해 반작용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근본주의입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의무적인 신조체계를 다시 강조하고, 신화적인 흠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으며, 진리의 배타적 독점을 주장하고, 때때로 폭력적이기까지 합니다. 그들이 따르고 있는 믿음의 길에서 이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비 콕스는 이들을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막으려고 애쓰는 배후세력이라고 지적합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속성상 전체주의자들이 되기 마련입니다. 전체주의자들은 자아를 절대화하고, 타자(Otherness)를 피아로 구분하여 자아에 포함시키거나 말살하려는 폭력성을 띠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눈앞에 다가와 있고, 늘 회자되고 있는 '종교전쟁'은 바로 이런 전체주의자들로 인해 실현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하비 콕스는 맨 처음 나타난 신앙의 시대와 지금 드러나고 있는 성령의 시대에 유사점이 있다면서, 그 당시 신조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은 신조의 중요성이 사라지고 있으며, 당시에 성직계급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은 성직계급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개신교의 목사무용론이나 목사교의 종말은 같은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신성에 대한 이론보다 신성에 대한 '경험'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개신교에서는 영적 체험의 강조에 따른 신사도 운동의 확산) 즉, 지금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신비에 대한 경외감이 신조보다 중요하다는 것인데, 이를 두고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이를 느낄 수 없고 경외에 홀릴 수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다름없으며, 꺼져버린 촛불이다." 제가 다른 글에서 가나안 성도들이 '우상과 이성'을 넘어 '신비'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런 점을 표현한 것입니다.

영원히 미완성인 교회

하비 콕스가 말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고, 그가 말하는 것이 한국교회 현실 안에서는 앞서 나가는 느낌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역사 안에서 예전에 이단으로 몰렸던 사조들이 다시 신원이 회복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발도의 경우 수백 년이 지나서 '이단 해제'라는 판결을 받아냈으며, 가톨릭과 종교개혁자 모두에게서 이단 판정을 받았던 아미시나 메노나이트와 같은 아나뱁티스트 역시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16세기 종교개혁이 주장했던 바를 상당히 수용한 바 있으며, 생태위기에 직면해 마이스터 엑카르트나 빙엔의 힐데가르트, 막데부르크의 메히틸드 같은 사람들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역사가 흐른다는 것은 곧 성령이 지금도 걸음을 멈추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교회 역시 성령의 역사 안에서 어느 한 과정을 지나고 있는 순례자이며, 완결된 존재가 아닙니다. 교회는 미래의 하나님에게로 가는 여정 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비 콕스의 지적은 그 자체로 액면 그대로 진리는 아니라 해도 충분히 참고할만한 재료를 내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종교간 장벽을 넘어서, 교리와 신조의 틀을 잠시 접어두고 그분의 음성을 다시 새롭게 들어볼 기회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런 의미에서 지금은 정말 교회를 떠나야 할 때입니다. 그것은 교회를 허무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성령에 이끌려 하나님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물론 가나안 성도들 모두가 그곳을 향해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표지판을 제공하려는 것입니다. 교회는 미래형으로 존재하는 영원히 미완성인 지향점입니다. 다른 말로 우리가 교회를 완성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인 우리가 영원히 몸 바쳐 헌신할 수 있는 신앙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록 우리에게 주어진 시험의 기회일 뿐이지만 인간에게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 자체가 은혜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정말 교회를 떠나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시대에만 주어진 특별한 일이 아니고 진리를 향해 가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순례의 여정입니다. 다만 콕스가 '성령의 시대'라 이름 붙인 이 시대에는 더욱 주목하고 주의해야 할 시대적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새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를 떠나는 이도, 남아 있는 이도 모두 믿음의 시대의 패러다임에 갇혀있는 기존의 교회를 떠나 새롭게 신앙의 길에 들어서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롬11장 참조)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며 줄곧 머리에 떠올랐던 말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한다."

가나안 성도들도,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성도들도 영원히 미완성인 교회를 향해 겸손하게 성령의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이 제가 '지금은 정말 교회를 떠나야 할 때'라고 말한 본래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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