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은퇴는 '소명'이다
목회자의 은퇴는 '소명'이다
  • 경소영
  • 승인 2016.08.1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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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메릴랜드 주 빌립보교회 송영선, 박동훈 목사

[미주뉴스앤조이 = 경소영 기자] 바야흐로 기독교 수난 시대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회 지도자들이 기독교를 부끄럽게 만든다. 돈, 성범죄 등을 기본으로 문제도 다양하다.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교계 사건 사고 소식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교회 안의 권력관계가 그 원인인 경우가 많다.

특히 목회자는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 목회자를 중심으로 교회를 개척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한국교회라면 중요성은 더하다. 그런 한국교회에서 예배 순서의 꽃은 단연 설교 시간이다. 본래 목사는 교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의 직분을 맡은 자일 뿐이지만,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로 여기게 한다. 교회 안에서 목사와 교인은 특별한 권력 구조에 놓인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는 신적 권력을 지닌다. 어느새 '주의 종'이라는 특권을 가지게 된 목사는 그 이름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교회가 클수록 목사의 당당함은 하늘을 찌른다. 가만히 있어도 교인들이 떠받든다. 목사가 불미스럽게 교회를 떠나는 일이 생기더라도 교인들은 퇴직금을 두둑이 주어야 한다고 여긴다. 교회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목사의 공이 지대했다는 이유다. 과정이야 어떻든 목사는 교회의 영웅이다. 그런 영웅에게 교회는 재산이 되고, 왕 같은 권력을 누리는 영웅에게 세습은 당연한 수순이다. 아니 평생 머물 수 있다면 절대 물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은 이제 목사라면, 더구나 큰 교회 목사라면 넌더리가 난다. 교회에 뭔가 기대했다가 실망만 얻어가기 일쑤다. 교회에 대한 절망에 빠졌을 무렵, 메릴랜드 빌립보교회를 방문했다. 한인 교회 사이에서는 '머슴교회 세미나'로 잘 알려진 교회다. 머슴교회를 강조한 송영선 담임목사는 65세 정년을 맞아 퇴임을 앞두고 있다. 궁금했다. 한국 교계의 보편적 정년인 70세에 못 미치는 65세에 조기 은퇴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담임목회 실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송영선 목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런데 한 명의 목사가 더 있었다. 송 목사는 오늘 인터뷰의 진짜 주인공은 자기가 아니라고 말하며 함께한 목사를 소개했다. 그는 빌립보교회 2대 담임으로 청빙된 박동훈 목사였다. 송 목사의 은퇴 이야기를 들으러 왔는데 후임 목사를 소개받았다. 예상하지 못한 두 목사와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올해 65세 정년을 맞아 은퇴하는 송영선 목사

은퇴, 목회자에게 어떤 의미인가

목사가 은퇴할 때가 되면 교회는 으레 소란스럽다. 후임 목사를 청빙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은 경우도 많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원로목사와 후임 목사 간의 팽팽한 권력 다툼도 있다. 급기야 그 싸움에 교인들까지 휘말려 편이 갈리기도 한다. 목사의 은퇴는 늘 복잡하여 각종 문제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닌다. 조기 은퇴를 결심한 송 목사의 결단이 궁금했다. 

“65세 은퇴가 우리 교회 법이기 때문에 은퇴하는 시기가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인들과 함께 법을 제정할 때 저도 있었으니 제가 정한 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꼭 지켜야만 했어요.”

그의 대답은 간단 명료했다. ‘한국 교회의 많은 목사들이 은퇴하기 싫어해서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라는 질문에도 ‘맞다’고 짧게 답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송 목사는 ‘은퇴도 소명’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소명을 보통 부르심이라고 하죠. 부르심이 없으면 은퇴도 힘든 게 사실입니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어요. 저는 다행히 은퇴하기 3년 전에 하나님이 부르심을 느꼈어요. 기도하면서 교회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그 변화를 이끌어 나갈 적임자가 아니었어요.”

송 목사에게 온 부르심은 사도행전 말씀이었다. 그 당시 교회들은 유대인에게만 전도했고, 이방인인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금기로 여겼다. 안디옥교회가 헬라인에게도 예수를 전파하여 수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게 된 것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미주 한인 교회들은 대부분 한인에게만 전도해요.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한정적인 전도만 해왔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사도행전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데 ‘왜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는가’라는 질문이 어느 날 저에게 ‘뚝’ 하고 떨어졌어요.”

가만히 설명을 들어보니 송 목사가 받았다는 사도행전 말씀은 그를 위한 부르심의 말씀이 아니었다. 한인 교회 목회자로서 반성하게 하는 시간을 주었다. 더불어 앞으로 교회가 새롭게 나아가야 할 방향, 선교적 교회에 대한 말이기도 했다. 

“저는 뼈 속까지 유대인이었던 베드로 같은 사람이에요. 뼈 속까지 한국 사람이죠. 저보다 다른 민족에게 더 가까이 잘 다가갈 수 있는 목회자가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씀에 감동이 된 것이지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순종해야 했지요.”

박 선교사에서 박 목사로

송 목사는 교회의 새로운 비전에 꼭 맞는 후임 목사를 찾았다며 옆에 있던 박동훈 목사를 가리켰다. 박 목사는 인도네시아에서 20년간 사역한 선교사였다. 일반 목회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선교사로만 살아왔다. 그런 그가 빌립보교회 같은 대형 교회의 후임 목사로 온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나가는 선교사로서 강력한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에 목회보다는 선교사로 사는 삶에 의심이 없었죠. 송 목사님는 32년 전, 제가 대학부 때 담당 목회자였어요. 96년에 제가 선교를 나간 후에도 계속 기도와 후원으로 동역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로 기도 제목을 나누다가 송 목사님께서 은퇴 후 후임 목사를 찾고 있으니 기도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이 대화가 있고 두 달이 지나, 박 목사는 후임 목사로 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러나 박 목사는 의아했다. 그는 미국 워싱턴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다. 한국어도 서툴고 한인에 대해서도 잘 몰랐기 때문에 한인 교회 목사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도 반대했다. 그래도 스승인 송 목사의 부탁이니 기도는 해보겠다고 했다. 그 기도가 1년 반이나 걸릴 줄 그 땐 몰랐지만 말이다.

빌립보교회 2대 담임 박동훈 목사는 인도네시아에서 20여 년간 사역한 선교사이다.

처음에는 막연히 후임자가 필요하니까 ‘사랑하는 제자를 데려오고 싶은것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송 목사와 교회의 구체적인 다음 비전을 나누고 나서부터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아내의 신장 수술이 있었다. 기도의 시간은 길어지고 깊어졌다.

“저는 사실 선교지에서도 한국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 못했어요. 한국인들이 모이는 선교 컨퍼런스 같은 곳에도 잘 나가지 않았고요. 그랬던 제게 왜 이런 제안이 온 건지 고민이 안 될 수가 없었죠. 혼란한 시간을 보내던 중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네 민족으로 돌아가라, 네 민족을 섬겨라’라고요.”

선교적 교회를 향하여

결국 박 목사는 2주간 실시한 교인 투표를 통해 빌립보교회의 차기 담임목사가 되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2세인 그는 ‘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서 한인 교회에 왔다. 미국 땅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또 다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미국은 다민족, 다인종 국가로서 다양한 문화와 선교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23년 동안 미국에서 목회한 송 목사는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는 늘 디아스포라 교회였다’라고 단언했다. 아브라함도, 이스라엘 민족도, 모세도, 야곱도, 룻도, 에스더도 모두 디아스포라 이야기이며, 안디옥 같은 디아스포라 교회를 통해서 당시 로마 제국에 복음이 퍼졌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고 했다. 송 목사는 인도네시아에서 선교에만 열중해 온 박 목사가 그 길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보았다.

“박동훈 목사는 선교적인 마음이 그 누구보다 강합니다. 미국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전 세계에서 온 많은 민족에게 복음을 잘 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선교적인 교회로 이끌 수 있을거라 믿어요.”

송 목사는 빌립보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거듭날 수 있도록 뒤에서 기도로 동역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자신도 선교적 교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빌립보교회에서 주력했던 ‘머슴교회 세미나’를 중국 등 선교지에 전파할 예정이다.

“보통 목사를 ‘주의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종이 너무 격상됐어요. 목사는 분명 종인데 너무 높은 위치에 있게 됐죠. 그것을 한국 정서에 맞게 ‘머슴’이라는 단어로 바꾸었어요. 목사나 교회는 절대 높은 곳에 있을 수 없어요. 그래서 평신도도 똑같이 한 영혼을 위해 목사의 본분인 교사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머슴교회 세미나’입니다. 열방의 많은 교회를 살리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를 통해 선교하려고요.”

머슴교회 세미나는 주의 종인 목사의 위상이 너무 높아져 버린 이 시대를 비판하고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송 목사는 머슴이 되어 전 세계로 나갈 생각에 하루하루가 설렌다. 그는 세속적 가치관이 교회로 들어와 교회가 세계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우려했다. 특히 중국의 가정 교회도 그런 현상들을 경험하고 있어 계속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은퇴하기 3년 전에 받았다던 부르심, 즉 ‘이방인을 향한 선교적 교회’는 빌립보교회를 향한 것이기도 했지만, 송 목사 자신이 받은 소명이기도 했다. 

두 목사가 각자 걸어갈 길

박동훈 목사는 선교지를 떠나 목회자의 자리로 왔지만, 선교사로서의 마음은 그대로라고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선교했던 때와 똑같이 소망이 없는 자들에게 소망을 주고 황폐한 성을 재건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가난한 자, 마음이 상한 자에게 복음의 능력이 들어가길 원한다.

“인도네시아는 회교권 나라잖아요. 저는 아직도 그곳에 마음이 있어요. 이젠 우리 ‘교회’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물론 복음을 외치는 것으로 끝나면 안돼요. 복음이 실제가 되어 내적으로 변해야 그들도 변할 수 있습니다. 선교는 어떤 프로젝트가 아니예요.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부터 시작이예요. 물론 미국 내에는 여러 민족이 있기에,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야 해요. 그리고 외부로 점점 관계를 넓혀가는 것입니다.”

박 목사의 비전은 명확했다. 앞으로 빌립보교회는 한인을 넘어,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저 교회’로서 계속 전진해 나갈 것이다. 은퇴하는 송영선 목사는 오랜 동역자이자 후배 목회자로서의 박 목사가 매우 든든하다. 그는 원로목사로 물러나 자신이 가야할 길에 더 박차를 가하고 싶다며, 서둘러 짐을 꾸리고 떠날 기대로 가득하다.

“한 영혼에 치중하고 싶어요. 교회 성장이 목표가 아니고요. 교회 안에 돈은 많은데 예수는 없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말에 동의해요. 많은 교회가 머슴교회가 되어 초대교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금과 은 없어도 내게 있는 것, 예수의 이름으로 섬기는 교회로 말이지요. 신발 끈 꽉 묶고 머슴처럼 온 교회를 섬기러 다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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