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논리
희한한 논리
  • 지성수
  • 승인 2016.08.19 2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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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에게서 희한한 말을 들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는 않을 것 같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어법이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1.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과거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는 않은 것 같다.”라는 말 조차도 성립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믿는 신관으로서는 설명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섭리론에 의하면 과거에 일어난 일은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어야 한다. 심지어 600만 유대인 학살 조차도.

2. 흔히 ‘신이 기도를 들어주네. 안 들어주네’ 하는 표현들을 많이 한다. 아직도 신이 인간의 길횽화복을 결정해 준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런 기복신앙이 종교가 자랄 수 있는 자양분이 되기도 한다. 개인의 삶과 죽음, 성공과 실패에 일일이 신의 뜻을 적용 시키는 것은 분명 미신의 범주를 벋어 나지 못하는 것이다.

3. 신학적으로 그런 신의 개념을 인격신이라고 한다. 인격신의 존재는 좋아하는 것이 있게 되고 싫어하는 것도 있게 된다.

그래서 그런 신의 존재를 믿는 이들은 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애를 쓰게 되고 그 반대를 피하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아우슈비츠와 같은 인류사의 모든 불행과 참극, 스나미와 지진 같은 재해에 대해서 조차도 억지로라도 신의 뜻을 찾으려 하다가 궤변을 늘어놓곤 한다.

4. 그러나 그런 신관은 데카르트 이전의 시대에나 통할 수 있는 신관이다. 데카르트 이전의 시대에는 관념이라는 용어는 신의 마음이 생각하는 내용만을 가르키는 말로 이용되었었다. 한 마디로도 인간에게는 생각이 필요 없는 시대이었다. 

데카르트는 이 말을 인간 마음의 적용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 전에는 오직 신의 뜻만이 있고 인간은 신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는 존재라는 인식이 통용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데가르트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던 말은 당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신에 대한 조심스러운 독립선언이었던 것이다. 즉 인간의 신의 뜻에 의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생각함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5.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말은 자신의 바램이 있는데 하나님이 실망 시키지는 않을 것 같다는 말이었다.

결국 하나님은 자신의 주머니 안에 있는 신일 뿐이다.

수도자의 기본적인 자세는 절대순명인데 반대로 이런 경우는 하나님이 내 뜻에 반하면 안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순복음식 어법이다.

6. 나는 세상에는 수 없는 기독교 종파가 있지만 단 두 가지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유슈비츠를 넘어선 기독교’와 ‘넘지 못한 기독교’이다.

이번에 교황이 아우슈비츠를 방문해서 기도를 하는 모습은 바로 아우슈비츠를 넘어선 기독교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교황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때 교황청이 침묵으로 협조한 사실에 대하여 참회를 했을 것이다. 그것 말고 거기 가서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1906년 벨기에 태생인 레옹 디그렐은 유럽이 공동으로 단합하여 공산세력에 대항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서 히틀러의 공감을 얻었고, 벨기에 안에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발룬(Walloons)이라는 의용부대를 만들었다. 이 부대는 후에 발로니아 SS 28사단(28th SS Division Wallonia)이라는 독일 정예사단으로 바뀌었으며, 디그렐은 그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나중에 철십자 기사훈장을 받은 유일한 비독일계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노르웨이 근처에서 벌어진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사단 병력 2,500명을 모두 잃고, 그를 포함하여 3 명만 살아남았다. 그는 경비행기로 가까스로 탈출하여 스페인으로 넘어가 정치 망명허가를 받은 뒤에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고국 벨기에에서 이미 1944년에 ‘부재자 사형 선고’를 언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1979년 6월 폴란드 출신의 교황이 처음으로 나치 독일이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독가스로 대량 학살했다고 알려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찾아가, 폴란드의 전체 주교들과 함께 직접 미사를 드린다는 소식을 듣고 교황에게 탄원하는 공개 편지를 썼다. 그러나 이 편지는 벨기에 당국이 형법에 저촉된다고 하여 내용 공개가 불법화되어 있다. 

다음은 그 편지의 일부분이다.

“교회는 지난 2천 년간 다칠까 봐 늘 조심하고 과감한 일을 피하는 안일주의로 일관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항상 풍파가 지나고 파도가 가라앉고 찢어질 것은 다 찢어진 다음에, 그리고 모든 것이 알려진 다음에야 증거를 수집하여 판단을 내리는 버릇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 드리자면, 교회가 2차 세계대전 중에 극도로 자제하고 있었다는 혐의를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미치광이 놀음에 끼지 않으려고, 거슬러 올라가는 쪽으로 노를 잡지 않았던 것 아닙니까?“

한 마디로 “나는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지성수 목사 / '군종, 교목, 원목, 빈민목회, 산업목회, 개척 교회, 이민 목회등을 거쳐서 지금은 현장 목회를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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