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참 목회자, 당신이 든 횃불 우리가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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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영
  • 승인 2016.08.22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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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형규 목사 추모예배, 뉴욕지역 한신 동문회 주관으로 후러싱제일교회에서 열려

한국 민주화의 큰별 고 박형규 목사 추모 예배가 뉴욕 후러싱제일교회에서 지난 21일 열렸다. 뉴욕지역 한신 동문회 주관으로 진행된 이날 예배에는 고 박 목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30여 명이 함께했다. 추모객들은 한국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고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하라’는 성경적 교회를 세워가려 한 박 목사의 죽음을 애도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되새겼다. 

이날 예배에서는 김영호 목사(미동부 생명의전화 대표)가 참석자를 대표해 기도했다. 김 목사는 예수만 따라 살았던 고 박형규 목사의 삶을 우리가 기억하여 '예수 결핍증'에서 벗어나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도록 해 달라고 간구했다. 

"주님, 우리는 모두 예수 결핍증을 앓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예수쟁이 박형규 목사를 추모하는 이 시간, 우리 모두가 바보 같으나 바르게 살아 간 박 목사처럼 예수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이로 인해 박 목사가 깨닫고 강조한 '교회가 참 교회가 되게 하라'는 진리를 실천하도록 도우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영호 목사(미동부 생명의 전화 대표)가 회중을 대표해 기도했다.

이어서 한국기독교장로회 증경총회장 서재일 목사(원주 영강교회)가 설교했다. 서 목사는 마가복음 8장 31~38절을 본문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라는 제목으로 추모 설교를 진행했다. 특히 여전히 어두운 시대, 전쟁 분위기와 사드 등 무기 경쟁이 곤고해 지는 상황에서 박 목사의 의지를 신앙의 후배들이 잘 계승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우리교회 전수희 자매가 고 박형규 목사를 추모하며,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불렀다. ⓒ<미주뉴스앤조이> 경소영
기장 증경총회장인 서재일 목사(원주 영강교회)가 추모 예배 설교를 담당했다. ⓒ<미주뉴스앤조이> 경소영

“히틀러 집권 당시, 독일의 고백 교회는 당시 히틀러를 비판하기 앞서 교회를 비판했다. 민족, 잘못된 신학으로 히틀러를 지지하는 교회를 지적했다. 박 목사도 예수 십자가가 없는 이상한 상황에서 성서적인 교회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회퍼 목사와 같은 삶을 살아갔다. 박 목사 소천을 추모하며 교회다운 교회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십자가 없는 축복을 기대하며 걸어간 분이 아니었다. 많은 고난을 받았다. 가난하고, 욕도 먹고, 고문받는 상황에서 살아갔다. 늘 나의 주 예수가 말씀한 내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한 가지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말씀했다. 목사가 당연한 길을 걷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말이다. 우리도 부끄럽지 않게 그가 보인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한다.” 

박세현 성도가 박형규 목사의 약력을 소개하며 간단한 영상을 준비했다. ⓒ<미주뉴스앤조이> 경소영

고 박형규 목사의 약력 소개는 한신대 출신 박세현 씨가 영상으로 준비했다. 박세현 씨는 영상을 상영하기에 앞서 박 목사 약력을 간단히 소개했다. 소개자는 1973년부터 99년까지 박 목사가 담임하던 서울제일교회를 출석했다. 그런 그가 기억하고 추모하는 박 목사는 다음과 같은 사람이었다. 

“박 목사는 큰 어르신이었고, 많은 사람 삶에 깊이 새겨진 분이다. 참된 신앙과 사회 정의, 풍류를 교인들과 함께 나누며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였다. 어느 곳에 실린 간단한 박 목사 소개 글을 보았다. 직업 목사, 즐겨 입는 옷 두루마기, 특기 춤, 자주 가는 곳 감옥과 길거리로 적혀 있었다. 개인적으로 웃음을 특징으로 추가하고 싶다. 포승을 당해서도 웃었고, 억울한 재판장에서도 뒤를 돌아보며 웃음으로 우리를 위로했다. 많은 후배에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 준 아름다운 사람으로 우리는 기억한다.”

유니온 신학교 정현경 교수가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미주뉴스앤조이> 경소영

고인을 이 시대 참 어른, 스승으로 기억하는 건 추모사를 읽은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고 박형규 목사가 공부한 유니온신학교 졸업생을 대표해 추모사를 낭독한 정현경 교수(유니온신학교)는 고인을 떠올리면 신앙과 풍류가 생각난다고 했다. 특히 어두웠던 한국 사회의 큰 어른이자 예언자였다며, 고인을 추억했다. 

"박형규 목사는 우리를 가르쳤던 참 스승이었다. 특히 제가 에큐메니컬 운동을 하면서 계속해서 멘토로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던 분이다.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간다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대화하곤 한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다음 세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과 나 자신에게 진실했는가. 다음으로 그러한 진실함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했는가. 마지막으로 말과 행동에 책임을 졌는가. 고인은 모든 부분에 포함된다. 그는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는 육화된 신학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가끔 그는 어른, 스승, 등대, 횃불, 씨 뿌리는 자로 우리 곁에 존재했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선배, 따라가고 싶은 스승이었다. 당신께서 올린 횃불 절대로 꺼트리지 않겠다. 뿌린 씨앗은 푸르게 키우겠다. 평안하게 가시기를 바란다. 샬롬." 

김정호 목사(후러싱제일교회)는 추모사를 낭독하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미주뉴스앤조이> 경소영

감리교 목사지만, 고 박형규 목사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김정호 목사(후러싱제일교회)도 고인을 따뜻하게 사람을 품어주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김 목사는 고 박형규 목사와 만나고 자신을 찾아주었던 일화를 나누며, 고인이 떠나간 사실에 슬퍼했다. 

"지금이야 말로 어르신이 계셔야 하는 시기인데,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이 시대에도 망명가는 많다. 이론가도 많다. 하지만 고인과 같은 분은 없었다. 박 목사는 조직 운동가였다. 일을 이뤄낼 줄 아는 리더였다. 다른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다. 그 분은 사심이 없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고, 술 한 잔 드시고 춤추며 나아갔다. 

우리가 사는 시대, 80년대보다 더 어렵다. 목회 30년 했어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야 하는지 목회해야 하는지 쉽지 않다. 믿고 따를 어른이 계셨던 그 시절이 그립다. 그 시대 어른들이 우리 시대에도 반복될 수 있을지. 마지막 어른이 떠난 것이 너무 슬프다."

추모 예배 인도는 조원태 목사(뉴욕 한신동문회장, 뉴욕우리교회)가 담당했다.

이날 추모 예배는 조원태 목사(뉴욕 한신동문회장, 뉴욕우리교회)가 진행했다. 조 목사는 젊은 목회자가 고 박형규 목사의 후배라는 것으로 추모하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모두가 우러러 보던 분을 추모하는 자리에 나와 고인을 소개하고 기념해 주신 많은 분들이 고 박형규 목사님처럼 젊은 세대의 어른이 되어 또 다른 박형규 같은 등대가 되어주신다면 계속해서 그 분의 뜻이 이어질 것 같다"는 말로 추모 예배를 마무리했다. 예배 축도는 뉴욕우리교회 원로목사인 양희철 목사가 진행했다.  

뉴욕우리교회 원로목사이자 증경 뉴욕한신동문회장인 양희철 목사가 축도하고 있다. ⓒ<미주뉴스앤조이> 경소영
이날 예배에는 30여 명의 추모객이 모였다. ⓒ<미주뉴스앤조이> 경소영
추모 예배에 참가한 이들의 기념 촬영ⓒ<미주뉴스앤조이> 경소영
뉴욕 한신동문회 기념 촬영 ⓒ<미주뉴스앤조이> 경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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