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당신은 무엇을 구하십니까?
한 해의 마지막, 당신은 무엇을 구하십니까?
  • 최태선
  • 승인 2009.12.26 04: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최태선 목사의 평화의 사람들(13)

공자와 친하게 지냈던 안자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공자는 서당 선생이고 안자는 재상이었으므로 사람들은 당연히 안자를 더 많이 따랐습니다. 그때 공자는 요즘 말로 하면, 동네 통반장을 하려고 해도 안자가 반대해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공자는 일생을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 다니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살아있을 때는 안자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지만 2,500년이 지난 지금에는 공자만 있습니다. 안자가 공자의 친구였는지, 안자라는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장자와 친했던 혜자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뒤에 혜자는 재상이 되었는데, 재상이 되고 나서 늘 장자를 경계했습니다. 어느 날 장자는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혜자가 보고 싶어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혜자는 자기 자리를 빼앗으러 왔다고 생각해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자리를 주어도 오히려 마다할 장자를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사정을 눈치 챈 장자는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는 그냥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떻습니까? 살아있을 때는 혜자의 힘이 컸지만 2,500 년이 지난 오늘날 혜자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장자는 여전히 사람들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공자와 안자, 장자와 혜자의 짧은 이 이야기 속에는 참으로 많은 내용과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보고 또 고민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또 그것을 보고 고민을 한들 공자와 장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이 이야기가 다만 필요한 때 자기합리화를 위한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거나 생각만큼 충분한 대접을 받지 못했을 때 마치 이솝 우화의 '신 포도'처럼 위의 이야기들을 떠올리거나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위 이야기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의 삶의 전형에 대해 말해줍니다. 높은 의식 그리고 깨달은 바를 실천하는 삶은 세상의 성공과는 무관하거나 오히려 멀어지게 합니다. 그의 삶은 필연적으로 대중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그에게 특이한 것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와 함께 그것을 나누기에는 너무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을 영악한 대중들은 아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들 편에 서기보다는 대중 속의 일원이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명심해야 할 것은 그 외로움이야말로 그러한 삶을 지탱하고 유지시켜주는 끈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특이하게 그러한 삶을 사는데도 불구하고 대중의 이해와 인기를 누리게 된다면 그가 이제까지 추구하던 원칙과 진리가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대쪽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에 정치판에 불려나온 사람도 대중으로부터 부름을 받는 순간 그의 곧은 삶은 고집과 어리석음으로 변하고 맙니다. 원칙을 지키고 본질을 추구하던 교회도 성장하여 일정 규모를 넘어서는 순간 원칙을 지킬 수 없고 본질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히 단언하거니와 진리는 결코 대중과 함께할 수 없고, 진리를 추구하는 삶은 결코 세상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성전 건축을 마치고 감사의 예배를 드린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느냐?" (대하1장7절)

솔로몬은 지혜와 지식을 구했습니다. 다른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욕심은 채울 수 없는 '블랙홀'입니다. 그가 구한 것은 사명의 삶임과 동시에 진리의 삶이었습니다. 그는 왕이면서도 진실 되고 바르게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볼수록 참으로 대단한 왕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감탄하셔서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존영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너로 치리하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존영도 주리니 너의 전의 왕들이 이 같음이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이 같음이 없으리로다." (11-12절)

만일 내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대답을 했을까요? 그러나 실상은 우리도 늘 일상 속에서 이런 질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과 같이 연말이 다가오면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반성의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새해가 되면 덕담을 나눕니다.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것, 일상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을 빌어줍니다. 부나 재물이나 존영이나 다른 이의 인정 등이 그것일 것입니다. 진리의 삶이나 십자가의 길과 같은 내용이 반성의 내용에 포함되거나 덕담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에 대한 답이며 선택입니다.

솔로몬이 처음에 구한 지혜와 지식은 바로 사명의 삶이며 섬김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지혜와 지식과 함께 부귀와 영화를 누립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그 지혜와 지식 덕에 지켜야 할 마지막 선까지 넘어가지는 않았지만 그의 삶은 그러나 부귀와 영화와 함께 녹아내립니다. 그리고 인생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연약함과 짧은 인생 앞에 자신이 하찮은 존재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착각 속에 살았던 자신의 진면목을 그제야 발견한 것이지요. 그러한 그의 삶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진리와 대중의 인기, 영원한 가치와 세상의 성공은 결코 같이 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3,000년이 지난 지금 이스라엘이 가장 존경하는 왕은 모든 것을 가지고 누렸던 그 솔로몬이 아니라 다윗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다윗도 부자였다고 말하고 싶은 분은 그냥 말없이 부를 택하십시오.) 다윗이 더 존경받는 이유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참된 지혜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세상의 그 어떤 인간도 슬기롭고 현명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 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즉 건강과 장수, 부와 명예도 하나님께 맡깁니다. (논리적으로는 너무도 간단한 이 일이 현실 속에서는 왜 그리도 어려운지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14장26-27절)

너무도 단호한 말씀입니다. 지혜는 모든 소유로부터의 탈출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소유로부터의 탈피와 포기를 의미하는 십자가야말로 지혜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고, 스스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야말로 지혜 그 자체입니다. 그분의 일거수일투족이 시공을 초월하여 세상의 빛이 되고 있음은 그러므로 필연입니다.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새해가 밝아올 것입니다.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구하실 것입니까?

영원의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구해야 할 것은 지혜입니다. 세상적인 의미에서의 성공으로부터는 멀어질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할 것입니다. 대중으로부터는 외면을 받기도 할 것입니다. 그 일은 아주 많이 외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공자와 장자가 말해주고 있듯이, 솔로몬이 말해주고 있듯이,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시고 있듯이 아주 먼 훗날을 바라보는 지혜의 삶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그것이 구원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입니다.)

나는 지금 어떤 것을 구하고 있는가? 이 짧은 질문 하나에 나의 삶 전체가 담겨 있습니다. 구랍의 차디찬 한겨울 바람이 불어옵니다.

"저를 주의 연료 삼으소서. 하나님의 불꽃 되게 하소서." (짐 엘리엇, 1948)

최태선 / 어지니교회 목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