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한 신앙'으로 착각하지 말라
'근사한 신앙'으로 착각하지 말라
  • 최태선
  • 승인 2016.10.29 02: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혁과 갱신이 난무하는 한국교회에서 유난히 독야청정하고 있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근사한 신앙'을 내세우는 높은 뜻을 가진 분들의 교회입니다. 기왕에 하고 있는 신앙생활이 근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신앙생활에 근사하다는 형용사를 사용해도 좋은 것일까요?

'근사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그럴듯하게 괜찮거나 썩 훌륭하다'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근사한 신앙'이라는 말이 타당할 수 있을까요? 근사한 신앙이란 한 마디로 스스로의 신앙에 만족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신앙생활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의 신앙생활이 참되다면, 그것은 날마다 자기부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며 전심으로 섬겨 보십시오. 이만하면 되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지, 그런 만족감은 피상적인 시늉이나 위선자들에게나 가능한 오만함이라는 걸 쉬이 알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쏟아 부으면 부을수록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특 한 번 던진 사랑으로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아를 부풀리려는 구색 맞추기나 선전용 투자를 했다는 반증입니다.

인간은 가능과 불가능, 업적과 효율을 헤아리고 따지기 마련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내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십시오. 과연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낸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있는가를. 하나님이 인간의 힘과 능력을 사용하시는지를.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차별하신 적이 있는가를.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이렇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고전1:26-29)

하나님은 결코 힘과 능력을 가진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십니다. 간혹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세와 사도 바울이 그 같은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당대의 가장 뛰어난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학문에서도, 무예에서도, 가문에서도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자 40년간이나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비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고백을 할 때가 되어서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주님을 만난 이후로 최소한 13년 이상을 한적한 아라비아 사막에서 무명의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바나바가 와서 자신을 데려갈 때까지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역시 자신의 자랑인 모든 것을 버려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 지혜와 권력과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자 버려야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는 단순히 그것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배설물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인간의 능력을 폄하하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또 이렇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고후12:9-10)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약함의 신학'입니다. 자신의 능력이 끝난 곳에서 주님의 능력이 비로소 시작된다는 놀라운 비밀을 그는 깨달았던 것입니다. 거기에 이르고자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거기에 이르고자 모진 고난과 역경을 지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신이 약할 때 강하다는 사실을 공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가난한 사람을 돕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성공하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가능한 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근사한 신앙'으로 착각하거나 합리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근사한 신앙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는 것입니다. 근사한 신앙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시작되고 머물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근사한 신앙은 자신을 위한 것일 수는 있지만 결코 하나님을 위한 것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 속으로 들어가면 우리의 자아는 점점 더 작아집니다. 능력의 한계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무익한 종'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근사한 신앙'은 인간 중심의 오만한 어리석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된 신앙은 처절한 고민과 선택, 자기 부족의 고백으로 점철될 뿐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샬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 그 기쁨, 그 행복, 그 온전함을 맛보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