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굿판' 입니다.
우리 교회는 '굿판' 입니다.
  • 최태선
  • 승인 2016.11.07 12: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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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일들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거리로 뛰어나와야 할 정도로 분노하고, 대통령의 지지도는 한 자리 숫자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페이스북에서 대통령을 사랑한다는 말을 올린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이 지금 제 정신인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 목소리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글들이 대세입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토록 단단해 보이던 권력도 막상 위기의 순간이 닥치면 철면피한 배신자들로 이루어졌었다는 것이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예외 없이 그런 모습의 사람들이 인간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가린 얼굴 모습에서 하나님을 피해 숨었던 최초의 인간의 모습이 오버랩 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돈과 권력의 힘으로 마지막 힘을 쓰고 있지만 이번에는 벗어나기가 그리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손상이 간 대통령의 위상 탓에 권력의 시녀인 검찰도 순순히 말을 들을 것 같지 않고 무엇보다 성난 민심의 기세가 만만해 보이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눈치를 보며 망설이던 정치가들도 꼬리를 내리고 사과를 하고, 기회주의자와 같이 처신하려는 이들도 어쩔 수 없이 '하야'하라는 민심에 반응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정국은 변하고 있습니다. 혼란을 걱정하며 당장의 하야는 어렵다는 신중론을 내세우는 사람들과 지금보다 어떻게 더 나빠질 수 있겠느냐는 반론이 첨예하게 대립된 가운데 정국은 한 치 앞을 모를 정도로 하루하루가 다르게 펼쳐지고, 그 와중에 정권실세로 떵떵거리던 사람들이 하나씩 조롱거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우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질문하시는 하나님께,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냐고 되묻던 가인의 모습이 이들 모두에게서 떠오르는 것은 사건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에게서 가인이 보여주었던 바로 그 뻔뻔함을 보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 못하고 죽은 귀신은 없다는 말이 새삼 실감나는 요즈음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제하고, 관련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 차례가 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인간은 당사자와 방관자의 입장이 이처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조석변개의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건의 중심에 있는 두 인물과 관련되어 교회가 등장했습니다. 사교의 교주로 여겨지는 최순실이 몇 교회를 전전하다 최근까지 한 교회에 출석했고, 황태자라 불리는 차은택은 교회의 자랑거리가 되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던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한국교회의 민낯이 드러났고, 그것을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최순실

최순실이 교회를 다녔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세인들은 그녀를 영세교 교주로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더구나 최순실이 교회에 와서 편안함을 느꼈답니다. 독일에 피신해 있을 때에도 수첩에는 찬송가 가사가 적혀 있었다는 내용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교회에 와서 편안함을 찾는 것은 비단 최순실만이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편안함을 찾습니다. 위로나 평안이나 힐링과 같은 다른 단어들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거의 모든 교회에서 힐링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저는 힐링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목적을 왜곡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부르심에 합당하도록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한 기도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사는 세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하나님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하나님의 공의를 차용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바로 이러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힐링이라는 단어에는 인간 중심의 이기적인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대단히 심각한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가 우선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신앙에 있어서의 주도권을 가지고, 하나님이 일 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부차적인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자연스럽게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이 순서에 유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순서가 바뀐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우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최순실의 감사와 기도에 딸이 승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땅이 팔리도록 해달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초신자의 기도 내용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사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대부분의 기도 내용이 그녀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솔제니친이 지적한 대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스스로를 숭배하는 우상숭배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사교邪敎출신의 최순실과 그의 가족들이 교회에 와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교회를 폄하하려는 마음은 없지만 큰 액수의 헌금을 하는 그녀의 가족들을 위해 그 교회 목사와 성도들이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실제로 기도의 내용과 그 사람의 신앙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그래서 신앙이 성숙해지면 더 이상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한 기도를 드리기가 어려워집니다. 한동안은 도대체 무슨 기도를 해야 하는가, 막연해지기까지 합니다. 오히려 처음보다 더 기도하지 않는 자신을 보고 신앙에 회의가 일어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정입니다. 그 과정을 지나면 자유함에 이릅니다. 기도가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의 멈춤의 시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각과 모든 행동이 기도가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삶이 이루어집니다.

정리하자면, 교회에 와서 편안함, 위로, 평안, 힐링을 느끼고 체험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연히 느껴야 합니다. 아니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분명하게 순서를 이야기합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면 이런 것들은 보너스로 주어지는 것들입니다. 단순한 보너스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샬롬의 구성내용들입니다. 순서가 달라지면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고 복음은 더 이상 복음이 아닙니다.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교회 역시 성도들의 일상사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순서가 무시된 기도는 무당의 기도이지,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이미 순서가 무시된 기도가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교 출신의 최순실이 편안함을 느낀 것이라는 이 사실을 뼈아프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편안함이 아니라 모험으로 뛰어드는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결단이자 주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진정한 교회라면 그곳에 자신을 위한 기도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살아도, 죽어도 주를 위해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최순실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가 한 말입니다. 최순실은 2년 간 그 교회의 집사였습니다.

"처음 온 사람들에게 꼬치꼬치 신변을 캐물을 수는 없다. 지역 특성상 그런 거 묻는 것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이 교회에 십 년 이상 다니는 교인도 많지만 언제 왔다 언제 가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우리 교회는 교회가 눈에 띄는 위치에 있어서 오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지나가다 예배 시간 되면 들렀다 예배드리고 간다. 내가 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새신자들에게 이것저것 물었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되겠더라."

목사의 말은 자신의 교회는 물론 오늘날 교회의 모습을 정확히 그려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교회 집사였지만 최순실과 그의 가족들에 대해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항용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십 년 이상 다니지만 언제 왔다 언제 가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아니고, 많다는 그의 말에서 우리는 오늘날 교회의 슬픈 현실을 목격합니다.

가족을 떠나 새로운 형제와 자매로 만나야 할 교회의 성도들이 서로에 대해 알지도 못한다는 이 아이러니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도 자신들의 교회가 추호도 틀림없이 공동체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무지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그들이 알고 있는 복음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그들이 드리는 예배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 대답을 이 교회는 솔직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굿판이라고.

차은택

차은택은 최순실보다 더 독실한 신앙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모태신앙인으로 4대째 신앙을 이어온 기독교 가문 출신입니다. 그는 기독교 방송에도 출연해서 자신의 삶과 신앙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학교에 안 가는 경우는 있어도 교회는 안 빠졌다고 했습니다. 교회에 빠지면 불안하기 때문에 꼭 출석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평소 '크게 쓰임 받게 해 주소서.',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주소서.'라고 기도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계절에 상관없이 아침마다 찬물로 샤워를 한 후 무릎을 꿇고 "조금 더 크게 쓰임 받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해 왔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광고 촬영의 진행이 잘 안 될 때에서 분장실과 화장실을 오가며 기도를 하면 "그럴 때마다 촬영이 원활하게 진행됐다."고 간증을 하였습니다. 

큰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큰 사람이 되었다, 차 은택의 기사에서 본 문구입니다. 정말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가 다니는 교회가 그를 내세울만합니다.

'잘 나가니 헌금 또한 많이 했을 것 아닌가. 그의 눈에 잘 보이면 일자리 하나 정도는 능히 꿰찰 수 있다. 그런 성공한 사람이 있는 교회는 영적으로 파워가 있는 교회다. 교회를 나가려면 모름지기 그런 교회를 나가야 하지 않을까, 후세들을 위해서도. 그 교회 성도들은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할까, 눈에 선하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또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성공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어 적당히 헌금하고, 구색 맞추기로 자선도 좀 하면 하나님이 좋아라 그를 계속 축복하시고,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된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밀려온다. 아! 정말 영혼을 많이 구원하고, 사회를 변화시켰다. 얼마나 감사한가. 와서 우리 교회를 보라!! 소가 웃을 이야기지만 이 모습이 오늘날 교회가 부러워하는 교회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더도 덜도 아니고 예수님이 지적하신 이방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사람들을 내리 누르고 세도를 부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나라에서는 모두가 작은 사람이 되려 함으로써 모두가 평등한 형제가 됩니다. 해서 하나님 나라에는 큰 사람이 아예 없습니다. 누구라도 조금이라도 큰 사람이 되려는 사람은, 타락한 천사 루시퍼처럼  하나님 나라의 반역자일 뿐입니다. 각설하고, 큰 사람을 꿈꾸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입니다. 큰 사람의 말로는 정해져 있습니다. 멸망의 길입니다. 사망의 낭떠러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차은택과 같은 사람은 오늘날 기독교의 위대한 인물입니다. 서점에 가보지 않았지만 만약 그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나 자신의 자녀들이 차은택과 같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같은 기도를 올렸을까요?

미우라 아야코 여사와 그녀의 소설 <빙점>

이 대목에서 미우라 아야꼬 여사가 떠오릅니다.

여사가 기적적으로 척추 결핵에서 회복되어 일어난 후 가게를 열었고, 그녀의 남다른 친절과 성실함으로 가게는 번성일로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의 가게들이 울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가게만을 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녀는 자신이 열심히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자랑하거나 우쭐대지 않았습니다. 간증 같은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말없이 자신의 가게에서 파는 물건의 종류를 줄였습니다. 없는 물건을 찾는 손님들에게 옆 가게들을 찾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가게의 번영이 다른 사람의 가게의 몰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그녀의 삶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세상에서 성공해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고지론이 팽배합니다. 일전에도 서초동의 한 대형교회 목사가 자신의 교회 당회원들의 삼분의 일은 법조인, 삼분의 일은 교수, 삼분의 일은 의사라는 사실을 말하며 얼마나 멋지냐며 자랑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목사가 아무리 거짓말을 하고, 횡령을 하고, 다른 여러 문제가 있어도 그 교회 성도들은 꿈적도 하지 않습니다. 큰 사람이 되려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교회의 문제는 단지 그 목사의 거짓이 아니라 큰 사람이 되려는 그 교회의 성도들 모두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작은 자들의 나라입니다. 그래야 서로 형제가 되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복음이 말하는 진리입니다.

변화

그리고 5일 농민 백남기님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최순실 사건이 터지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분이 쓰러졌던 곳으로 노제가 진행되었는데도 별다른 경찰의 제지가 없었습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최순실이 없었다면 부검 영장은 재청구 되었을 것이며 장례는 열리지도 못했을 것이며 노제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격세지감마저 느껴집니다. 그토록 요지부동이었던 세상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새삼 최순실이 위대한 인물이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런 변화가 기독교에도 일어나기를 기대해봅니다.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복음이 복음되는 교회, 형제와 자매로 서로 사랑하는 교회, 나아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위해 일하고 기여하는 그리스도인, 그리고 마침내 밝아오는 하나님 나라의 여명,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최순실과 차은택이 잘못되이 헛살았던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도 그들이 위대한 변화의 주인공이 꼭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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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m 2016-11-15 07:53:51
아멘!입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