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흥청대던 잔치는 끝장날 것이다
마음껏 흥청대던 잔치는 끝장날 것이다
  • 최태선
  • 승인 2016.11.19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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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분노하게 만든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꼭두각시라는 외신의 조롱을 받는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과 요망한 최 씨의 욕망이 맞물린 희대의 대국민 사기극이 양파처럼 까도 까도 끊이지 않고 매일같이 밝혀지고 있다. 

최순실과 관련된 기사의 첫 머리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요즈음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권력의 민낯을 낱낱이 볼 수 있습니다. 드러나는 사건들을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한 마디로 '너무나 유치하다'라는 형용사 하나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가장 큰 비극은 가장 유치한 사람에게 절대 권력이 주어졌을 때 일어납니다. 로마의 네로에서부터 독일의 히틀러와 북한의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역사는 반복해서 그 비극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한 가운데서 그 비극을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권력은 사람의 말초신경을 자극합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게 합니다. 특히 쾌락에 민감하게 만들어 성적인 타락을 필두로 각종 쾌락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렇게 절대 권력자들을 쾌락에 중독 시키고 나면 그 다음 순서는 순조롭습니다. 절대 권력자에게 쾌락을 제공하면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아첨꾼들이 창궐합니다. 절대 권력자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아첨꾼들은 각종 이득을 닥치는 대로 챙기며 사회 질서를 파괴하고, 각종 희생자들을 양산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아첨꾼들은 나라에 충성하고 정의 실현을 위해 헌신한다고 선전을 하며 일을 합니다. 그 선전에 자신도 속아 자신들은 의리를 지키고,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추호도 의심 없이 확신합니다. 오히려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들을 유치원생 취급하고, 겁을 주거나 당근을 제시하며 다스려야 하는 통치의 대상으로 봅니다. 입으로는 국민을 위해 멸사봉공(滅私奉公)한다고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멸공봉사하는 것입니다. 아첨꾼들은 그러면서도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고, 거기서 생기는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불의와 불평등이 오히려 질서인 것입니다.

그렇게 불평등하고 불의한 사회가 되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간격이 벌어지고, 인간관계와 형제애를 말살하면서 냉랭하고 무정한 사회가 되고, 금수저와 흙수저를 고착시키는 계급구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갑질이 만연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불행한 사회가 만들어져도 그것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 역사적 상황의 결과라거나 국민들의 하고자 하는 의욕이나 불굴의 정신이 없기 때문이라는 상투적인 책임전가를 난발하게 됩니다.

돈 많은 부모를 가진 것도 실력이라고 주장하는 정유라는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닙니다. 제 딴에는 매우 심각하게 인생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가 본 세상은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안 보아도 최고 점수가 나오는 고등학교, 알아서 입학시켜주는 대학, 교수가 윗선의 지시에 따라 출석도 안 하는 학생의 답안지와 과제물을 제출하고 학점을 주는 일이 그냥 이루어지겠습니까? 교수 개인에게는 인사상의 혜택이 주어질 것이고, 대학은 정부의 예산을 따올 수 있는 혜택을 받고, 그런 일을 한 총장은 학교 발전을 위해 능력 있게 일한 사람이 되는 세상이 전부입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는 깨끗했겠습니까? 돈 몇 푼 쥐어주면서 한 마디만 하면 꼼짝도 못하는 선생님들과 교수들을 보면서 그 아이가 배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학교도 안 나가도 되고 심심하니까 문신도 하고, 연애도 좀 하고, 애까지 낳게 된 것입니다. 

한 가지, 한 가지를 이야기하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너무도 유치하고 불의한, 공분이 솟구치는 일들이라 열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 모두가 이들만의 특별한 경우는 아닙니다. 권력을 가졌던 모든 자들의 공통된 특징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권력의 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권력에서는 예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성서는 이스라엘의 권력을 가진 자들의 미래를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너희는 망한다! 상아 침상에 누우며 안락의자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골라 잡은 어린 양 요리를 먹고, 우리에서 송아지를 골라 잡아먹는 자들, 거문고 소리에 맞추어서 헛된 노래를 흥얼대며, 다윗이나 된 것처럼 악기들을 만들어 내는 자들,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며, 가장 좋은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의 집이 망하는 것은 걱정도 하지 않는 자들, 이제는 그들이 그 맨 먼저 사로잡혀서 끌려갈 것이다. 마음껏 흥청대던 잔치는 끝장나고 말 것이다."(암6:5-7)

이 예언은 실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내용이 최순실네에 대한 예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로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왕을 세우고 결과적으로 권력의 속성에 따르게 됨으로써 멸망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다른 삶을 살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 삶은 하나님이 왕이신, 다시 말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의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에는 오직 한 분의 왕뿐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왕이신 나라의 삶의 본보기가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는 말, 하는 일, 심지어 마음의 동기까지 그분은 하나님과 일치시키셨습니다. 그분의 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되고, 그분이 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되고, 그분의 뜻은 하나님의 뜻이 되었습니다. 그 일치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떤 것이든 버리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옛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에 거슬러 자신들의 왕을 세우고 권력에 속성에 따랐던 것은 새 이스라엘인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타산지석입니다. 더 이상 새 이스라엘인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들의 모임인 교회에서는 권력을 추구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모두가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온전히 일치하여 모두가 왕이 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드러내고 있는 모든 악행들은 권력을 추구하지 말아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목사라는 왕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왕이 된 목사가 권력의 속성을 따르게 됨으로써 옛 이스라엘이 빠졌던 올무에 동일하게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문제들의 핵심은 교회마다 목사라는 왕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왕이 된 목사가 옛 이스라엘처럼 말로는 섬긴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다스리는 권력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도 권력의 속성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누구건 권력을 가진 자는 권력의 노예가 되어 권력의 속성에 따르게 되기 마련입니다.

권력의 속성은 한 마디로 유치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거머쥘 수 있습니다. 아니 권력은 오히려 이기심과 탐욕을 좇게 하기에 성숙하지 못한 유치한 사람에게 더 어울립니다. 다른 말로 성숙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순실, 정유라, 우병우와 같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권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 같은 하나님 나라 백성은 아무나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반드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해진다는 것은 세상의 방식처럼 성공하고 무언가를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성공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모든 것을 버림으로 이루어집니다. 심지어 자신을 부인하기까지 해야 합니다. 성공하고, 능력이 있고, 권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을 통해 절망하고 무능해지고 완전히 무력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능력이 모두 끝난 곳에서 성령의 온전한 인도하심이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권력자가 없는 나라이며, 권력을 추구하는 자도 없는 나라입니다. 오직 모든 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종이 되어 상호복종함으로써 아무도 소외되지 않고, 핍절한 자도 없는 사랑과 평화의 나라입니다.

타산지석

모두가 권력을 거머쥘 수는 없지만 모두가 권력을 버릴 수는 있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힘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힘을 추구하게 되기에 권력을 지향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그러한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고자 자기를 부인하고, 권력의 속성을 따르지 않고 섬김을 택함으로써 아무도 희생당하지 않고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나라입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결코 스스로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없고, 유토피아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발전과 상황을 이루어내더라도 권력의 속성을 따르는 인간의 본성 자체가 평등을 거부하기 때문에 유토피아는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오직 평화의 왕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만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인류에게 줄 수 있습니다. 거기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공동체를 이루어 '산 위의 동네'가 됨으로써 세상의 빛이 되고 희망이 되어 하나님 나라 건설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최순실네가 단순히 분노의 대상이 되고 그들을 단죄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들을 통해 권력의 속성을 보고, 오늘날 우리가 옛 이스라엘처럼 권력지향적인 존재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경쟁에 이겨 세상에서 성공함으로써 세상을 장악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아니라 자기 욕망의 확장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복음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완벽한 진리인가를 알게 될 것이며,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최순실 게이트가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확실라고 분명한 타산지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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