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증오범죄'가 급격히 늘고 있다
미국에 '증오범죄'가 급격히 늘고 있다
  • 허현
  • 승인 2016.11.30 0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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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범죄와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정의

트럼프 당선 이후로 미국에 증오범죄 (hate crime)가 급격히 늘고 있다. 그의 공공연한 타인종에 대한 차별과 증오 관련 발언들이 당선 후 많은 백인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닐까 진단하는 사람들도 있다. 증오범죄는 인종, 종교, 국적, 성별, 성적 지향 등에 의해 힘을 가진 자가 가해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 역사 속에서 백인들의 증오 범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출판된 책 <New Jim Crow>나 다큐멘터리 영화 <13th>를 보면, 19세기 노예해방 이후에도 수감(incarceration)을 통한 새로운 흑인노예제가 여전히 미국 안에 자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미국에 인종차별(racism)보다 더 심각한 불의는 없다"고 신랄하게 지적한다. 백인 회중을 목회하면서 자주 드는 생각은 상당수의 백인들이 자신이 어떤 특권을 누려왔으며, 사회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에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옆동네나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자신과는 관계 없는 일이라 굳게 믿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이너리티인 한인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백인과 타인종 중간 어디쯤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위로는 백인들로부터 차별을 당하면서 아래로는 히스패닉과 흑인들을 차별하는, 인종차별 시스템이라는 사다리의 중간 어디쯤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증오범죄를 막고 인종간 화해를 위해서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정의(Restorative Justice)가 이루어져야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공동체가 둘러 앉아 일어난 피해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회복을 위해 함께 일하는 것이 회복적 정의의 목표인데, 이를 위해 바르게 기억하기(right remembering)와 그에 따르는 삶을 돌이키는 진정한 사과(repenting)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정의에 대한 회복 관점에서의 이해는 우리의 세계관을 바꿀 정도로 본질적인 것이고,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이들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지난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흑인교회에서 총기를 난사해 목사를 포함해 9명을 숨지게 한 백인 용의자 용의자 딜런 루프(21)의 경우는 대표적 증오범죄로 알려졌다. (사진:CNN 영상 캡처)

물론 회복적 정의를 실현하는데 있어서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많은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히 구분하기가 쉽지 않고, 또한 가해자를 대화의 자리에 앉히는 것이 어렵다. 명백히 드러난 범죄에 대해서도 죄를 시인할 줄 모르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발적으로 피해자와의 대화의 자리로 나오는 것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회복의 출발점은 바르게 기억하고 진상을 규명하는 것인데, 권력을 가진 범죄자들은 어떻게든 그것을 막으려 하기 때문에 세월호참사 처럼 여전히 회복적 정의의 사이클이 시작도 되지 못한 사건들이 많다. 아직까지 회복적 정의가 응보적/징벌적 정의(Retributive/punitive Justice)에 기초한 현재의 사법시스템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이유다. 회복을 위한 대화의 자리로 나오지 않는 자들에겐 여전히 응보적이고 징벌적인 정의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질문은 '피해자들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이다. 우리의 목표는 가해자 처벌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 무너지고 깨어진 관계 회복을 위해서, 특히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나는 미국 근현대사 속에서 이러한 과정을 제대로 밟지 못했기에 야만적인 증오범죄가 아직도 자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정의의 실행을 오랜 기간 지연하는 것은 정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Justice too long delayed is justice denied)라고 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급격히 늘어난 증오범죄들은 미국이 여전히 정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정의를 위해 일하라(If you want peace, work for justice)”는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처럼 지금의 정의를 위해 일할 때다. 하나님도 하늘에 머물지 않으시고 땅으로 찾아오셨다. 골방에서만 하나님 찾지 말고, 길거리에서 찾아할 때다.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화와 기쁨의 하나님 나라가 길거리에서 이루어 지도록 일해야 할 때다. 미국에서의 인종차별이라는 가장 심각한 불의에 신속한 정의(swift justice)가 이루어지도록 교회는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그리고 백인 이웃들과 연대하여 함께 일해야 한다. 이것은 교회에게 주어진 매우 긴급한 사명이다.

허 현 목사 / 마운티뷰 메노나이트 교회 공동목사, ReconciliAsian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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