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선 선교사, A는 당신을 사랑한 적 없습니다
최재선 선교사, A는 당신을 사랑한 적 없습니다
  • 채수지
  • 승인 2016.12.0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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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아버지' 권력 이용해 피해자 영혼 파괴…하나님 말씀을 범죄 합리화 도구 삼아

기독교여성상담소 소장으로서 최재선 선교사의 고백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그리고 편향적으로 보도하는 <크리스챤연합신문>의 행태가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지에 대해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이 글을 쓴다.

최재선 선교사는 '과거 고백'이라는 용어로, 현재 완결되지 않은 상태의 사건을 스스로 완결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성폭행'이라는 죄를 사랑 이야기로 미화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것이 사랑일 수 있겠는가?

피해자는 최재선 선교사를 아버지라 불렀고, 실제로 영적 아버지로 생각했다. 피해자가 호소하는 고통은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왜곡되어 자신을 죽이는 '살인'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20대 여성이고, 최재선 선교사는 64세 남성이었다. 예수전도단 초창기 파송 멤버이자 탄자니아에서 많은 영혼에게 하나님을 대언하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영적 아버지'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피해자가 최재선 선교사에게 품었던 감정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정신분석적으로 말하자면 그녀에게 '아버지 전이'가 발생한 것이다. 참고로 정신분석에서는, 분석가가 내담자의 심리적 취약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힘의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래서 애초부터 내담자와의 신체적인 접촉이나 성적인 접촉을 금하고 있다.

만약 그러한 일이 발생했을 경우, 모든 책임은 분석가가 지고 징계를 받게 된다. 분석가는 아버지 전이를 잘 수용하고 분석하여 내담자에게 돌려줄 의무가 있다. 아버지 전이는 내담자에게 아버지 대상을 이상화, 동일시, 내면화하여 그의 마음에 아버지의 사랑이 항구적으로 머물게 한다. 결국 '아버지 전이' 자체는 내담자의 성격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내담자를 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이렇듯 피해자의 '아버지 전이'는 당연한 것이며,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최재선 선교사는 어땠는가? 그는 강력한 아버지 전이를 이용하여 딸과 같은 피해자에게 근친상간과도 같은 성관계를 강요했다.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피해자 마음을 악용하여 성관계를 강요한 것이다. 사랑이었다고 주장하는 그의 말대로라면, 딸이 아버지와 성관계를 포함하는 사랑을 할 수 있는가? 만약 최재선 선교사가 그렇게 주장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그의 '정신증적 사고'이다.

피해자는 '영적 아버지'인 최재선 선교사를 철저히 신뢰하는 '절대적 의존 상태'(정신분석가 위니캇의 용어)로 퇴행했기 때문에 최 선교사를 한없이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퇴행상태의 내담자가 흔히 그러하듯, 최 선교사가 하는 말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심리적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이런 그녀에게 "저항 안 하지 않았느냐? 합의하지 않았느냐?"를 묻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최재선 선교사는 자신의 정욕 때문에 이러한 절대적 의존 상태에 있는 나약한 피해자의 영혼을 파괴하고야 말았다. 그는 자신이 가진 아버지로서의 권력을 영혼을 살리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죽이는 데 악용했다.

그의 말을 들으면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참으로 무차별적이고 무분별하게 쓰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재선 선교사는 '사랑'을, 약자가 처한 상황에서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었던 '무언의 저항'을 무시한 한낱 '성관계'로 보는가? 이것이 과연 사랑의 지표인가? 기독교적 아가페의 사랑을 평생 전한 그가 겨우 이것을 사랑으로 본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피해자는 결코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당신이,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피해자를 세뇌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이 범죄를 합리화하고 덮는 데 사용될 수 있는가?

그가 말하는 황당한 근친상간적 '사랑'은 피해자가 주장하는 '성폭행'보다 더 나쁘다. 성폭행도 영혼의 살인이지만, 그의 '사랑'은 '영혼의 전적인 살인'이다. 이제라도 피해자 영혼을 말살한 죄를 하나님 앞에서 자복하고 회개한 뒤, 합당한 처신을 하길 촉구한다.

채수지 / 한국여신학자협의회 부설 기독교여성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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