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의 어두운 그림자
'메리 크리스마스'의 어두운 그림자
  • 강남순
  • 승인 2016.12.25 0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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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칼럼은 강남순 교수의 페이스북에 있는 글입니다. 강남순 교수 허락을 받고 글을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던 '명절'은 크리스마스였다. 내게 '크리스마스'란 동화에 나오는 것 같은 예쁜 트리, 아름다운 캐럴, 집과 교회에서 받는 갖가지 선물, 그리고 맛난 음식 같은 것들을 의미하는 참으로 즐거운 절기였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나의 부모님은 이 성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기에, 나의 어린 시절에 크리스마스가 있던 12월은 1년 중 가장 중요하고 즐겁고 행복한 달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단순하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말하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그 '즐거운' 크리스마스의 어두운 그림자가 너무나 짙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의 어두운 그림자 중의 하나는, 기독교와 다른 종교 간의 "종교적 위계주의의 생산"의 문제이다. 기독교 아닌 다른 종교들의 '명절'이 이렇게 일반 문화 속으로 침투된 경우는 인류역사에 없다. 이러한 '크리스마스의 보편화'는 '기독교의 보편화'를 당연하게 생각하게 하면서, 다른 여러 종교보다 기독교를 언제나 우월한 종교로 간주하게 한다.

기독교 인구는 세계인구의 30% 정도이다. 그런데 이 크리스마스는 기독교만의 축제가 아니라 '세계 보편적인 명절'로 간주되곤 한다. 음악, 영화, TV 등은 크리스마스의 보편화에 기여하고 있으며,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크리스마스이브의 도시는 그 축제 분위기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자연스럽게' 다른 종교들보다 '우위 종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크리스마스의 '보편화'는 오직 기독교만이 '보편종교'가 될 수 있다는 왜곡된 종교적 자만심을 당연시하는 위험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어두운 그림자는 '크리스마스의 상업주의화'이다. 12월이 되기도 전에 백화점이나 상가들은 '크리스마스'를 내건 선물항목들을 전시하고 선전하기 시작한다. 곳곳에서 캐럴들이 울려 퍼지고,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선물과 크리스마스'를 절대적인 상관관계로 만든다. '선물-중심주의적 크리스마스'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사이의 거리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한다.

20여 년 전에 나온 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이들에게 비디오게임, 장난감 등으로 소비되는 돈은 미국에서 일 년 동안 유사한 항목으로 소비되는 돈(170억 달러) 의 60%가 된다고 한다. 오래전에 나온 통계이니 지금은 훨씬 증가했을 것이다. 저소득층의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의 극대화된 상업주의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선(charity)' 행위는 크리스마스 절기에 '소비'된다. '자선이 소비되는 절기' 또한 크리스마스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자선 행위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다양하게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주로 특정한 절기의 '행사'로 진행된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자선 행위는 시혜자와 수혜자 사이의 윤리적 위계주의를 자연화하는 한계를 지닌다. 크리스마스 절기에 '소비'되는 자선 행위는 시혜자에게 윤리적 우월감을, 수혜자에게는 대상화된 열등적 위치를 자연화한다.

더욱 결정적인 한계는 '자선'은 '정의'와는 달리 '왜'를 묻지 않음으로써, 자선의 수혜자가 처한 상황에 대한 구조적 개혁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교회든 사회든 소외된 사람들의 조건들을 변혁하기 위한 '정의'에 대하여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지면서, 그들을 돕는 것은 소외자들에 대한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행위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특정한 절기에만 '소비되는 자선 행위'는 이러한 중요한 사회적 책임의 문제를 외면하게 한다.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지 정확한 날짜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대 기독교인들은 4세기 전까지 성탄을 지키지도 않았다고 한다. 중세 기독교인들의 크리스마스는 매우 검소하게 지켜졌으며,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것조차 거부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가 지금처럼 '보편적인 명절'로 되어버린 것은 상업주의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크리스마스를 '상품화'하기 시작한 이후일 뿐이다.

신의 이 '세상에 대한 사랑(amor mundi)'을 상징화하는 '예수의 탄생'은 타자에 대한 연대, 사랑, 연민, 책임감을 통해서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을 체현하고자 했던 예수 정신을 상기하는 절기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철저히 '상업주의화 크리스마스'를 통해서 오히려 그 크리스마스의 정신은 근원적으로 왜곡되어버리고 만다. 신의 '세상사랑'의 상징으로서의 크리스마스가 그 본래 의미로부터 참으로 멀어졌다는 것, '메리 크리스마스'의 지독하게 어두운 그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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