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사님 주일날 왜 컵밥 파세요?
강도사님 주일날 왜 컵밥 파세요?
  • 최승현
  • 승인 2017.01.29 0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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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 위해 가게 차린 김승근 씨 '아리랑 노점' 도전기
숙명여대 근처 아리랑 노점은 입소문을 타고 개업 두 달 만에 '맛집'이 됐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컵밥집은 오후 3시가 가장 한가하니 그때 인터뷰하자고 했다. 카메라와 녹음기를 챙겨 들고 오후 3시가 되기 5분 전 컵밥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웬걸,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30분 가까이 기다리고 나서야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숙명여대 앞에 지난 3월 오픈한 '아리랑 노점'은 입소문을 타며 손님이 빠르게 늘었다. 혼자 먹기에 많아 보이는 넉넉한 양에 3,000원대 가격, 그리고 한 사람도 그냥 보내지 않고 미소 짓게 만드는 사장님의 친절함까지 더해져 단골손님이 제법 생겼다.

"또 오셨어요? 오늘도 제육인가요?"라고 묻기도 하고, "다음 주가 이벤트 마감이니까 도장 찍으러 매일같이 오세요"라고 말을 건네면, 손님들은 쑥쓰럽게 웃기보다는 친한 사람인 양 맞받아친다. 몇몇 블로거는 '숙명여대 맛집'이라는 칭호도 붙여 줬다. 맛·가격·양·스피드에 '친절'까지 다섯 요소를 갖춰야 한다는 사장님 경영 철학이 통하고 있다.

그런데 가게 곳곳에서 수상한(?) 흔적이 보인다. 카운터 앞에 놓인 명함에는 '점장 디모데'라는 이름이 써 있다. 은은한 CCM 경음악이 가게를 감싸고 있다. 이야기 나눠 보니 넉살 좋은 사장님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앞두고 있는 '강도사'였다. 디모데 점장님 '김승근' 씨는 교회가 아닌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새터민과 결혼' 기도 응답받은 청년, 북향민 자립 위한 식당 개업

김승근 씨는 2007년 여름 '통일을 위해 사명을 감당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인생 방향을 잡았다. 원래 김 씨는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석사과정에서는 윤리를 전공했다. 공부한 내용만 보면 목사와도 북한과도 큰 상관없었다.

하나님 음성을 들었는데 누가 그를 말릴 수 있으랴. 그 길로 세부적인 기도 제목도 정했다. 새터민 여성과 결혼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신속하게 응답했다. 2009년, 6살 연상 박예영 씨가 강의하는 모습에 반해 부부가 됐다. 박 씨는 얼마 전 북한 사역에 앞장서는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이 됐다. 부부가 함께 북한 사역에 빠져든 셈이다.

김 씨는 2007년 이후 10년 가까이 새터민을 돕는 자원봉사를 꾸준히 해 왔다. 정착 도우미를 하면서 많은 새터민을 만나고, 이 사람들과 함께 여러 활동을 했다. 2013년 신학대학원을 들어가면서 새터민 밀집 지역인 노원구에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강도사 김승근 씨가 아리랑 노점을 시작한 것도 새터민 때문이다. 휴대폰 사는 것을 도와주고, 대중교통 타는 방법도 알려 줬지만 새터민 삶에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북한에서 재봉 일을 하다 내려온 한 새터민은 한국에서도 재봉일을 하기 원했지만 수동 재봉틀이 손에 익은 그에게 자동 재봉틀은 너무 어려웠다. 학원 하나 고르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장사에 뛰어들었다. 올해 3월 개업한 아리랑 노점은 새터민들을 위해 만든 공간이다. 새터민들이 이 공간에서 아르바이트부터 주방 일까지 배워 결국 자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통일이 되면 북한에 올라가 자기 식당 하나 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다. 마침 인터뷰한 18일에도 새터민 출신 전도사가 식당 일을 배우러 와 있었다.

일단 작은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냈다. 김 씨도 장사는 처음이지만, 컵밥 만드는 게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기 때문에 일단 시작하기로 했다.

점장 김승근 씨는 내년 목사 안수를 앞둔 강도사다. 그는 주일에도 가게 문을 연다. "생명을 살리라"는 예수님 말씀을 따라서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주일에 장사하는 강도사 "생명 살리라는 예수님 말씀 따라"

가게 한편에 붙은 문구가 눈에 띈다.

"여러분이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1'의 주인공이지 말입니다."

"여러분이 컵밥을 사랑해 주신 결과 수익의 일부, 101만 원을 미래 인재 육성과 통일 기금에 사용했어요. 5월에도 아리랑 노점에서 많이 식사하실수록,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김승근 씨는 이 돈은 주일에 장사해 얻은 순수익이라고 말했다. 개척한 노원 지역 교회는 아내 박예영 씨가 맡고, 자신은 숙대 가게로 나온다는 것이다. 강도사가 주일날 장사를 하다니? 김 씨도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아니라고 했다.

"오픈 전부터 고민했죠. 주일 성수에 대한 고민이 당연히 있었어요. 사람들의 편견과 비판을 이겨 내야 하는 문제니까요. 하지만, 예수님도 안식일 논쟁 겪으셨잖아요. 예수님이 강조하셨던 게 '안식일 주인은 나다. 아버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였어요. 생명 살리시는 일이라면 하셨던 거고요.

물론 주일과 안식일은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말씀의 의미는 같다고 생각해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한다'는 원칙을 세웠어요. '모든 순수익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쓴다'는 거죠. 주일 아침 여기서 직원과 예배 드리고 일을 시작해요. 그래서 3월에 38만 원, 4월에 63만 원 순수익 전액을 기부한 거예요."

김 씨는 목회자 이중직이라는 단어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울도 자비량 사역을 하지 않았느냐면서, 성직과 일반 직업을 구분하는 게 맞지 않다고 했다. "식당 일도 주님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가게가 또 하나의 교회라고 생각하고요. 아침에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일 시작합니다."

'주일 성수' 개념 자체가 희박한 새터민들에게 몸소 돈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가치를 보여 주고픈 마음도 있다. "북향민 중에 자본주의는 썩고 병들었다 말하면서 정작 본인들은 돈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분들에게 모델이 되고 싶어요. 번 돈을 나를 위해 쓰는 게 아니라 하나님나라 위해서 쓴다는 걸 보여 주는 거죠."

식당이 안정되면 금요일은 하루 쉬면서 새터민 가정들을 찾아가 밥 먹고 기도하는 시간을 만들 계획도 있다. 물론 내년에 목사 안수를 받는 만큼, 전임 사역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상당수 새터민은 '관계 전도'로 신앙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주일 성수나 헌금, 기도 등을 강요하기 어렵다. 김 씨는 말한다. "쪼아서 신앙생활하는 게 아니고, 가족같이 얘기 나누고 밥 먹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하나님 은혜 믿고…

숙명여대 앞은 비싼 자릿세로 점포가 자주 바뀐다. 유동 인구가 많지만 방학 때는 매출이 큰 폭으로 떨어진다. 여름과 겨울날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렇지만 김승근 씨는 자신감 넘쳐 보였다.

"인생에 파도가 있죠. 우리가 너무나 남발하긴 하지만, 저는 '하나님 은혜'가 있을 거라 믿고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려고 해요. 열심히 하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인터뷰가 끝나기 무섭게 또 한 무리 손님들이 몰려왔다.

주일 수익 전액은 새터민을 위해 쓴다. 김 씨의 친절함에 많은 사람이 발걸음하면서 갈수록 수익이 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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