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시대, 통합하는 길 걷는 교회의 꿈
분열의 시대, 통합하는 길 걷는 교회의 꿈
  • 유영
  • 승인 2017.02.08 0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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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뉴욕 나무교회 정주성 목사
백 세를 맞은 성정순 집사의 특별한 생일잔치가 나무교회에서 열렸다.

뉴욕 플러싱에 있는 한 교회에서 특별한 생일잔치가 열렸다. 1917년 태어나 올해 100세를 맞은 성정순 집사의 백수연. 이 생일잔치를 위해 온 교인이 나섰다. 젊은 교인들이 토요일에 나와 교회 친교실을 생일찬지 분위기가 나도록 꾸몄다. 교회의 허리 나이 또래인 집사와 권사들은 함께 음식을 하고, 생일상을 준비했다.

성정순 집사의 자녀들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가족을 대표해 인사한 성 집사의 넷째 아들은 “가족이 준비해 치러야 할 행사를 교회가 준비해 가족을 초청해 주니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감사하다”며, 머리 숙여 인사했다. 어쩌면 20여 명이 넘는 온 가족이 한 교회에서 예배한 일도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감사 인사를 하는 성 집사 가족 대표

나무교회는 지난 2014년 ‘하모니교회’와 ‘새순교회’가 통합한 뒤 한 몸을 이루었다. 여러 이유로 두 교회가 한 몸이 되는 일은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처음 통합한 정신을 잘 지키며, 노력해 아름답게 성장해 나가는 교회는 많지 않다.

실제로 많은 교회가 통합 후 몸살을 심하게 앓는다. 여러 이유로 싸운다. 주도권 투쟁이 이유가 되기도 하며, 재정과 인사 문제가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교인들은 괜히 다른 교회와 합쳤다가 교회가 망가졌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분열이 시대정신이라도 되는 듯, 세상도 어지럽기만 하다. 차별과 배제를 기치로 내세우는 정치가 표를 얻어 득세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만 그러한 게 아니다. 유럽에서도 브렉시트와 네오나치의 활동은 소수자와 이민자를 향한 물리적 폭력으로 계속 이어진다.

분열의 시대, 다툼과 분열을 겪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상에서 교회는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려운 통합의 과정을 이뤄가는 한인 교회 이야기가 작은 본이 될 수는 없을까. 다른 세대가 모인 두 교회가 한 몸을 이뤄가는 여정은 어떠한지 <미주뉴스앤조이>가 만나보았다. 다음은 나무교회를 담임하는 정주성 목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백 세 잔치를 전 교인이 가족과 함께 축하하는 자리로 만들었다. 가족이 아닌 교회가 백세연을 준비한 이유가 궁금하다.

교회 개척을 하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교회 통합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이민 사회에서 교회는 어떤 곳인지 계속 고민했다. 교회의 아름다움과 영광스러움을 이민 교회가 많이 잃어버린 것 아닐까 생각했던 탓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교회는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분들은 전통적 교회의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닌지 의문을 표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가나안 성도’로 살아가는 이들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나무교회 정주성 목사.

이런 현실에서 많은 교회가 여전히 빨리 사람을 모아 재정적으로 자립하고 외형적 교회의 모습을 갖추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여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새로운 모색이다. 방법이 아니라 가치이고,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나무교회를 목회하면서 교회가 어떤 곳인지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서둘지 않고, 방향을 놓치지 않고, 교회의 그림을 함께 고민하며 가고 싶었다. 교회에서 백수연을 준비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교회에서 회갑연, 백수연 등을 굳이 할 필요가 있나’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한 가정의 일이 아닌 교회 공동체 전체의 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예전에는 환갑도 그 집안의 경사이기도 했지만 온 동네잔치였다. 장수하신 어르신은 온 동네의 축복으로 여겨 존경을 표하고 온 동네가 함께 축복하고 섬겼다. 하지만 요즘 개인주의의 팽배로 공동체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더욱이 이민사회는 혈연공동체나 지역공동체도 거의 없다시피 하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이민 교회가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로서 역할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목회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고 동시에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곳이다. ‘성도의 교제’를 너무 쉽게 이해는 경향이 있다. 예배하고 밥 먹고 가는 것, 꽃이 피거나 단풍 들면 야외에 가는 게 교제가 아니다. 

성도의 교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속했고, 우리가 서로 한 지체임을 확인하고 그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은혜로 선물로 받은 우리의 은사와 재능으로, 주를 위해 성도를 섬기는 것이 바로 성도의 교제다.

그래서 사실 한 개인의 행사일 수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서로 성도의 교제를 경험할 기회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목회에 비중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기도하며, 늘 고민한다. 나무교회는 어떤 곳인지, 교회는 어떤 곳인지를 두고 고민 많이 했다.

음식과 꽃꽂이, 풍선 아트까지, 이번 백세연은 많은 교인이 함께 준비한 공동체의 잔치였다.

백 세 잔치를 하지만 젊은 분들이 생일잔치 장식에 많이 동참했다. 예배 중간 함께 감상했던, 백 세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영상을 정성껏 만들어준 젊은 집사와 생일잔치에서 나눌 음식과 떡을 준비해 준 고마운 손길도 있었다. 꽃꽂이로 정성스럽게 섬겨준 이부터, ‘풍선 아트’로 친교실을 아름답게 꾸며준 교인까지 감사하지 않은 이가 없다.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백 세 생일을 맞은 교인을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런 일을 통하여 우리 교우들이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가 얼마나 풍성하고 복된 곳인지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목회적 바람이 있었다.

백수연 덕분에 백 세 할머니의 온 가족이 한 곳에 모여 예배했다. 네 자녀 중 두 자녀가 나무교회에 출석한다. 이민 사회에서는 형제가 서로 다른 교회에 나가는 일이 많다. 다른 형제자매가 속한 교회가 어떤 곳인지, 그리고 함께 예배드릴 기회가 많지 않다. 조금 넓게 보면 교회 간의 교제가 이루어질 기회이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성 집사의 자손들이 함께 모여 예배했다. 예배에서 특송으로 섬기는 성 집사의 가족들.

교회가 통합할 때, 다른 세대가 모이는 두 교회의 통합이 어떠할지 관심이 컸다. 신구 세대가 화합하는 과정은 어떠했는가.

한인 교회에서 세대 간의 갈등은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실제로 교회 구성원을 볼 때, 세대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교회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큰 복을 누린다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부터 백 세까지 균형 잡힌 분포로 모인다. 다음 백세연을 준비하는 90대 중반 권사부터 곧 출산을 기다리는 가정까지 다양하다. 

이것이 나무교회의 복이라면, 세대 간 조화롭게 서로를 인정하고 세워나가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말 감사한 것은 이들의 마음이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이 잘 갖추어져 있다. 

장로들과 연세 높은 교인들은 젊은 세대가 뭐가 불편하고 아쉬움이 있을까, 그런 고민을 늘 하고 계심을 보았다. 젊은 사람들은 어른들을 인정하고 존경하며, 소통하려는 자세가 건강하게 잘 되어있는 것 같다.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가장 우선되는 출발점이라는 걸 다시 느낀다.

그러나 역시 쉬운 과정은 아니다. 다른 문화를 경험한 서로 다른 세대가 하나 되는 과정은 분명 쉽지 않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욕심내거나 압박하면 반드시 부작용과 갈등이 있다. 우리 한계를 인정하되, 교회의 모습이 어떤 건지 고민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조화를 이루는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역량이다. 이번 백수연 준비도 그 하나의 계기가 된다고 본다.

갈등이 조장, 심화되는 사회다. 나무교회는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과 혼란을 경험하면서, 한 몸이 되어가는 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느껴질 것 같다. 교회, 세상을 향해 한 몸을 이루어 간다는 소중함에 대해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교회의 하나 됨, 이민교회를 섬기는 목회 철학이 거기에 있다. 미국에 와서 이민 교회가 너무 쉽게 분열된다고 느꼈다. 우스갯소리로 한국 대통령 선거만 해도 교회가 분열된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다.

교회의 기초가 되는 복음에 대한, 그리고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너무 허약한 것 같다. 누가 가자고 해서 교회 왔고, 어떤 목사 설교가 좋고, 교회 규모가 좀 있어 보이고, 주차도 쉽고, 아이들 잘 가르친다고 하고. 교회 다니는 기준이 이러하다. 결국 교회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깊지 않으니 좋을 때는 표가 안 나지만 문제가 생기면 금세 바닥이 드러난다. 한 마디로 토양 자체가 너무 허약하다. 모래 위에 세워진 집처럼 말이다.

교회는 리더가 중요하다고 본다. 좋은 교회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복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 교회의 영광스러움을 믿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차근차근 리더로 세워져 나가야 한다. 그런 이유로 개척을 해서 함께 교회를 세워가고 싶었다.

그러다가 교회 통합을 경험했다. 교회의 하나 됨을 다른 교회와 할 수 없다면 그건 가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맞는 사람만 끼리끼리 잘 모인다고 ‘교회의 하나 됨’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전혀 다른 교회와 하나가 될 수 없다면 결국 가짜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이 컸다. 

모든 세대가 한 자리에 모여서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교회. 복음 안에서 하나 됨을 경험하는 교회가 나무교회의 지향점이다.

다름과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는 것이 그 시기에 하나님이 주신 도전이자 시험대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궤도를 이탈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비전을 발전시키고 도전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장로들과 교인들에게 공유했더니 다들 받아들여 주었다.

교회 통합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양쪽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한 사람의 반대도 없어야 추진한다는 기준을 정했다. 목회 철학에 모두 동의해야 함께 시작할 수 있다. 우리끼리만 좋은 교회로 끝난다면 좋지 않다.

교회 이름도 이러한 마음을 담아 새로 지었다. 하모니교회가 의미가 좋으니 하모니교회로 하자고 말씀해 주는 분도 많았다. 하지만 창립할 땐, 다 내려놓아야 한다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었다. 건물이나 20년의 전통, 우리끼리의 편안함, 이 모든 것들을 십자가 아래 묻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의미를 담기를 바랐다.

나무는 '십자가'에 대한 은유다. 우리는 모두 평범한 나무에 불과하다. 나무는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우리는 나무로 십자가를 세우자고 했다. 십자가로 모이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제자로 살도록 말이다.

그래서 우리 중 누구에게도 기득권은 없어야 한다. 십자가 정신을 처음부터 계속 강조하고, 그걸로 우리의 정체성으로 삼으려고 했을 때 통합의 터가 다져지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우리는 이것을 늘 생각하며, 조심하고 조심한다.

나무교회에 새로 나오는 분들에게 '여기는 주인 노릇 하는 사람이 없어서 좋다'고 얘기하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그 말을 들으면 마음만이 아니고, '우리가 방향을 아직 놓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감사하다.

나무교회가 꿈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과 목표가 궁금하다. 

소통과 신뢰가 제일 중요하다. 우선 나무교회는 CRC교단 소속으로 당회가 없다. 대신 운영위원회(Council)를 두고 있다. 나무교회 출범 초기에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장로들과 안수집사, 그리고 젊은 집사를 포함했다. 그래서 세대 간의 조화를 꾀하며 교회 구성원의 다양한 생각이 전달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갈등과 분열에는 먼저 조짐이 나타난다. 무관심은 어느새 의심을 낳고, 의심은 쉽게 오해를 불러오고, 오해는 불신을 낳고, 불신은 갈등을 낳고, 갈등은 분열을 초래한다. 그래서 교회의 리더는 무엇보다 교인 간에 소통과 신뢰를 촉진시켜 나가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교회 갈등과 분열의 사례를 이미 많이 경험했다. 우리가 조심하면서 그런 분열의 원인들을 사전에 예측하고 그걸 제거해 나갈 수 있다. 일례로 재정보고를 우리는 운영위원회나 제직회 차원이 아니라 전교인, 심지어 방문자들에게도 투명하게 공개한다. 

의심과 오해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하나의 예지만, 교회가 신뢰와 투명성을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밀실에서 몇 사람에 의해서 결정되는 탓에 모든 것을 잃는 경우가 많다. 교회 리더들이 진행하고 있는 사안에 신뢰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목회는 전통적인 방식을 고집해선 안 된다. 예전에 목사들이 그렇게 했고, 교회가 그렇게 운영되었다고 해서 고민 없이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사람들이 계속 변하고 있다. 지금 자라나는 사람의 기준에 맞게 교회가 운영될 수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교회가 왜 이렇게 하지, 지금 뭐하는 거지' 이러한 의심이나 질문의 여지가 없도록 말이다. 교회에서는 질문하기 어렵다. 괜히 질문하면 신앙을 의심 받을까 염려하는 것이다. 그러니 좋은 건 질문할 여지가 없게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의심받는 게 바로 비밀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의심과 오해를 넘어서 불신이 생기는 일이 너무나 많다. 교인들이 이러한 것을 의심해 신앙생활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건 교회가 할 일이 아니다. 

교회는 교인들이 신앙생활에 집중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려면 교회의 목회자와 리더들이 더욱 부지런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말로 표현되는 교인들의 질문을 넘어서, 표현하지 않는 마음의 의문에 귀를 기울이는 목회를 소망한다.

우리 시대 목회자들은 목사가 왜 의심받고, 교회가 왜 싸우고 갈라지는지 이미 경험할 만큼 경험했다. 이를테면 예방주사를 많이 맞은 것이다. 그러니 이제 냉소와 절망의 밤을 지나 소망의 새벽을 맞이하기 위해 깨어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교회는 분열의 시대, 교회의 하나 됨이 얼마나 중요한지 계속 체험해 나가는 교회로 성장해 가고 싶다. 그러나 우리가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처음엔 이민교회의 모델교회를 꿈꾸었지만 그것은 욕심이요 교만임을 깨달았다. 교회마다 상황이 다 다르고, 그 상황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니 말이다. 다만, 교회의 하나 됨을 지키는 ‘좋은 사례’로 기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다양한 사례 중 하나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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