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설교자 빌리 그래함 목사와 릭 워렌 목사의 재산은 각각 약 287억 원이란다. 게다가 조엘 오스틴 목사는 460억, 베니 힌 목사는 483억, 그리고 케네스 코프랜드 목사는 무려 8,750억이다.
조엘 오스틴 부부의 1천만불짜리 리버 옥스(River Oaks) 맨션 |
도대체 전임직 목사가 무슨 재주로 그런 부자가 되었을까. 물론 나중에 종자돈을 잘 굴려 부를 더 확대한 측면도 어느 정도 있지만 기본적으론 그게 모두 교인들에게서 나온 돈이다. 목사는 목회를 통해 얻어진 재산의 근원이 '신도들의 주머니'라는 사실을 결코 망각해선 안 된다.
땅에 보물을 쌓는 목사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하나님 말씀을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목사들은 평소 교인들에게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마6:20)"고 설교하더니 정작 자신들은 땅에다 재산을 열심히 쌓고 있다. 그들은 말씀을 전하는 건 아주 잘 하는데 말씀을 잘 행하지는 않는다.
사실 한국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재산도 만만치는 않다. 수년 전 시사프로 '뉴스후'는 대형 교회 목사들의 호화판 생활에 대한 폭로 기사로 세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교회 재산을 수천 억이나 빼돌린 혐의를 받았던 C목사 일가를 제외하더라도 이들 중에는 수백 억 재산가도 더러 있고 수십 억 부자는 아주 많다.
매년 대부분의 대형 교회 담임목사는 적게는 1억에서 많게는 20억까지 교회 돈을 가져간다. 인천의 J교회는 담임목사가 1년 동안 무려 10억 원 이상을 가져가도 대부분의 교인들이 이를 잘 몰랐다. 그러다 나중에 들통나 크게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그럼에도 그 목사는 퇴임 후 원로목사가 되어 계속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목사에게 지출하는 경비에는 기본 연봉은 물론이고 추가로 목회지원비, 판공비, 교육비, 자녀 유학비, 주택 관리비, 차량 유지비, 의료비, 정보통신비, 그리고 도서비 등 갖은 명목을 붙여서 심지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있다.
더구나 많은 교회에서는 재정 보고에 이를 모두 분산 처리하여 일반 교인들은 물론 다른 시무 장로들조차 자세한 지출 내역을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한국 개신교의 상당수 목사들은 교회 돈을 빼가는 수법에 있어서는 이미 지고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아주 생생한 증거다.
목사가 부자인 시대는 없었다
교회의 재산을 목사의 재산으로 착각하는 무리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겉으로 좋은 명분을 내세우며 교회 돈을 투입하여 신학교, 유치원, 언론사, 출판사, 장학재단, 선교단체, 그리고 구호단체 등의 법인체를 만든다. 그런 후 나중에 슬그머니 친인척들을 동원하여 사유화한다. 물론 그런 법인체를 자식에게 세습하는 건 아주 당연한 기본 절차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을 많이 받아 부자가 되었다"고 자랑하는 목사는 무조건 조심하기 바란다. 그는 십중팔구 삯꾼 목사다. 목수 예수와 제자들은 복이 없거나 십일조를 안 바쳐서 그처럼 평생 가난하게 살며 고생한 게 아니다.
본래 개신교 역사에 목사가 부자인 시대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아름다운 전통을 깨고 '귀족 목회'라는 새로운 장을 연 원조 교회는 천박한 자본주의에 잠식된 현대 미국 교회다. 교회를 대형화했고 기업화했다. 거기에 추가로 무분별한 오순절 은사주의에 고무 받은 '성장 신학'과 '성공 신학'이 이를 더욱 부추겼다.
목회자는 무조건 빈곤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목회가 정상적인 모습을 벗어나 빈부 양극화로 가는 게 문제다. 자녀 교육은 물론 기본 생계마저 염려하며 고통받는 목회자가 많은 반면에 일부 목사들은 수억 원의 벤틀리 승용차를 타고 돌아다닌다.
혹자는 "목사도 사람이니 여유도 좀 부리고 사람답게 살면 안 되냐"고 반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다소 웃기는 논리다. 반드시 부자가 되어야만 사람답게 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 재산의 낭비는 '빈민 살인죄'
최근 한 신학교 교수가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는가?>라는 글을 쓰면서 그 근본 이유를 "당대의 교회가 참된 교회가 아니기에 종교 개혁이 일어난 것이다."고 요약했다. 이는 당연히 옳은 지적이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문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교회는 참된 교회가 아니고, 어떤 목사는 참된 목사가 아니다. 예수님의 통렬한 지적처럼 '강도의 소굴'이 된 교회도 있고, 양들을 약탈하는 강도가 된 목사도 있다.
하여튼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 중간 대리인처럼 제사장 행세하며 가로선 자들은 예외없이 다 강도로 보면 된다. 그 사이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며 교권을 가로채고, 신학을 가로채고, 돈을 가로채고, 헌신을 가로채고, 영광을 가로채고, 그리고 상식을 가로채는 자들은 모두 강도다.
제 아무리 거룩한 긴 옷을 입고, 큰 건물을 세우고, 장엄한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멋진 설교를 하더라도 목사가 부자라면 그는 분명히 강도다. 땅에 보물을 쌓는 목사는 무조건 강도다. 그건 목회가 아니라 목회질이다. 종교적 강도질 외에는 누구도 교회의 정상적인 목회 사역만으로 결코 부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있는 재산을 팔아 나누어 주며 예수를 따른다. 반면에 예수를 팔아서 없던 재산도 크게 늘려가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목회자가 있다. 예수를 따르는 자가 있고 예수를 파는 자가 있다.
"교회가 소유한 토지나 돈은 전부 빈민을 위한 재산이라고 하는 생각을 우리는 교회 회의의 결정과 고대 저술에서 자주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감독들과 집사들을 향해서, 그들은 자기 소유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빈민을 돕기 위해서 임명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이 반복된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교회 재산을 감추거나 낭비하는 배신 행위를 한다면 그들은 살인죄를 범한 것이라고 했다." - 장 칼뱅(Jean Calvin), <기독교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대형교회 목사들에게 있어서 재물의 유혹은 쉽게 물리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제가 다니는 연세중앙교회 담임목사인 윤석전 목사님은 개교 31년동안 초기 몇번을 제외하곤 그 후부터 지금까지 교회에서 단 한푼의 생활비도 받지 아니하고 교회 재정은 오로지 복음 전도를 위해 사용하는 분입니다.
그 흔한 목사관도 없이 교회 한켠에 방 하나 마련해서 거기다 "비품 창고"라고 써놓고 주무십니다. 자신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비품이니 언제든 편하신대로 쓰시라는 의미로 당신 침실에 그리 써두신 거죠.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도 그런 윤석전 목사를 쓰시는 하나님의 일을 보고 깨닭아서 돈을 멀리하고 오로지 예수 복음 전파를 위해서 일하게 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