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의 빛이 되는 아름다운 교회
'헬조선'의 빛이 되는 아름다운 교회
  • 최태선
  • 승인 2017.03.06 01:4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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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동안 설교를 하면서 가장 많은 반대에 직면한 본문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마태복음 5장 3절 말씀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가난해야 한다는 저의 설교를 듣고 권사님 한 분이 다가와 질문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마음이 가난해야 한다는 거지 실제로 가난해야 한다는 말씀은 아니지요?"
그분은 한때 거부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늘 자신이 가난해진 것이 은혜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둘째 아들이 70평 아파트에 산다는 것을 자랑하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자랑하시는 분입니다.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조금 망설였지만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부자가 되려는 마음을 가진 이들은 많지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부자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의 대답을 듣고 고민하시던 그분은 결국 저희 교회를 떠났고, 뒤에서 저를 비난하는 말을 많이 하셨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마태복음 20장 1-16절 말씀입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라고 알려진 내용입니다. 그 가운데 특히 10절 말씀입니다.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설교 중에 "여러분들은 아침 여섯 시에 와서 저녁 여섯 시까지 열두 시간을 일한 사람과 오후 다섯 시에 들어와 한 시간을 일한 사람의 품삯을 똑같이 지급한다면, 이것을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한 집사님이 자신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고 그것은 너무도 불공정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그렇다면 한 시간 일하고 같은 품삯을 받은 사람이 집사님의 아들이라면 받아드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포도원이 하나님 나라라면 그곳에 가지 않으시겠습니까?"라고 좀 더 공격적인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그래도 그분은 하나님 나라가 그런 곳이라면 자신은 하나님 나라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분의 그런 생각을 저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오래도록 파출부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의 관점에서는 그런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분도 다른 교회로 교회를 옮기셨는데, 지금은 가끔씩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이라는 것이 세상의 일입니다. 세상의 일은 어쩔 수 없이 모든 사람의 삶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따라서 특별한 은혜가 없이는 세상의 방식을 떠나거나 세상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믿는 교인들도 세상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의 지혜에 따라 세상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위의 예들은 바로 그런 교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악순환

그러나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오늘날 교인들은 복음의 진수를 맛보지 못하고, 헛헛한 마음으로 피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녀도 그들이 바라는 것은 부와 성공뿐입니다. 하나님은 다만 부와 성공의 성취를 위한 수단일 뿐 그들의 진정한 주님이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형제와 자매들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면 세상의 지혜를 버리고, 세상의 방식을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염려와 근심이 그것을 가로막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자신들의 진정한 주님이 돈과 명예와 부라는 사실을 삶으로 입증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의 방식을 버리는 일이 너무도 두렵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는 일이 너무도 무모해보이기 때문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냥 그대로 과거의 삶을 답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진정한 평화가 없습니다. 진정한 희망도 없습니다. 입으로는 주님이 모든 것 되신다는 찬양을 부르지만 실상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부와 명예를 좇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속 하나님 나라 이야기

교회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면서도 속상한 일입니다. 또한 아이러니이기도 합니다. 댄 프라이스라는 사람이 CEO로 있는 그래비티 페이먼츠(GravityPayments)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신용카드 결제 서비스를 하는 회사입니다. 2015년 서른 살의 프라이스는 직원들의 최저 연봉을 7만 달러로 맞추려고 자신의 연봉을 백만 달러에서 10만 달러로 낮추고 나머지 90만 달러를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계기가 있었습니다. 2011년 어느 날, 댄 프라이스가 휴식시간에 직원 한 명과 나눈 대화가 발단이었습니다. 댄 프라이스는 직원에게 인사말로 잘 지내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시 연봉이 3만 5,000달러였던 이 직원은 사장 면전에서 퉁명스럽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내 연봉을 당신이 다 빼앗아가서 행복하지 않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라이스는 자신의 회사부터 소득 불균형을 바로잡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매년 15퍼센트씩 직원들의 연봉을 인상하였습니다. 환호와 박수를 받았습니다. 행복해 하는 직원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자본가인 내가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껏 제가 돈 쓴 일 중 제일 잘한 일입니다."

그래비티 페이먼츠(GravityPayments)의 직원들과 CEO 댄 프라이스(Dan Price)

프라이스는 직원들을 돈 주고 부리는 소모품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함께 행복하기를 원했습니다. 단순히 평등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함께 하는 공생의 관계를 추구했던 것입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얼마 가지 않아 회사가 망할 것이라 악담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고객은 55퍼센트 증가했고 수익은 350만 달러에서 650만 달러로 늘어났으며, 높은 임금 덕분에 직원들은 회사가 있는 시애틀이나 근교로 이사 올 수 있었습니다. 통근 시간이 많이 줄어들고 그들의 삶의 질이 높아졌습니다.

그는 우연히 하나님의 지혜를 실천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프라이스의 그 실천이 놀라운 변화를 이루어낸 것입니다. 그는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실현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두가 잘 사는 나라입니다. 그는 신앙과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의 방식과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

사실 프라이스가 실천한 것이 바로 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가지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나라입니다.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벌수도 있습니다. 부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가지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것을 내놓고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을 때 우리는 모두가 행복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일한 시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하루치 품삯을 지불하는 포도원 주인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동의하거나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실천할 때 우리는 복음에 담겨 있는 놀라운 결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은 묘수입니다. 예수의 지문이 스치기만 해도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윈윈 정도가 아니라 결핍이 없는 샬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을 사는 일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역설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경험이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성서가 진즉에 명확히 밝히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3-25)

프라이스는 무의식중에 하나님의 지혜를 실천했습니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인지도 모르고 실천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의 일부분만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기업에는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제대로 실천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단순히 똑같은 품삯이 아니라 일할 수 없는 사람들, 다시 말해 일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일할 수 없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효율이 떨어지고 조금밖에 일하지 못해도 똑같은 품삯을 지급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의 상식으로는 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와 샬롬이 그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가나안 성도들과 하나님 나라

저는 가나안 성도들이 참된 공동체인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업을 하는 분이라면 자신의 사업체에서, 자영업을 하는 분이라면 자신의 일터에서, 좋은 기술을 가진 분이라면 힘을 합하여 프라이스가 보여주었던 그런 일터를 만들면 됩니다. 그렇게 모인 일터를 기반으로 유무상통하는 초기교회의 모습을 실현한다면, 그곳은 분명 참된 공동체, 하나님 나라인 교회가 될 것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싶고, 어딘가 조금 허전하다면 같은 뜻을 가진 목회자를 자신들의 일원으로 초대하십시오. 함께 일하고, 함께 예배를 드리고,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해 나간다면 그분들은 분명 '헬조선'의 빛이 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억압과 착취에서 해방되고 약속의 땅을 선물로 받았는데, 이것은 해방된 백성으로서 다른 생활 방식, 즉 대안적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작금의 시대 상황이 그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돈의 노예가 되어 신음하고 있습니다. 갑질은 억압과 착취의 또 다른 모습일 따름입니다. 그들의 신음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새로운 일자리로 교회를 이루는 것은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공평하게 나누는 일은 다른 생활방식, 즉 하나님 나라 방식의 대안 사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와 아직의 긴장 상태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것입니다. 

저는 바로 그런 사명이 가나안 성도들에게 맡겨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나안 성도들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사역에 투입되고자 정든 교회를 떠난 것입니다. 가나안 성도들이 용기 있게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 그 일에 매진한다면 복음은 분명 이 시대에도 좋은 소식으로 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이며, 복음의 진리가 온 세상을 부풀게 하는 누룩으로서의 제 역할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희망은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검질기게 희망의 씨를 뿌리는 이들을 통해 이 땅에 유입됩니다. 피에르 신부님은 인간을 '믿는 자'와 '안 믿는 자'가 아니라, 홀로 만족하는 사람과 공감하는 사람 , 즉 다른 사람들의 고통 앞에서 등을 돌리는 사람과 고통을 나누려는 사람으로 구분하였습니다. 믿는 사람 가운데도 홀로 만족하는 이들이 많고, 믿지 않는 이들 가운데도 다른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애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가나안 성도들이 참된 복음의 사람이 되어 적대적인 이 세상을 환대의 곳으로 만들고자 최선을 다한다면 그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여명이 밝아올 것입니다. 그곳에서 새롭게 모인 사람들이 새 노래를 부를 수 있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봅니다.(서정주 시인의 국화꽃 옆에서가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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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m 2017-03-07 05:44:22
저도 아멘입니다. 실천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이강진 2017-03-06 18:56:36
아멘입니다...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