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 사건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풍자와 해학
바벨 사건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풍자와 해학
  • 김동문
  • 승인 2017.03.15 01: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큰 강 유브라데 하수’(창 15:18), ‘해 뜨는 곳’(사 45:6, 말 1:11), 히브리어 ‘나하라임’ 등으로 묘사되는 곳이 있다. 그리스어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꽃 피었던 곳이다. 오늘날의 이라크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두 강이 만나서 이룬 풍요한 땅에서 생겨난 정착 문명을 지칭한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명의 요람이 구약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믿음의 족장들의 삶의 토양이었다는 사실을 쉽게 떠올리지 않는다. 창세기를 읽으면서 이라크 땅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지 않다. 성경을 역사 안에서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적지 않은 이들에게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등의 역사적 실존에 대한 회의가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연구 결과는 창세가의 족장들이 이야기가 역사적 실체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 같다. 물론 다윗과 솔로몬 왕조 자체가 역사적 실체가 없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 내러티브의 역사성을 믿는 나와 같은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이들에게는 창세기 인물들의 역사속의 실존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최소한 창세기 인물들의 내러티브에 반영되어 있는 문화, 사회, 종교, 세계관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평가한다.

창세기 읽기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이들이 느끼고 공감했을 그 현장감에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다. 성경 기록은 글을 통해 글을 읽는 독자들을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문자 해독이 가능한 이들이 거의 드물었던 시대,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책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일이 아주 드물었던 그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야 한다. 그래서 성경 내러티브는 듣는 사람들의 귀에 입체적으로 들려지도록 기록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성경은, 글을 깨우친 사람이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을 통해,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도록 기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들의 하강을 위한 사다리길 신전 지구라트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창세기 11:1-5)

바벨탑 사건, 바벨탑 등의 용어가 익숙한 이들이 많다. 그 단어가 성경에 나온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창세기에 바벨탑이 나오는데 무슨 말인가?’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고유명사로서의 바벨탑은 성경에 없다.

‘시날 평지’(창 11:2)에 사람들이 쌓은 건축물, ‘하늘에 닿은 탑 꼭대기’는 일반적인 모양과 의미의 성읍이나 탑은 아니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지구라트’(Ziggurat)로 부르는 신전 양식을 말한다. ‘지구라트’란 계단식으로 올려 쌓아지고 이것이 층층이 단을 이루는 신전 건축 양식이다. 이 지구라트는 이라크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하는 이라크 남부 지방에 자리하고 있다. 기원전 2200년 전부터 기원전 500년까지, 수메르, 바벨로니아, 앗시리아 제국에 이르기까지 지그라트 신전 양식은 이어졌다.

이라크 중부 바그다드 근교의 아까르 꾸프의 지구라트. 3500년전 쯤에 지어진 것으로, 우르 지역의 지구라트에 비하여 후대의 것이다.

오늘날 이라크의 우르(현지명 ‘ Dhi Qar’ 지역으로 2003년 이라크 파병 한국군이 한동안 주둔했던 안-나씨리야 주에 속해 있다.) 지역의 지구라트가 속칭 바벨탑이라 일컫는 그것으로 많은 이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 지구라트를 살펴보면, 벽돌과 벽돌 사이를 역청(아스팔트)로 견고하게 세웠다는 창세기 11장 3절의 증언과 일치한다. 물론 지구라트는 바그다드 근교 아까르 꾸프(Aqar-Qūf)에도 존재하며 이라크 중부 지방 곳곳에서 발견된다. 창세기 11장 바벨(탑) 이야기에 등장하는 신전의 다른 후보로는 고대 바벨론제국의 수도였던 바벨 지역의 거의 파괴된 지구라트가 언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까르 꾸프의 지구라트는 3500년전 쯤에 지어진 것으로, 우르 지역의 지구라트에 비하여 후대의 것이다.

지구라트는 건축물 꼭대기까지 계단으로 이어져있다. 하늘 꼭대기까지 ‘성읍과 탑’을 쌓았다는 성경의 기록을 이해할 수 있다. 이 계단 길을 야곱의 꿈에서는 사닥다리(“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창 28:12)로 표현하고 있다.

성경 창세기 11장에서 언급되는 것과 같은 ‘성읍’과 ‘탑’(Tower)으로 구성된 것이고, 역청(아스팔트)을 이용하여 접합을 시킨 구조물이다. 우르 지역의 지구라트는, 높이 30미터, 폭 45미터, 전체 길이 64미터에 이른다. 건춝 추정 연대는 우르 3왕조(2112 BC — 2004 BC) 시기인 기원전 21세기이다.

이것은 천문 관측기구는 아니었다. 종교적인 상징물도 아니었다. 그들의 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신전, 즉 종교적 건축물도 아니었다. 신들을 위한 제사 행위는 개별적인 신전에서 이뤄졌다. 이 같은 판단은 지구라트가 속이 꽉 찬 구조물이라는 점에서도 추정해볼 수 있다. 일반적인 신전이라면 신전 안팎에 다양한 시설들이 자리했다. 신들을 위한 방이라든지 신전 용품을 두기 위한 방은 물론이고 신들의 처서로서 성소, 지성소도 자리했다. 그러나 지구라트 내부에는 어떤 편의 시설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메르, 바벨로니아 신들의 지상 강림은 일시적인 것이었다. 그들에게 그들의 신들이 그들 가운데 영원히 거한다는 개념은 없었다.

고대 도시들은 대개 신전과 시설물(그것이 궁궐이든 군사 시설물이든 가릴 것 없이)이 결합되어 복합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거주자들의 종교 관념에는 도시들은 신의 소유된 것이다. 그래서 그 지역의 으뜸신이나 민족신, 국가 신을 위시하여 다양한 신들의 예배처로 신전들이 별도의 공간에 지어져 있다. 지구라트는 일종의 신들이 하강하고 다시 신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였다. 신들의 세계와 인간들의 땅은 단절이 있었다. 그것을 이을 수 있는 길로서 계단이 필요했다. 메소포타미아의 신들은 자신들의 세계의 열린 문을 통해 지구라트 계단 길을 따라 인간 세상에 내려와야 했다. 지구라트는 신들의 강복을 구하는 일종의 편의 시설인 셈이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개그

이런 이해를 배경으로 창세기 11장 1-9절을 다시 읽어보자. 어떤 우스꽝스런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지? 이라크 남부 시날 평지에서 이 지구라트를 만들던 사람들은 그들이 쌓은 계단 길을 따라 신이 강림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들이 만든 길이 아닌 별도의 통로를 이용하여 인간의 땅에 내려온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인들에게는 이 얼마나 당혹스런 장면인가? 아마도 이 기록을 읽던 메소포타미아의 문화에 익숙했던 독자들은 박장대소(拍掌大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에 일으키리라 "(요 2:18) 예루살렘 성전을 자주 찾으시면서도 성전 파괴를 선언하신 예수님의 메시지가 이 바벨 사건과 어우러진다.

성경 사건이 언급하고 있는 '그 때 그 자리'에 우리가 다가서게 되면, 성경은 단순히 우리에게 글짜가 아닌, 일상과 공감으로 다가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