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목사, 이 목사, 김 목사.... 불의한 목사들의 공통적인 DNA...
오 목사, 이 목사, 김 목사.... 불의한 목사들의 공통적인 DNA...
  • 강만원
  • 승인 2017.03.16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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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있을진저, 너희 외식하는 자여! 

가톨릭까지 포함해서, ‘세계 최대 지하예배당’으로 기네스북에 보란 듯이 이름을 올린 사랑의 교회 서초예배당(SGMC)... 그곳의 성주 오정현 목사는 호화 예배당 건축이 한창일 때, “사람은 왜 무너지는가?”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교인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했다.

“바벨탑의 붕괴에서 보듯이 사람들이 안주하려 하거나 자기 이름을 높이려 할 때 하나님은 그 목을 꺾는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자신은 “사랑의 교회와 더불어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며, 헛되이 이름을 높이려 하지 않는다.”는 말일 터다. 그런데... 온갖 의혹에 휩싸인 채 3000억이 넘는 초호화 예배당을 지은 자가 “안주하지 않는다”, "자기 이름을 높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어째 어색하다는 생각이, 아니 가증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호화 예배당은 그 자체로 이미 ‘안주’와 '높임'을 상징한다. 그리고 안주는 전통이라는 미명에 가려진 종교적인 타성을, '높임'은 비대한 종교권력을 의미한다. 그래서 유대 성전주의의 거짓 신앙을 엄히 비판하면서 예수께서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도 그리심 산의 제단도 아닌 새 성전에서, 이를테면 마음의 성전에서 성령과 진리(말씀)로 예배드리는 ‘새로운 언약 시대’가 오리라고 예언하신 것이다.

주께서 ‘떠나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인의 사역과 순종은 호화건물은커녕 전대에 노자도 챙기지 않고 심지어 두 벌 옷도 입지 않으며 두 켤레 신발을 준비하지 않는 ‘무소유’ 상태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흩어짐’으로 강조되는 사역의 기본은, 오래토록 안주하려 해도 도저히 안주할 수 없으며, 한 곳에 머물려 해도 ‘머리 둘 곳이 없어서’ 서둘러 떠날 수밖에 없는 겸손한 삶과 마음, 이른바 '가난한 영성'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비싼 예배당,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유리 성’ 바벨탑을 짓고 나서 '안주하지 말라'고 너스레를 떨고.., 세계 최고, 최대를 자랑하는 호화예배당을 기네스북에 보란 듯이 이름을 올려놓고 ”자기 이름을 높이려 하지 말라“며 감동어린(?) 설교를 하는 오정현의 신앙은 도대체 어떤 신앙일까?

더욱 가관인 것은..., 학력 사칭, 학위논문표절, 강도사 사칭, 목사안수 의혹 등등... ‘거짓말의 달인’으로 널리 이름을 떨친 오정현이, 그의 참담한 거짓말로 단지 사랑의 교회 교인들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교인 모두에게 치명적인 수치를 안겨주었던 그가 전혀 망설임 없이 ‘정직’을 입에 담는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20년 동안 살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정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자기가 사용하는 단어의 용례와 해석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남다른 영성(?)에 따라 거짓과 정직을 ‘영적인 동의어’로 정의하는 오정현이 꿈에 그리던 사랑의 교회에 2대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호기롭게 ‘정감운동’(정직과 감사 운동)을 주창했는지 모르지만, 차이가 지나치면 그것은 더 이상 차이가 아니라 명백한 오류이며, 오류에 깊이 빠져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이 바로 저주에 이르는 ‘거짓 신앙’이다.

당연히 수치의 이름일망정 어쨌든 한국교회사에 길이 남을 ‘오정현’을 연구(?)하면서 터득한 사실이 있다. 그가 비록 지존이지만, 이런 비정상적인 행동과 의식은 그만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 대다수 목사들의 전반적인 의식이며 공통된 행동양식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거짓과 교만, 무지와 탐욕, 그리고 겉과 속이 다른, 이른바 표리부동의 외식이 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교회의 양적 규모나 한국교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사랑의 교회 오 목사에 견줄 때 그야말로 조족지혈이지만, (분당) 한*교회 이** 목사에게서 나는 오 목사와 거의 동일한 모습을 발견한다.(아직도 티끌만한 기대가 남아있는지, 일단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할 말이 너무 많아 자세한 이야기들은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이 목사가 교인들 앞에서 ‘수없이’ 반복했던 주제설교를 간단히 되짚는다. 다양한 제목과 주제로 말했지만, 그가 교인들 앞에서 했던 설교는 말 그대로 ‘표적 설교’의 전형이다. 성경구절을 한두 구절 인용한 뒤에, 또는 뜬금없이 종교적인 지식을 전한 뒤에 여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더욱이 특정한 교인(들)을 표적삼아 자기 생각을 교인들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루터의 종교개혁을 자기개혁(반성)의 사적인 메시지로 왜곡시키며 “교회에서 조용히 있으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사울에 대한 다윗의 아름다운 용서를 설교하다가 느닷없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사울이 처참하게 죽었다고 말하는 식이다. 입으로는 용서를 말하면서 마음으로는 자기를 비판하는 교인들에 대한 심판을 선동하는 것이다.

물론 그는 매번 설교를 통해 '용서'를 강조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용서의 대상은 예외 없는 공통점이 있다. 즉, 자신의 추종자들에게서 비리나 허물이 드러나면 그는 주저 없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없으며, 죄인을 용서하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의 기본이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이며, 그리스도의 은혜는 죄인을 용서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런 그가 정작 뒤에서는 자기를 비판하는 교인을 출교하기 위해 다른 교인들을 사주·선동하며 연대서명을 받고 있는가 하면, 사역을 막기 위해 치졸한 꼼수를 마다하지 않는다. 교인들 앞에서는 추종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면서 뒤에서는 끊임없이 비판자들에 대한 보복과 전횡을 일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거짓과 외식, 탐욕과 교만, 무지와 불신앙에서 오 목사와 이 목사 사이에, 아니 타락한 한국교회 목사들 사이에 전혀 차이가 없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당연한 ‘진리’처럼, 이래서 내가 목사성직주의에 물든 ‘한국교회 목사들의 영혼과 골수에 박힌 절대불변의 DNA’라고 말하는 것이며, 가시덤불에서 열매 없는 가시만 무성할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던 예수께서 그들에게 전하신 무서운 말씀으로 마무리한다. “화있을진저, 너희 외식하는 자여!”

강만원 / '아르케처치' 대표, <그것은 교회가 아니다> 저자, <루나의 예언> 역자, 종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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