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중독된 교회
설교에 중독된 교회
  • 신성남
  • 승인 2017.03.26 15:5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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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잖은 설교가 너무 많다

설교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귀한 사역이다. 설교의 유익에 대해서는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바른 설교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삶을 바꾼다.

그러나 설교를 오해해선 안 된다. 설교 자체가 하나님의 음성은 아니다. 설교자의 말이 저절로 하나님 말씀이 되는 건 아니다. 설교자는 다만 성경의 가르침을 겸손히 전할 뿐이다. 말씀의 권위는 '성경'에 있는 것이지 '설교'에 있는 게 아니다.

'신앙'과 '맹신'이 역전된 이유

언제부터인지 개신교는 설교에 깊히 중독된 상태다. 많은 신도들이 독립적 신앙 인격을 갖추어 스스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읽으며 삶에 적용하지 못 하고 주로 목사의 설교에 의존하여 신앙 생활을 한다. 교회 생활을 수십 년이나 하고 장로나 집사가 되어서도 여전히 목사의 지침만 기다리거나 또는 그가 주는 모유만 찾는 영적 미숙아가 적지 않다. 

그 결과 설교가 예배의 중심이 되었고, 설교자가 교회의 중심이 되었다. 설교를 듣기 위해 교회에 가고, 설교자의 지도에 따라 교회 생활을 한다. 한국 개신교는 오직 목사만 말한다. 그리고 툭하면 신정통치 운운하며 오히려 교인들의 신앙적 소통과 참여를 불필요한 것으로 폄하한다. 그바람에 개신교 목사직이 종의 자리에서 왕의 자리로 점차 변질되었다. 교회마다 중세 교황이 한 명씩 들어선 셈이다.

게다가 매주 목사의 일방적인 설교와 논리만 듣다보니 그 정당성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기능이 마비되거나 퇴화되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대화식 '양방 소통'이 아닌 그리스나 로마의 웅변식 '일방 소통'이 현대 설교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여기서부터 신앙과 맹신의 역전이 서서히 시작된다.

일찍이 독일 나치 선동의 천재 괴벨스는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 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 이걸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 바로 삯꾼 목사들이다.  

그래서 어떤 교회 생활은 사회 생활에 그다지 강력한 영향력을 주지 못 하고 있다. 멋진 설교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신도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보다는 주로 자기 성공과 자기 성장과 자기 치장에 분주했기 때문이다.

"종교는 구라다"

요즘 화려하고 웅장하고 요란한 교회는 제법 많으나, 정작 세인들의 마음을 진솔하게 움직이는 교회는 많지 않다. 지역 교회에서 아름다운 헌신과 훈훈한 사랑을 보며 가슴이 따뜻해지는 일을 보기가 쉽지 않다. 그저 교인들끼리 지지고 볶고 즐기기에 바쁜 교회들 투성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교회 설교자의 품성과 자질에 큰 하자가 있을 때 발생한다. 좋은 설교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교회를 바르게 섬기며 처신한다. 따라서 건강한 공동체가 가능하다. 반면에 삯꾼 설교자는 자신을 속이고 또한 교회를 속인다. 마치 구약의 선지자나 제사장처럼 행세한다.

후안무치란 '얼굴이 두꺼워서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이다. 요즘 일부 설교자들에게 해당되는 최적의 말이다. 평생 하나님 중심으로 살자고 유창하게 설교하던 목사가 갑자기 자식이나 사위에게 교회를 세습한다. 매주 특별새벽기도회 열심히 인도하던 목사가 틈만 나면 교회 돈을 뭉치로 가져간다. 온갖 고상한 척 기도하던 목사가 설교나 논문을 표절한다. 그리고 뜨겁게 찬양하던 목사가 교인을 성추행한다.

그러나 사실 이들보다 더 약삭빠른 위인들은 이런 불의에 조용히 침묵하며 기득권을 알뜰하게 챙기는 절대 다수의 '자칭 중도파' 목사들이다. 그들은 늘 넓은 문으로 간다. 적당히 경건하고, 적당히 성실하고, 적당히 개혁하려고 한다. 그리고 교회를 싸잡아서 비판하지 말라고 한다. 항상 긍정의 힘을 강조하며 기복 신앙을 부추긴다. 그 덕분에 속주머니가 넉넉하다. 오죽하면 "종교는 구라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을까.

그럼에도 교회 비리에 대해 눈감는 사람들이 많다. 목사는 하나님이 세우셨으니 사람이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황당한 주장이다. 만일 그런 식의 단순한 논리라면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은 게 어디 있나. 그러면 스탈린이나 히틀러나 이완용도 하나님이 세우셨으니 저항하지 말고 그들에게 순종해야 하나.

'명성'을 추구하는 목사는 사기꾼

어느 날 세계적 전위예술가 백남준 선생에게 한 기자가 "예술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 때 그는 즉시 "예술은 사기다"는 충격적 답변을 했다. 물론 그는 예술이 진짜 사기라고 생각한 건 아니다. 다만 그는 예술을 역설적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평소엔 그리도 당당하게 논리를 세우며 청산유수로 설교하던 목사들이 막상 자신의 세습과 횡령과 성추행에 대한 변명은 참으로 한심할 정도로 저질스럽고 뻔뻔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설교는 사기다" 또는 "설교는 구라다"라는 반어법이 자꾸 떠오른다.

"교인은 결정할 때 목사 말 따라야 한다", "부자 세습이 한국교회의 고질적 병폐로 자리잡은 원로와 후임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세계적 대교회 목사가 10억 못 만들어 교회 돈 횡령하겠나", "교인들은 교회 장부 볼 필요 없다", "법정에서 불륜 인정한 건 변호사의 잘못된 코치 때문이다", "여자 문제, 돈 문제? 천주교, 불교는 훨씬 더 심하다", 그리고 "회개하라고 자꾸 나한테 말하는데 회개는 나와 하나님하고 하는거다"는 등 어떤 목사들의 막장 드라마같이 유치한 설교와 말장난을 듣고 있노라면 정상적인 어법으로는 도저히 대꾸할 염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는 목회란 명분이 웬만한 불의와 부정에 아주 값싼 면죄부를 마구 남발한다는 거다. 어떤 교인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고용한 일개 목사를 마치 하나님의 대리자로 안다. 평소에 그렇게 세뇌 당했다. 그래서 목사니까 믿어주고, 목사니까 바치고, 목사니까 묵인하고, 목사니까 속아주고, 목사니까 참고, 그리고 목사니까 용서한다. 심지어 속으론 욕하면서도 겉으론 순종한다.

이러니 일부 분수를 모르는 목회자들의 같잖은 설교는 갈수록 태산이다. 쥐뿔도 아닌 인생들이 갈수록 안하무인이다. 온라인에 널려있는 여러 유명한 목사들의 설교를 듣다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목소리 깔고 무게 잡는 자, 은근히 훈계조로 반말하는 자,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자, 그리고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원고지를 그대로 낭독하는 자도 있다. 아는 척 잘난 척 여기저기 온갖 잡무당들의 굿거리가 난무한다. 결국 상당수 목사들은 예수의 이름을 팔아 돈을 챙기고 세상의 명리와 명성만 추구하는 독사가 되었다. 물론 이런 자들을 우린 사기꾼이라고 부른다.

이제 한국 개신교는 이 강단 저 강단에 똬리를 틀고 교회의 단물을 핥고 있는 '담임독사'들을 탄핵할 차례다.

"사기꾼들은 하나같이 대중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 '명성'을 얻으려고 열심히 속임수를 쓴다." - 장 칼뱅(Jean Calvin), <기독교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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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 2017-03-31 21:21:23
개혁교회장로교... 교단100개가넘는 현실...정말이젠 자정능력을 잃어버린것같네요 ..
단일교단... 성공회.루터교.정교회 등을 권유하고 추천하고 싶네요.. 설교가운데 차별.무시. 독선.밥먹듯 훈계식설교.권위주의..이런언어들은 성도들을 지치게합니다. 6일동안일하고 모진핍박받으며세상일하다가 교회오면...쉬고싶어도 쉬어지지를 못합니다. 현실은

장장로 2017-03-31 03:36:52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런데 신집사님의 논조가 항상 똑같아서 하는 얘기인데, 대안을 정확하게 제시해 주시는 것도 필요합니다. 아니면, 다들 교회 다니지 말고 집에서 혼자 성경보고 열심히 말씀대로 살아라는 식으로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추천해 주시고 싶은 설교자나 교회도 알려 주시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