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
  • 김동문
  • 승인 2017.04.04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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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 ’유대교‘, ’아랍‘, ’유대인‘, ’이스라엘‘ 등의 어휘를 사용할 때, 만은 이들이 느끼는 느낌은 다르다. 하나는 친밀감이고 다른 하나는 거리감과 적대감이다. 누가 누구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까? 당연하게 유대교, 유대인, 이스라엘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느낌과 판단은 객관적인 것일까?

기독교와 유대교가 구약성경을 공유한다. 그런 이유인지 모르지만, 적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유대교를 기독교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한다. 이슬람은 유대교보다 더 반기독교적이라 규정짓곤 한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이슬람이 유대교에 비해 기독교 이해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있다.

유대교와 이슬람 모두 하나님(유대교와 이슬람에서 각자 하나님을 표기하는 것이 있다. 유대교에서는 야훼로, 이슬람에서는 알라로 표기하곤 한다. 이 글에서는 필요에 따라서, 그것을 구분하기도 했고,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다룰 때는 표현의 차이를 빼고 하나님으로 표기하였다. - 필자 주)에 의한, 무에서의 유의 창조, 천지와 인간 창조를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 방식과 내용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여준다. 유대교는 기원전 3761년에 지구와 인류가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이 같은 창조연대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은 이런 창조연대를 주장하지 않는다. 이보다는 더 오랜 기간 동안 지구가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이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신 유일한 존재이다. 때문에 유대교, 이슬람 모두 삼위일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담의 죄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쫓겨났다고 소개한다. 즉 아담과 하와의 죄에 대해서는 거의 같다. 그런데 그 죄를 바라보는 입장은 다르다. 아담의 죄가 후손들에게, 모든 인류에게 전수된다고 하는 기독교의 입장에 반대한다. 아담과 하와는 선하게 창조되었고, 그 후손들도 선하게 창조된다고 말한다. 다만 사회와 성장과정에서 악에 오염되는 것이라고 인간의 상태를 설명한다. 인간의 잘못(죄)에 대한 책임이 그 인간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것으로, 선행을 통해 그 죄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무슬림들이 많다. 유대교나 이슬람 모두 자력과 선행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중보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그리스도(메시야)가 유대교나 이슬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메시야는 인간일 뿐이고 하나님이 구별하고 선택하여 인간들에게 보낸 하나님의 예언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대교의 메시아는 유대인이며, 유대민족을 우선적으로 구원할 정치적 메시야로 받아들인다. 이슬람은 특정 인종을 위한 메시야가 아닌 모든 민족과 관련이 있는 메시야로 말한다. 물론 그 메시야가, 재림할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로는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바로 이것이 유대교와 이슬람의 가장 큰 차이일 것 같다. 유대교에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는다. 더 멀리는 예수의 예언자로서의 정체성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전혀 예수의 자리가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예수의 존재가 자주 언급된다. 꾸란에서도 무함마드보다 예수가 더 많이 언급된다. 예수의 재림도 인정한다. 그러나 예수의 신성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심판자로서의 예수의 재림도 인정하지 않는다. 아주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로 믿고 존경할 뿐이다. 또한 유대교에는 기독교의 자리가 없다. 그냥 이방인일 뿐이다. 이슬람에서는 기독교와 유대교도 계시의 종교로 인정된다. 기독교에 대해서도 존중하고 받아들인다. 물론 폭력적인 정권과 집단에 의해 반기독교, 반유대교 입장이 전개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슬람 세계에서 유대교의 문명의 흔적과 유대인이 오랜 시간 동안 보호된 것을 통해, 그리고 기독교회와 기독교인, 그 문명의 흔적이 보호된 것을 통해, 이슬람이 갖고 있는 기독교와 유대교에 대한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 모두, 하나님의 절대성을 인정하고 믿는다. 그의 권위와 능력과 존엄함, 정의, 평화, 사랑의 속성도 믿는다. 그런데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존재이다. 인간과의 소통은 예언자를 보냄을 통해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되었다고나 인간의 일상에 찾아와 머무신다는 등의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대교의 유대 선민주의가 강한 반면에 이슬람의 은근한 아랍선민주의가 비교된다. 아랍선민주의라 표현한 것은, 알라가 아랍어로 1400년전 무함마드를 통해 계시하였기에, 꾸란은 그 아랍어로 된 것만이 경전이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꾸란은 경경전이 아닌 인간의 번역한 책일 뿐이다.

유대교, 이슬람 모두 거룩한 장소가 있다. 유대교의 예루살렘 성전(터)와 회당이, 이슬람의 사우디아라바비아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과 사원이 그중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슬람에서는 메카를 향해 엎드리는 장소를 거룩한 공간으로 생각한다. 이 기도 공간은 어디에서나 마련할 수 있다. 기도 양탄자를 펼치거나 없으면 다른 무엇인가를 활용하여, 땅과 구별을 통해 기도 공간, 거룩한 공간을 마련한다.

문득 기독교의 성지순례가 어디서 영향을 받았는가를 떠올려 본다. 유대교의 성지순례가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하는 초대 기독교를 거쳐, 이슬람으로 전달된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기독교인의 성지의식이 유대교와 이슬람보다 더 강한 것으로 내게 다가온다. 신비주의 계열의 무슬림이나 시아파 무슬림의 경우 거룩한 장소에 대한 애착이 다른 무슬림보다 크게 보인다. 그러나 수니파 무슬림의 경우 거룩한 장소에 대한 의식은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에 대한 것 외에는 두드러지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질문은 계속되어야 한다. 유대교와 이슬람은 예수의 존재, 예수의 재림, 복음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다른가. 사람들의 일상에 찾아오신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유대교, 이슬람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가? 우리가 알고 실천하는 하나님나라 복음은 성경적인가? 유대교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이슬람은 기독교 복음에서 어느 정도 멀리 있는가? 이런 질문을 마주하면서 마음에 무엇이 떠오르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유대교는 기독교에서 멀고, 우리가 믿고 있는 것보다는 이슬람이 기독교에 다가서있다. 즉 무슬림이 성경과 기독교 신앙을 이해할 토대가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대교에 대한 과도한 심리적 채무감으로부터 자유로와지면 좋갰다. 무슬림에 대한 지나친 심리적 거리감으로부터 벗어나면 좋겠다. 복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들 가까이에 다가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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