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추도사로 또 드러난 황교안의 일그러진 신앙관
4.3 추도사로 또 드러난 황교안의 일그러진 신앙관
  • 지유석
  • 승인 2017.04.04 11: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희생자 앞에서 '관광 활성화', '북한 도발책동' 등 부적절 발언 해
제 69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 출처 = 오마이뉴스

"제주도민 여러분, 이제 제주는 세계적인 평화의 섬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중략) 다만, 최근에는 국내외적인 여러 상황에 따라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드는 등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정부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 다변화, 국내 관광 활성화, 관광업계 긴급 경영 지원 등을 통해 관광산업이 다시 도약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내수'와 '관광 시장 활성화' 대책회의를 주재하는 등 위기 극복에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최근 제주를 찾는 국내 관광객으로만 보면 작년 같은 기간보다 9% 가까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앞으로 민·관의 힘과 지혜를 하나로 모아 관광산업의 질적 성장을 이루는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정부는 또한 신(新)항만과 제2 공항 건설 등 제주 지역 인프라 구축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지난 3일 오전 제주시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69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전한 추도사 중 일부입니다. 제주4.3은 한국전쟁의 전주곡이었으며, 한국 현대사에 그어진 상처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제주4.3 희생자를 추모하는 그 자리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내수', '관광 시장 활성화' 운운하는 건 여러모로 부적절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황 대행은 국민화합과 통합을 강조했습니다. 황 대행의 추도사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안보,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특히 북한의 무모한 도발책동이 계속되는 가운데, 최근 일련의 사태로 확대된 사회적 갈등과 분열 양상도 심각합니다.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국민적 화합과 통합으로 우리의 국가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이 발언은 희생자를 다시 한번 모독하는 발언입니다. 제주4.3 사건은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맞서 제주도민들이 봉기한 데서 비롯됐습니다. 이승만은 반공 논리를 내세우며 도민들의 봉기를 무자비하게 진압했습니다. 이후 50년 동안 이 사건은 '빨갱이의 준동'쯤으로 매도 당해왔습니다. 이에 '북한의 무모한 도발책동'이라는 황 대행의 발언은 이승만 정권이 제주4.3을 진압하면서 내세운 논리의 연장선에 있는 것입니다.

또다시 드러난 황 대행의 일그러진 신앙관 

황 대행의 발언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도 심각해 보입니다. 한국 개신교는 제주4.3의 중요한 가해자입니다. 1945년 해방 이후 평안도, 황해도 등 서북 지역의 개신교인이 대거 남한으로 내려옵니다. 

이들은 개신교 안에서도 근본주의 성향이 강했던 부류들이었습니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 연구실장은 지난 2015년 3월 종교포럼 '종교를 걱정하는 불교도와 그리스도인의 대화: 경계 너머, 지금 여기' 발제를 통해 "서북의 장로교는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강성의 근본주의 그리스도교"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승만은 근본주의 개신교 집단을 봉기 진압의 최전선에 내세웠습니다. 이들을 서북청년단이라고 합니다. 서북청년단은 경찰과 한 몸처럼 움직이며 온갖 잔혹 행위들을 일삼았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불리한 쟁점이 불거질 때마다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같은 극우단체들을 동원해 반대파를 향해 폭력을 일삼았습니다. 이들의 뿌리는 서북청년단이었던 셈입니다.

서북청년단의 잔혹 행위를 다시 끄집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현재 개신교계가 제주4.3에 대해 전혀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 지적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지난 2014년 9월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는 움직임이 일었습니다. 당시 재건위원회 대변인은 정함철씨가 맡았는데, 정씨는 극우성향의 기독교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서북청년단은 2015년 1월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화문광장을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오는 1월 31일 자정을 기해 강제로 철거하겠다"고 발표했고, 이때 정씨는 이 같은 입장을 전달하고자 광화문 세월호 광장을 찾았습니다. 

정씨의 세월호 광장 방문은 경찰의 제지에 막혀 무산됐습니다. 당시 저는 현장에 있었는데, 정씨에게 "제주 4·3 항쟁에서 잔혹 행위를 자행한 서북청년단을 되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정씨는 "역사관이 잘못됐다. 서북청년단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보수 개신교계, 제주4.3에 여전히 이념적 잣대

정씨의 행태가 한국 개신교 전반을 대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신교, 특히 보수성향의 개신교계는 여전히 제주4.3에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고 있습니다. 즉, 이른바 '반공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난 2003년 고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4.3에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와 경찰은 아무런 입장이 없습니다. 4.3희생자에 대한 보상도 지지부진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보수 성향의 목회자들은 희생자 보상에 반대하는 한편 4.3사건 폄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숙명여대 리더십 교양학부 김응교 교수는 자신의 책 <곁으로>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제주 4.3 희생자 1만4033명 전원을 '폭도'로 규정하고, 제주 4.3평화공원에 대해서 '폭도공원'이라며 공사 중단을 주장했는데, 앞장선 사람들이 바로 이선교 목사(현대사포럼대표)와 전광훈 목사(청교도 영성 훈련원장)를 비롯한 목사들이다."

다시 황 대행의 추도사를 따져 보겠습니다. 황 대행의 추도사 역시 보수 개신교계의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황 대행은 성일 침례교회 전도사로 시무한 경력이 있으며, 보수 개신교계의 지지도 두터운 편입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관이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전 여러 차례 그의 신앙관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황 대행은 또다시 제주4.3 희생자들을 욕보였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희생자들 앞에 고개 숙여 참회해야 마땅한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전 개신교인으로서 매년 4월이면 죄스런 마음을 금할 길 없었습니다. 제주4.3, 그리고 세월호 때문입니다. 황 대행을 비롯해 여전히 제주4.3에 아무런 회개도 반성도 없는 개신교인들이 때론 밉기도 합니다. 부디 이들이 올바른 신앙관을 갖고 제주 시민 앞에, 그리고 역사와 민족 앞에 머리 숙여 참회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끝으로 개신교인으로서 서북청년단이 제주도민들을 향해 저지른 만행에 깊이 사죄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