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이 무엇입니까?
  • 한종은 목사
  • 승인 2017.04.08 2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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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2017이민자보호교회 네트워크 및 심포지엄'에서 큰 반향을 일르킨 '이민자보호'와 관련한 교회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 발표한 한종은 목사(뉴욕소금교회)의 논찬을 필자의 허락하에 게재합니다. 원문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편집을 하지 않았음도 알립니다 - <편집자 주>


제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하나입니다. 목회자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당면한 시대적인 아픔속에서
우리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죄라고
생각하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지금 이곳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나 신념을 떠나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마음,
이것이 참 사람이 되기 위해 품어야 할 마음 아니겠습니까?

조원태 목사(뉴욕교협 이민자보호교회 테스크포스 위원장,왼쪽)의 사회로 진행된 '이민자 보호교회 심포즈엄'에서 한종은 목사(뉴욕소금교회)가 논찬을 발표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함께 아파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교회의 본질적인 목적이
사랑을 이루는 일에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는 옳은 것을 추구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교회가 법도 잘지켜야 하고,
옳은 것을 추구하고, 옳은 길을 가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옳은 것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가치는 사랑입니다.
교회는 정의를 세우는 곳이 아니라,
사랑을 완성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한국분들 중에도 서류미비자는
법을 어겼으니, 추방당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가 나서서
서류미비자들의 피난처 노릇을 하는 것조차
부당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비통한 사실은 세상사람들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안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이 교회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서류미비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의 방패가 되어서 트럼프의 반이민정책과 싸울때,
교회안밖에서, 때로는 우리 내부에서조차  
많은 비판과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구제기관이냐? 인권단체냐?
목사가 설교나 잘 준비하고, 심방이나 다닐 것이지
교회 성장도 제대로 못시키면서 왠 반정부 운동을 하느냐?
당신도 좌파냐….무지하게 욕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고통와 비교하면, 가시에 찔려 따끔한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기 위해 합당한 고난을 받는 것이
영광이 되고, 자랑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이 시대의 강도만난자를
돕고 섬기는 일이 우리 교회에 주어진 시대적 소명,
선교적인 소명임을 깨달아서,
모든 성도가 한 마음으로 뜻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나되는 일이 피난처 교회에 주어진 일차적인 과제일 것입니다.

얼마전에  미주에 있는 한 교회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보고
기겁했습니다. 동성결혼과 낙태를 반대하고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트럼프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신
이 시대의 종이라는 기사가 신문 일면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세우신 것은
침체된 미국의 복음주의 운동에
새로운 부흥을 일으키시는 의도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으로 1200만 이상이 되는
서류미비자들의 삶이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교인중 상당수가 서류미비자로 살고 있을 그 교회에서
발행하는 신문 1면에 그런 망언이 실린 것을 보고
이것이 지금 이민교회의 현실이구나….
이민교회 목회자들이 다 내 마음 같지 않구나…
분노와 함께 찹찹함을 감출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문제로 서로 시비를 걸고,
비판하고 있을 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자녀가 보고 있는 학교에서 아버지의 손에 수갑을
채워 잡아가는 참담한 현실앞에서
모든 이민 교회는
신학이나, 신앙의 노선을 떠나서
교단이나, 교리를 떠나서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연대하고 힘을 합쳐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어 내야 하는 과제가
이민교회앞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우리의 몸의 각 지체들이
고통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한 지붕밑에서 신앙생활하던
형제들의 손에 어느날 수갑이 채워지고
부모와 자식이 생이별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이제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의 문제, 나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힘을 모아 풀어가야 할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인들이 많이 찾는 인터넷 사이트에
얼마전 이런 글이 올라온 것을 봤습니다.
너무 너무 미운 사람이 있는데, 신분이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이민세관단속국에 어떻게 신고를 해야할지를 묻는
질문을 올린 것입니다.

교회가 서류 미비자들의 피난처가 되고
이민자 보호 교회로서 역할을 자처하지만
사실 성도들의 개인적인 신분상태가 노출되고 알려졌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예측할 수 없는
불미스런 문제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국토안보부가 범죄 피해자도  
불법체류신분일 경우
추방될 수 있다고 발표한 상황입니다.

어떻게 하면 신분이 노출된 서류미비 성도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을지,
더욱 섬세하고, 세밀한 돌봄의 기술과 지혜를
이민자 보호교회는 연구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민자 보호교회의 역할은  
서류미비자의 임시 피난처에 머무는,
수동적인 대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이민법의 개정과 서류미비자 사면을 위한 법을
만드는 일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자의
생명을 살려준 것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길을 떠나면서 여관주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사마리아인이 진짜 이웃이 된 이유는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겠다는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진짜 사랑은 단순히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는 태도라고 믿습니다.
돌보아 주되, 마지막까지, 끝까지 책임을 가지고
돌보는 일이 사랑입니다.

연민이나, 동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지는 일, 그것이 이민자 보호교회가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영복 선생의 짧은 글 한편을 나누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입장의 동일함은 같은 처지가 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비를 맞고 있는 사람에게 우산을 씌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이 입장의 동일함입니다.

가진자의 입장에서 서류미비자를 돕는 일은
동정심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아닙니다.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감정의 간극이 존재하고
상하관계의 위계질서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한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더 깊이 헤아리고자 노력하고,
더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더 따뜻한 배려와 섬김으로
서류미비자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어루만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종은 목사 / <소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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