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916년, 그리고 2017년 부활절
기자수첩] 1916년, 그리고 2017년 부활절
  • 지유석
  • 승인 2017.04.1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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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3주년, 기억투쟁의 희생자들 기억해야

희생이 너무 오래면  
마음을 돌로 만드는 것  
언제 가야 희생이 족할 것인지? 
그건 하늘이 알아 할 일, 
우리가 할 일은 하나씩 이름을 부르는 것, 
마치 마구 뛰놀던 사지에 
결국 잠이 찾아왔을 때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듯이  
이게 일몰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니다, 아냐, 일몰이 아니고 죽음이야.  
결국에 가서는 필요 없는 죽음일까?   
....  

나는 시에 적네   
코널리와 피어스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 올 날에  
초록 옷이 입혀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변했어, 완전히 변했어.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이 탄생했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1916년 부활절>   

1916년 4월24일, 아일랜드의 부활절은 온통 핏빛이었다. 아일랜드 임시정부 대통령 패트릭 피어스(1879~1916)가 이끄는 700여 명의 아일랜드 혁명군은 부활절 날 수도 더블린 중앙우체국을 점령하고 일주일간 농성을 벌였다. 이때 피어스는 ‘아일랜드 독립선언’을 발표하는데, 이 선언은 부활절 선언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영국은 피어스의 농성을 가혹하게 진압했다. 피어스를 비롯한 15명의 지도부를 군법재판에 회부해 처형한 것이다. 

여기서 잠깐 아일랜드의 역사에 눈을 돌려보자. 아일랜드는 7세기 동안 영국의 압제에 신음했다. 아일랜드 민중들은 독립을 얻고자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시인 예이츠는 <1916년 부활절>을 통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독립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탄식한다. 이어 시구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독립 운동가들의 이름을 적으며 그들의 희생을 기억한다. 

시인의 노력 덕분일까? 1916년 부활절의 비극은 집단기억으로 되살아나 아일랜드 독립운동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이 탄생했다”(A terrible beauty is born)는 마지막 연은 다름 아닌 독립 투쟁에 대한 은유다. 그리고 마침내 1921년, 아일랜드는 런던 조약을 통해 비록 불완전하나마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얻게 된다.   

세월호 3주기와 겹친 2017년 부활절 

세월호가 인양되기 전인 2015년 4월 세월호 침몰지점 ⓒ 지유석

2017년 대한민국 부활절은 여러모로 1916년 아일랜드의 부활절과 닮은 꼴이다. 무엇보다 올해 부활절은 세월호 3주기과 겹친다. 부활절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박근혜씨는 파면 당했다. 박씨의 파면 이후 다섯 시간만에 세월호 인양작업이 시작됐고, 마침내 3월23일 세월호는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참으로 묘한 우연의 일치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기억투쟁이 벌어졌다. 세월호 참사 및 희생자를 기억하고, 진상을 규명하라는 쪽과 정권에 부담을 줄 것이란 두려움에 참사를 덮어버리려 했던 쪽과의 투쟁 말이다. 기억 투쟁의 선봉엔 세월호 유가족들이 섰다.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흠집 내기 위해 참으로 야비한 방법을 동원했다. 보상금 문제를 들고 나오는가 하면,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따위의 극우집단을 동원해 유가족들을 욕보였다. 

기독교계 역시 기억투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진도 지역 교회들은 가장 먼저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이들은 늦은 밤까지 팽목항을 지키며 구조소식을 애타게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 팽목항을 떠나기 시작했을 때도 이들은 자리를 지켰다. 한편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천막에서 상주하다시피 하며 세월호 유가족들을 돌본 그리스도인들도 많았다. 반면 성도수 많고, 힘 있는 교회들은 참사로 가족 잃은 유가족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보다 정권의 안위를 더 먼저 생각했다. 

부활절과 세월호 3주기를 동시에 맞는 2017년 4월16일, 이 같은 대립전선은 해소되지 않아 보인다. 이날 명성교회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합동·고신,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등 62개 교단이 참여한 가운데 부활절 연합예배가 열렸다. 

이날 부활절 연합예배엔 부활의 영광은 있었지만 세월호는 없었다. 사실 연합예배의 장소부터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연합예배가 열린 명성교회는 “하나님이 기회를 주기 위해 세월호를 침몰시켰다”는 망언을 한 김삼환 원로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인 ‘예은 엄마’ 박은희씨는 지난 6일 감리교신학대학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김 목사의 발언에 대해 “그 말은 정말 우리 유가족들이 3년 동안 들었던 말 가운데 최악이었다”는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같은 날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가 있는 안산에서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가 열렸다. 이날 예배에 설교를 맡은 맑은샘교회 홍보연 목사는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소외된 이들 멸시받는 이들,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게 아닌 죽음을 겪는 이들, 고통 속에 있는 이들과 함께함으로써 죽음의 땅이 부활의 땅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곳이 됩니다. 그렇게 예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됩니다.”

흔히 한국사회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한다. 한국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세월호를 기점으로 이 시대에 가장 고통 받는 이들을 보듬은 그리스도인과 정권만 바라본 삯꾼으로 말이다. 

세월호는 이제 완전히 물밖으로 나왔다. 뭍으로 오기까지 수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러나 여전히 9명의 생명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제 지금 우리가 할일은 무엇일까? 세월호의 기억을 지키고자 기꺼이 희생을 감수한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주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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