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 이스라엘의 고유한 의식?' 아니다.
'할례, 이스라엘의 고유한 의식?' 아니다.
  • 김동문
  • 승인 2017.04.17 21: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브라함의 할례의 의미 다시 읽기
"목수들도 할례를 받았다." 기원전 2355-2343년 사이, 고대 이집트 6왕조 테티(Teti)욍 치하의 고위 관료였던 앙크-마호르(Ankh-mahor)의 사까라 지역에서 발견된 무덤 벽화중

[미주뉴스앤조이=김동문 편집위원] 하나님의 말씀은 대화 상대자는 물론 그가 살고 있는 그 시대 한복판에서 이뤄지는 소통이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브라함은 이제 고대 나일 문명에 접촉하며 두 문명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두 문명의 교차점과 각축장이었던 곳이 가나안 땅이었다. 여전히 삶의 방식으로서 유목문명을 이어가지만, 이 거대한 정착문명 사이에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아브라함이 뜬금없이 할례를 받는다. 자신은 물론 자신의 모든 식솔들이 같이 할례를 받는다.

할례는 야곱의 후손들에게 소중한 것이었다. 야곱의 후손들은 ‘할례 받지 못한 자’, 즉 ‘무할례자’는 사람 취급도 안 했다. 그만큼 야곱의 후손들 즉 유대인들은 몸의 할례를 중시했다. 그래서 이들이 주류가 된 출애굽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하나의 신분 증표와도 같은 것으로 자리 잡았다. 야곱의 후손들은 할례를 아브라함과 관련하여 기원을 생각한다. 히브리 사람들의 고백에 따르면, 최초로 할례 받은 인물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도 할례는 오래된 전통이었다. 이집트 남자들도 할례받은 자였다. 출애굽한 백성들이 할례를 하지 않은 것은 이미 이집트에서 할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세가 미디안 광야 생활 중에 낳은 두 아들은 할례가 필요했다. 이집트로 가기 전에 두 아들의 할례 이야기가 나온다. 이집트에서는 심지어 여성들의 성기절제시술까지 하고 있었다. 할례는 아브라함의 자손들, 야곱의 후손들,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고유 의식이 아니었다.

할례는 고대 이집트 문명권에서는 일반적이었다. 기원전 1200년경, 가나안 왕 앞에 끌려온 셈족(아시아계) 포로들의 모습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미깃도 유적지에서 발견된 상이 조각상 중에서

1. 고대 이집트의 할례

그러나 할례는 이스라엘 민족만의 고유한 것도, 이스라엘로부터 시작된 것도 아니다. 할례는 이미 이집트 문명권에서는 익숙한 것이었다. 고대 이집트를 비롯한 오늘날의 시리아, 레바논에 이르는 지역에서도 시행되던 것이었다. 에돔, 암몬, 모압 족속들도 할례를 받았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이 아시리아와 바벨론 사람들은 물론, 블레셋 문명에는 할례가 없었다.

고대 이집트의 경우는 기록에 나타난 할례 의식은 아브라함 시기 이전인 4,500여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청동기나 철기가 사용되지 않고 돌칼(부싯돌 등을 이용한)을 사용하였다. 할례 의식은 다산의 여신에게 드려지는 의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의 고대 벽화와 신전 벽 기록물에 등장하는 고대 이집트 남성들은 할례를 받은 상태로 등장한다. 할례를 행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벽화도 있다. 기원전 2355-2343년 사이에 기록된 고대 이집트 6왕조 테티(Teti)욍 치하의 고위 관료였던 앙크-마호르(Ankh-mahor)의 사까라 지역에서 발견된 무덤 벽화는 고대 이집트에서 역사상 오래된 할례 관련 기록이다. 이 벽화에는 제사장이 시술을 시행하고 정부 관리가 그 과정을 돕고 있다. “그를 빨라 잡으시오, 기절하지 않도록 하시오.“, 지시하신 대로 하겠습니다.”로 적혀 있다. 직접 돌칼로 마취도 없이 생살을 베어내는 할례가 주는 고통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준다.

"기절하지 않게 꼭 잡아요" 기원전 2355-2343년 사이, 고대 이집트 6왕조 테티(Teti)욍 치하의 고위 관료였던 앙크-마호르(Ankh-mahor)의 사까라 지역에서 발견된 무덤 벽화중 제사장이 할례를 시술하는 장면

이집트 중부 Naga-ed-Deir에서 발견한 기원전 2,400년경의 유하(Uha) 비문(Stelae) 에 따르면, 동시에 남자 120명과 여자 120명이 한꺼번에 할례를 받았다고 적고 있다. “내가 120명과 함께 할례를 받았을 때, 아무도 까무러치지 않았고, 아무도 까무러쳤던 이가 없었고, 아무도 흠이 나지 않았고, 아무도 흠이 났던 이가 없었다.”

당시에 할례가 개인이나 가정에서 빚어지는 것이 아닌 사회적인 통과의례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할례는 태어날 때 시행되는 시술이 아닌 성년식으로 치러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고대 이집트 남성들의 의무적인 의식은 아니었고, 하류층에서는 일반화되지 않았다는 일부 학자들의 의견도 있다. 그렇지만, 고대 이집트의 벽화나 미라 연구를 통해 할례가 모든 이집트 남자들에게 행해졌다는 해석이 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 

2. 할례, 창조, 죽음, 승리의 의미

고대 이집트에서 남성 성기 절단의 의미로서 할례는 창조, 죽음과 승리를 뜻했다. 간략하게 이 세 가지를 살펴보자.

고대 이집트인들의 의식에 담긴 할례와 창조의 관계는 단순해 보인다. 고대 이집트에는 아몬 민(Amun Min) 신으로 대표되는 생식의 남신이 있었다. 고대 이집트 창조 신화에 따르면 태초의 신 태양 신 Re의 할례에서 나온 피가 Hu외 Sia 신을 만들고, 이들과 함께 우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남성의 할례와 그 결과로 만들어진 피 흘림이 나일 강의 다산과 능력이었다고 생각했다. 이런 맥락에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그 창조를 이어가는 한 방식이 이집트 남자들에 대한 할례였다.

또한 할례는 죽음과 승리를 담고 있다. 이 할례 의식을 집도하는 이들은 장례담당 제사장들이었다는 점이다. 할례를 장례 담당 제사장들이 시행한 것은 왜일까? 할례시술의 안전성은 얼마나 확보될 수 있었을까? 과다 출혈과 감염 등으로 사망한 이들은 얼마나 되었을까? 고대 이집트에서 할례를 받는 것은 어떤 면에서 죽는 행위였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할례가 죽음과 다시 살아남의 의식이 형성될 여지가 있지는 않았을까?

할례에 연결된 고대 이집트인의 독특한 의식이 또 하나 있다. 고대 이집트 군인들은 적군의 손을 잘라서 신전에 제물도 바쳤다. 그런데 할례받지 못한 적군의 경우는 남성의 성기를 절단하여 신전에 제물로 바친 것이다. 이집트 남부 룩소 서편에 이집트 신왕국 20왕조 람세스 3세(Usimare Ramesses III, 1186–1155 BC)가 세운 메디나트 하부(Mendinat Habu) 신전 벽화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전쟁에서 죽은 적군 병사의 손과 할례받지 못한 전사자의 남성 성기 무더기를 계수하고 있다. 이집트 남부 룩소 서편에 이집트 신왕국 20왕조 람세스 3세(Usimare Ramesses III, 1186–1155 BC)가 세운 메디나트 하부(Mendinat Habu) 신전 벽화 중

3. 아브라함의 할례

이렇듯 할례는 아브라함이 처음 시작한 것도 하나님이 새롭게 창안하신 의식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아브라함의 자손들의 할례 의식의 고유성과 독특성은 없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같은 행위를 하더라도 그 이유와 동기에 따라 판이한 평가와 의미로 자리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17장의 할례 언약을 짚어보자.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창세기 17:7-14)

그렇다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왜 할례를 하라고 했을까?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할례 의식은 이집트 문명권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첫 번째, 할례 언약은 나이와 인종을 추월하여 동시에 벌어진 것이고, 후손들의 경우는 태어난 지 8일에 할례를 시행하도록 한 것이다. 어떤 의미와 의도가 담긴 것일까?

아브라함이나 그 식솔들의 대부분은 고대 이집트 문명권 밖에서 온 이들이다. 이들 모두에게 메소포타미아 문명 밖의 새로운 관습을 따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패러다임의 전환 그 이상이었다. 몸에 새기는 할례는 목숨을 내건 고통스런 의식이기도 했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 식솔이 한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는 자녀의 흔적이었다. 생명을 안겨주는 존재가 이집트의 태양신(레)도 다산과 정력의 신(민)도 아닌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또한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치르는 것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창조 또는 창조의 보존 행위였다. 메소포타미아 세계관에 익숙했던 아브라함에게 8일째 되는 날은 새로운 한 주간의 시작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는 날, 새로운 첫째 날이었다. 그날 새롭게 언약백성이 되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4. 마음의 할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미 널리 퍼져 있던 할례 의식에 전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그 의식을 행하도록 명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홍수 이전에도 있었던 무지개를 매개로 무지개 언약을 맺으신 것처럼 있는 것을 토대로 새로운 언약으로 이끄시기도 하신다.

아브라함의 할례의식을 통해 엿 볼 수 있는 몇 가지 교훈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 가치관은 여타 세계관과 문명, 종교와 단절된 것이 아니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나일 문명 등 주요한 문명과 영향을 주고받았다.

배제나 혐오, 분리와 단절이 아닌 ‘구별로서의 거룩’이었다. 새로운 형식과 새로 시작한 것만이 창조적인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다양한 세계, 가치관과 소통하며 그 가운데서 다름을 만들어내고 이어가는 것이 하나님나라를 추구하는 삶인 것 같다. 하나님나라를 산다는 것은 현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본질과 다름을 회복하고 창조해가는 삶이다. 어쩌면 한국교회는 손 할례도 마음의 할레도 없는 우리들만의 세계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