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의심으로 함께하는 선교 품기
합리적 의심으로 함께하는 선교 품기
  • 김동문
  • 승인 2017.04.18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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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신뢰하기 위해 배우고 질문하라

개인 또는 교회 안팎의 공동체에서 선교 정보를 갖고 기도를 한다. 그런데 그 기도 정보는 누가 작성한 것일까? 누구의 도움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일까? 그 기도 정보는 현재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때때로 이런 저런 궁금함을 갖곤 한다.
선교 현장은 변하고 있다. 선교지 사람이 변하고 선교지 환경이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현지에서 전해주는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현장에서 만난 한국인들의 이야기들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믿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른 현장 이해를 위하여“ 과연 그러한가” 되짚어보는 수고가 필요하다. 정보를 보다 객관화시키고 올바른 정보를 공유하기 위하여 절대적으로 넘어가야할 과정이다. 그동안 절대화하던 것에 대하여 뒤집어보기를 시도하는 것은 정보를 정보답게 만들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선교정보를 두고 차분한 판단을 위한 그 몇 가지 관점을 나눠본다.

1)“ 정말 그런가요?”‘ 과연 그럴까요?’라는 질문을 멈추지 말라. 이것이 없이는 혹여나 있을 선교정보의 과대포장이나 선교사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는 본의 아닌 거품 보고에 현혹당할 수 있다. 그러다보면 사람에 대한 신뢰와 그가 전달하는 내용 자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따라잡기는 별개의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을 분별하는 판단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이 기본적인 자세를 가지고 선교 정보를 마주하여야 한다.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이 고민을 펼쳐가야 한다‘. 합리적 의심’은 진실을 알기 위한, 더 잘 믿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신뢰나 추종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2)“ 근거 자료가 있나요?” 선교사나 단체의 신념 섞인 주장에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한다. 신념 또는 심증이 아니라 물증 확인이 중요하다. 이슬람세계와 무슬림을 향한 문명 간의 충돌을 조장하는 듯한 발언들에 유의하라. 마치 모든 무슬림들이 일치단결하여 서구와 기독교를 대적하고 한국을 이슬람화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면 더욱 그 근거를 요구하라. 이런 질문에 어떤 답을 하더라도 재차 물어야 한다. 그런 답변의 근거는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근거는 누가 말했다, 어디서 들었다는 식이 되 어서는 안된다. 1차 자료까지 다가서야 한다. 그리고 그 1차 자료 자체도 객관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3)“ 입장 바꿔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나’라면‘, 한국교회’라면, ‘우리나라’였다면 어떠했을까? 이것은 객관적인 판단을 위한 중요한 도구이다. 선교지 상황을, 무슬림을 특별한 시각으로만 보는 것은 문제이다. 우리가 겪은 역사나 우리의 정서를 통해서도 이슬람 세계와 무슬림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최소한 쉽게 단정짓거나 규정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틀’은 제공받을 수 있다. 모든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소위‘ 종교적’이지 않은 것처럼 선교지 사람들도 동일하다. 그들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들임을 기억하라. 기독교 세계는 완전하고, 건강하며 기독교인들은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보다 더 낫다고 쉽게 말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라.

4)“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시대도, 사람도 변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질문도 중요하다. 선교 정보는 현장성도 중요하지만 시의성도 중요하다. 묵은 정보가 새로운 상황에 힘을 쓸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시리아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그 시리아는 5년 전과 지금, 그리고 10년 전이 달랐다. 물론 수십 년 전은 더욱 달랐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도 지역마다, 관계자에 따라 다른 평가가 가능하다. 이른바 과거 역사는 변한 것이 없지만 사람을 둘러싼 환경은 계속 변하고 있다. 전략은 과거로 쏘아 올리는 미사일일 수 없다. 내가 현장에서 보니 … 내가 가서 보았더니 …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때‘ 언제’였는지, 어디였는지, 누구였는지를 확인하고, ‘지금’에 주목하라.

5)“ 다른 단체, 다른 사역자들이 맡으면 안 됩니까?” 특정 단체만이, 자기만이 유일한 사역주체인 것처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렇게 반문하라. 다른 단체나 다른 나라 선교사들은 어떻게 사역하고 있는지를 물으라. 선교는 함께 이뤄가는 것 일뿐 고립되고 신앙의 이름으로 왜곡된 민족주의나 선교단체 지상주의는 아니다. 해당 단체나 선교사의 사역에 대해 다른 당사자들, 현지인들의 냉정한 평가를 들었는지 물어보라.

필자는 현장에서 다양한 단기 팀들을 만나면서 고집하던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그것은 단기 팀들에게 본인이 소속된 단체만을 강조하거나 보여주지 않았다. 단기팀들이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도록 도와야 했다. 외국 선교사들, 한국인 선교사들, 현지 기독교 지도자들, 현지 지도자들 …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현장과 방문지의 사람들을 보다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다. 판단은 방문자가 하여야할 몫이었다. 하나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이유만으로 접촉하고 접근할 정보나 대상을 사전에 통제하거나 줄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선교지에 오래 살았다하여도 어떤 면에서 변화의 흐름에 무관하게 과거에 살 수 있다. 정보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만들어가는 삶의 정황에 관련한 종합 보고서이다. 변화하는 삶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통해서 이뤄지는 정보들이 현장 사역자들을 통해 공유될 때 
정보는 생명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현지발 외신종합이나 외신인용이 현장성을 빙자하여 사실을 왜곡시키듯이 우리에게도 비슷한 경향이 답습된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차분한 분별력이 필요하다. 이런 번거롭기 그지없는 ‘합리적 의심’과 ‘질문’은, 다른 민족이나 다른 신앙을 가진 이들, 이슬람 세계에 살고 있는 이들과 무슬림들을 잘 섬기기 위한 기본적인 수고인 것이다.

김동문(선교사),편집위원 / <미주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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