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바쳐야 복 받는 건 무당 종교
돈 바쳐야 복 받는 건 무당 종교
  • 신성남
  • 승인 2017.04.22 05: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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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장사에 속지 말자

수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복권을 많이 사지 않는다. 그 당첨 가능성이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보다도 훨씬 작기 때문이다. 설사 한번에 10장을 사더라도 수치적으로 보면 아예 비교조차 안 된다. 그럼에도 그냥 재미로 한두 장 사는 거야 크게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만일 누가 투자 목적으로 꼭 1등에 당첨되기 위해 매주 거액을 들여 복권을 산다면 그건 대단히 멍청한 바보짓이다.

왜냐하면 매주 특정 복권을 판매할 때마다 전체 판매액의 약 30%-50%는 복권 회사의 수익이나 세금으로 지불되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환수율이 고작 70%도 안 된다.     

'슬롯머신'은 카지노에서 가장 인기있는 게임 중 하나다. 딜러의 도움 없이 간단히 조작할 수 있어 특히 초보자들에게 인기다. 슬롯머신의 환수율은 대략 80%-95% 정도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100만 원을 가지고 게임을 했다면 80만 원에서 95만 원을 다시 돌려 받는다. 일반적으로 90% 정도의 환수율이라고 보면 나머지 10%는 카지노회사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슬롯머신을 10회 반복했다고 가정하면 최종 환수율은 0.9의 10승이 되어 평균적으로 약 35%의 돈만 남는다. 그리고 20회를 반복하면 단지 12%의 원금만 남게 된다. 즉 100만 원을 모두 걸고 슬롯머신을 20회 정도 한다면 결국은 12만 원으로 줄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수익을 목적으로 복권이나 도박을 하는 건 매우 어리석은 행위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더 빨리 망하게 된다.

흔히 어떤 목회자들은 구약 성경을 인용하며 "십일조 잘하면 현세에서도 복을 받는다"는 주장을 많이 한다. 신대원 원장까지 지낸 교수마저 그런 설교를 하며 돌아다닌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지 다른 글에서 많이 언급했기에 여기서는 그런 시대착오적인 중세 교회의 신학 논쟁은 일단 생략하고 다만 보다 실제적인 논의를 조금 더 해보고자 한다.   

십일조를 내는 목적이 순수하게 이웃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라면 굳이 그건 말릴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그 고상한 사랑을 조금도 폄훼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거짓된 가르침에 속아서 부와 만수무강을 누리기 위해 '무속적으로' 십일조를 바친다면 그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이건 마치 도박에서 매번 자기 수입의 10%를 투자해서 목돈을 노리는 것과 유사한 행태다. 큰 수익을 기대하며 매달 전체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치는 건 마치 환수율 90%의 슬롯머신을 매달 돌리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물론 목사님의 말씀을 따라 십일조를 잘 바쳐서 큰 부자가 된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십일조를 전혀 안 바쳐도 거부가 된 더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하려고 하나. 나는 교회에서 "십일조를 많이 바쳤어도 망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십일조를 열심히 바친 교인 중에도 쫄딱 망하거나 아프거나 가난한 사람이 아주 많다. 십일조 선수인 대형 교회의 유명 목사님들 중에도 암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

만일 일부 목사들의 주장처럼 구약의 십일조 공식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면 이럴 수가 없지 않나.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십일조 교인은 거의 다 부자가 되어야 정상이다. 허나 현실은 크게 다르다. 부자가 못 된 십일조 교인이 훨씬 더 많다. 더구나 십일조는 커녕 온갖 잡신을 두루두루 섬기는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더 잘사는 건 또 어찌 설명할 것인가.

이건 비단 십일조 뿐만이 아니다. 모 백화점에서 입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주일성수' 못 한다고 퇴짜를 놓을 만큼 철저히 주일을 지키며 장사하여 엄청나게 복을 받았다는 망원동 떡집 5부자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성공 사례만 널리 선전한다.

주일성수를 하는 마음과 자세 그 자체가 복이지 주일성수로 복을 받는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주일성수 열심히 해도 망하거나 실패한 사람이 많고 오히려 주일성수 안 한 사람들 중에 부자가 더 많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하는 마음과 삶 그 자체가 복이지 십일조의 댓가로 육신적 복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십일조는 현세적 복을 받게 해주는 도깨비 방망이같은 도구가 결코 아니다. 도리어 십일조를 바치면 경제적으론 반드시 그만큼 손실이다. 반드시 그만큼 희생이 따른다. 그건 10%를 투자하면 그냥 국물도 못 건지고 10%를 몽땅 다 주는 거다. 그리고 사실은 그렇게 자신의 소유 일부를 '이웃에게 거저 주는 게'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복이다.

기독교 진리는 무엇을 바쳐서 그 대가로 복을 받는 무속 신앙이 아니다. 돈 놓고 돈 먹는 식으로 하나를 걸고 대박을 노리는 도박이 아니다. 뭘 바치고 정성이나 공덕을 쌓아 복을 많이 받으라는 건 무당 종교의 가르침이다. 그런 건 무속적인 맹신도들의 주머니나 긁을 때 쓰는 잡술이다.

병고침은 물론 생명의 구원도 값없이 주신 예수가 무슨 물질을 우리에게 더 원하실까. 예수는 이 땅에 계실 때 단 한번도 돈을 걷으신 적이 없다. 예수의 사역은 오직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교회들은 받는 일에 너무 열심을 내고 있다. 왜 틈만 나면 부패한 세리처럼 만날 바치라고 목청 높이며 극성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기독교의 연보 정신은 "하나를 바치고 열이나 백을 얻겠다"는 기복적 미신 따위가 아니다. 한국 개신교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을 너무 탐하다가 이 모양 이 꼬락서니가 되었다는 걸 왜 모르는가.

예수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20:35)"고 하셨다.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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