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충격적인 성경속 풍자와 해학
알고 보면 충격적인 성경속 풍자와 해학
  • 김동문
  • 승인 2017.04.28 22: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경은 시대 공감의 언어로 가득했다

풍자와 해학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숨통을 트이게 하곤 한다. 요즘은 사이다 같다고도 말하는 그것이다. 성경에도 별다른 느낌 없는 표현으로 보이는 그것이 허를 찌르는 표현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가운데 구약과 신약에서 익숙한 이야기 세 가지를 짚어 본다.

1084년경 로마네스코 방식으로 상아로 새긴 가인과 아벨 이야기. 이탈리아의 살레모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었다. 지금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 가인에게 내려진 형벌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물론 이집트 나일 문명권에서도 도시 정착 농경 문화가 우선시되었다. 광야 유목 목축 문명과 유목민에 대한 무시와 배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유목생활하는 아벨을 죽인 정착 농경민 가인에게 내려진 형벌은 독특하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세기 4:11, 12)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는 유목민, 목축하는 이를 떠올리게 한다. 농경 도시 정착민들에게 목축하는 유목민은 ‘오랑케’ 같은 존재였다. 가인이 받은 형벌은, 가인이 싫어하던(?) 유목민이 되어 사는 삶 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유목민, 목축하는 자가 되는 형벌을 내리신 것이다.

노동자를 착취하던 고용주에게 그 회사 인턴으로 살게 하는 처벌을 내린 것 같은 그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달 여신의 땅으로 불리기도 했다. 난나(Nanna) 또는 신(Sin)으로 불리던 달 여신.

2. 해 뜨는 곳, 해 지는 곳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하루를 해가 질 때부터 그 다음날 해질 무렵까지로 계산했다. 밤이 되고 아침이 되(고 다시 밤이 되)는 것을 하루로 계산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달 신을 으뜸신으로 섬겼다. 그는 모든 존재하는 것의 근원이고 유지시켜주는 생명줄이었다. 그런데 성경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해 뜨는 곳’으로 불렀다. 즉 달이 뜨지 않는, 새 날이 시작되지 않는 곳으로 풍자했다. 메소포타미아의 존재감도 달 신의 위엄도 사라지는 것이다. 메소포타미아도 달 신도 아예 존재감 없다는 식이었다.

고대 이집트는 해가 떠서 다시 그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를 하루로 계산했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고 다시 아침이 되)는 것을 하루로 계산했다. 고대 이집트는 태양신을 으뜸신으로 섬겼다. 그런데 성경은 이집트 나일 지역을 ‘해지는 곳’으로 불렀다. 즉 해가 뜨지 않는, 새 날이 시작되지 않는 곳으로 풍자했다. 그러면 이집트의 존재감도 태양신의 위엄도 사라지는 것이다. 이집트도 태양신도 아예 의미 없다는 식이었다.

해수욕 피서인파를 기대하는 이를 향해, 여름 내내 비가 내리는 곳이 되는 축복(?)을 기원하는 것 같은 그것이다.

연자맷돌, 작게는 300톤 크게는 1톤에 이른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에게 연자맷돌을 돌리게했다.

3. 연자 맷돌 목에 걸고

우리들은 교회 생활을 하면서 ‘나 오늘 설교 듣다가 실족했어’ 하는 식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아마도 아래와 같은 성경 말씀에 대한 익숙함 덕분인 것 같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태복음 18:6)

그런데 이 말씀이 뜻하던 그 현장 분위기는 어떤 것이었을까? 연자 맷돌의 무게가 300킬로그램이 넘고 1톤까지 되었다는 것을 먼저 떠올려보라. 그것을 목에 매어 갈릴리 호수에 빠지면, 다시 살아날 방법이 없다. 게다가 다른 이들이 그 사람을 건져낼 방법도 없다. 유대인들은 당일 해지기 전에 장례를 치러야 했다. 그렇게 못하는 경우는 죽은 자에게 불명예라고 생각했다.

저런 놈은 300킬로그램에서 1톤 정도 되는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갈릴리 호수에 빠져죽는 것이 그나마 착한 형벌이라고 한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일까? 작은 자를 곤경에 빠뜨리는 작은 자들과 큰 자들이 적지 않은 일상을 살아간다. 실족하며 실족케 하며.. 이 메시지를 다시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