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자유당과 홍준표의 잘못된 만남
기독자유당과 홍준표의 잘못된 만남
  • 지유석
  • 승인 2017.05.03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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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기독교’ 주장의 오류, 그리고 예수 없는 기독자유당

“기독자유당, 범 기독교계는 홍준표 지지를 선언합니다.”

지난 1일 보수 개신교계 정당인 기독자유당이 자유한국당 홍준표 지지를 선언하면서 내세운 슬로건이다. 기독자유당의 홍 후보 지지도 그렇지만, 지지선언 시에 ‘범 기독교계’란 표현을 쓰면서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먼저 ‘범’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부터 짚어보자. 범이란 말은 영어로 ‘Pan’, 즉 모든 방면에 두루 걸쳐 있다는 의미다. 태평양 일대를 ‘Pan Pacific’, 만물에 신적 기운이 스며 있다는 범신론을 ‘Pantheism’이라 한다. 따라서 ’범’이란 수식어는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 중간에 이질적 요소가 섞여 있으면 범이란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자유당의 슬로건은 그래서 잘못됐다. 기독자유당은 초청단체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한국교회연합(한교연), 한국교회장로총연합회(한장총) 등을 적시했다. 이들 단체들은 보수 기독교계 연합체다. ‘범 기독교계’라 한다면 보수, 진보를 아우러야 할텐데 이미 진보는 배제됐다. 물론 그리스도교를 보수, 진보로 나누는 게 적절하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계가 진영 논리로 분열돼 있으니 현실을 인정하자. 

더구나 한기총, 한교연 등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며 발을 빼는 모양새다. 한기총은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고, 한교연은 한 발 더 나아가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이 본회 이름이 거명된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청어람 아카데미 양희송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기독자유당의 범 기독교계 주장을 반박했다. ⓒ 페이스북 동영상 갈무리

현실적으로 보아도 기독자유당의 슬로건은 문제가 있다. 개신교 시민단체인 청어람 아카데미 양희송 대표는 자신이 운영하는 페이스북에 기독자유당의 성명을 반박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양 대표는 이 동영상에서 “지난 총선에서 기독자유당이 얻은 표는 62만표 정도다. 이들의 주장대로 1200만 성도에 대입하면 5%에 그친다”고 풀이했다. 그러면서 “95%의 기독교인들은 이들(기독자유당)을 찍지 않았다. 기독자유당은 한국 개신교에게 버림받은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동성애·이슬람·차별금지법 반대가 기독교? 

그렇다면 기독자유당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범기독교 운운했을까? 지난 1일 기자는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와 전화통화를 했다. 전 목사는 기독자유당 후원회장을 맡는 등 당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전 목사는 범 기독교를 내세운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찌 1200만 성도에게 다 물어볼 수 있나? 한기총을 비롯한 대표기구와 교계 원로들의 의견을 모아 (홍준표 후보) 지지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범 기독교’란 슬로건의 오류에 있지 않다. 기독자유당이 홍 후보 지지 입장을 밝히면서 내세운 기준은 동성애·이슬람·차별금지법 반대다. 즉, 대선 후보 가운데 홍 후보가 자신들의 기준에 가장 잘 부합한다는 말이다. 전 목사도 이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한 번 따져보자. 교회의 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동성애·이슬람·차별금지법 반대였던가? 복음서 어디에도 예수께서 이슬람의 확산에 맞섰다거나, 한국 교회처럼 성소수자들을 가혹하게 대했다거나 차별금지법 반대에 앞장섰다는 기록은 없다. 그보다 예수께서는 오히려 부도덕한 권력에 맞서는 한편, 상처 받은 이들을 보듬으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기독자유당의 기준은 일정 수준 반그리스도적이다. 이 정당이 지지를 선언한 홍 후보의 행적은 더욱 가관이다. 홍 후보는 유세 과정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이영훈 목사, 은혜와진리교회 조용목 목사 등을 차례로 만나 지지를 호소했다. 뿐만 아니라 한교연을 찾아간 자리에서는 “절반 정도 선거운동을 했는데 목사님들이 좀 나서주시면 판을 한 번 뒤집을 수 있을 것 같다”고까지 했다. 결국 모양새는 홍 후보의 러브콜에 기독자유당이 화답하는 꼴이 됐다. 

둘의 결합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각은 곱지 않다. 온화한 인품과 해박한 지식, 깊은 영성을 갖춘 어느 국문학자는 기독자유당의 홍 후보 지지선언 소식이 전해지자 자신의 SNS에 이렇게 적었다. 

평소 온화한 인품으로 주위를 편안하게 했던 한 국문학자는 기독자유당의 홍 후보 지지에 격분한 듯 자신의 SNS에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 페이스북 갈무리

“오늘, ○○ 목사 전광훈과 돼지발정제 홍준표가 만난다. 예수가 탄식할 개독교와 저질가득 지랄파의 막말 배틀, 단어만 봐도 드럽게 저렴하다.”

명예훼손이 예상돼 글 내용 중 일부는 ○○으로 처리했다. 전 목사는 자신을 ○○ 목사라고 적시한 네티즌들을 향해 전방위적으로 고소고발을 해왔기 때문이다. 

온화한 인품으로 주위를 늘 편안하게 해주신 분이었기에 이 글을 보는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국문학자의 지적대로 기독자유당과 홍 후보의 합작은 저렴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각 교회 단체 대화방(일명 카톡방)은 홍 후보 지지를 독려하는 메시지들이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 그 메시지 내용 중 일부다. 

몇몇 교회 단체 카톡방에서는 홍준표 후보 지지를 독려하는 메시지가 유포되고 있다. ⓒ 독자제공

“홍준표 이어야만 하는 이유 1. 동성애 반대, 차별금지법 반대 2. 종북/전교조/강성노조 척결 약속 3. 검찰/헌재/언론 개혁 약속 4. 김정은 제압 약속 5. 640만불, 바다이야기 노무현 뇌물 재수사 약속 6. 불법 탄핵 재수사 약속”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가? 평생 가난했고, 부도덕한 권력에 맞섰으며, 가난하고 억눌린 자, 사회로부터 소외된 약자를 돌본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아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홍 후보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았을까? 그의 이력을 보건데 그리스도와는 거리가 먼 듯 보인다. 이런 정치인을 기독교계 정당이, 그것도 대다수 그리스도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정당이 지지하고 나선 건 한국 개신교의 비극이다.

기독자유당의 홍 후보 지지는 개신교가 한국 현대사에 남긴 또 하나의 흑역사로 기록에 남겨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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