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제왕적 리더십, 이제 내려놓으라
목회자의 제왕적 리더십, 이제 내려놓으라
  • 지유석
  • 승인 2017.05.23 16:2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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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문 대통령의 탈권위 리더십, 교회 본받기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탈권위와 소통의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지난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희생자 유족을 안아주는 모습. ⓒ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 가운데 두드러진 특징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탈권위’와 ‘소통’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 두 가지를 분명히 약속했다. 

“우선 권위적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참모들과 머리와 어깨를 맞대고 토론하겠습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당장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취임사 대로 와이셔츠 차림으로 참모들과 청와대를 거니는 장면을 공개하는 한편, 가는 곳마다 일반 시민과 살갑게 대화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장관, 청와대 참모를 고를 땐 본인이 직접 기자들 앞에 나서 인선 배경을 설명하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다. 지난 18일 있었던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희생자 유가족을 포옹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보수정권 집권 기간 대통령이 ‘행차’하면 일군의 경호요원들이 먼저 ‘분위기’를 잡는 장면에 익숙한 국민들에겐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다. JTBC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는 문 대통령의 리더십이 ‘소통의 달인’이란 찬사를 받았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닮은 꼴이라고 전했다. 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는 순간까지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문 대통령은 한국 헌정사에 의미 있는 이정표를 남긴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권력은 스미는 속성이 있다. 무슨 말이냐면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의 성향이 사회 전반에 퍼진다는 말이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유난히 의전에 집착했다. 의전은 권위주의의 산물이다. 이런 탓에 공직사회는 물론 사회 전반에까지 고압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행정고시를 통과한 고위공직자가 ‘민중은 개, 돼지’라는 발언을 서슴없이 한 것도 사회 공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 문 대통령은 탈권위에 본격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대통령의 성향이 벌써 공직사회에 스며든 것일까? 관공서를 찾는 공무원들이 시민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는 전언이다. 사회 전반에서도 탈권위와 소통을 중시하는 경향은 곧 대세로 떠오르리라고 본다. 

이 지점에서 교회를 돌아보게 된다. 교회는 탈권위의 무풍지대나 다름 없다. 이름난 대형교회 신도들이 담임목회자를 만나기는 고위 공직자 만나기보다 더 힘들다. 소규모 교회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다. 담임 목사들이 성도들과 소탈하게 어울리는 광경은 언론에 대서특필될만 하다. 그만큼 드물다는 말이다. 

한국교회, 탈권위의 무풍지대로 남을 것인가 

소통의 문제에 이르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교회의 크기와 상관 없이 목회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이다. 그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만에 하나 목사의 설교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목회방식을 비판하면 엄청난 후폭풍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탐욕에 눈먼 목사들은 강단에서 자신의 사욕추구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왜곡한다. 신도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거부감이 꿈틀거려도 순종해야 한다. 

담임목사-장로-권사-집사로 이어지는 교회의 위계질서는 성도들을 다시 한 번 질식시킨다. 교회에 따라선 권사, 집사 직분자들끼리도 안수 연차에 따라 위계질서가 형성된다. 모든 교회가 다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리더십이 폐쇄적이고, 목사가 제왕적 권위를 휘두르고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비단 기자만 한국교회의 불통을 우려하지 않는 것 같다. 여성신학자인 강호숙 박사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교회의 폐쇄적 리더십을 질타하는 글을 올렸다. 강 박사의 양해를 구해 전문을 옮겨 본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권위적이고 소탈한 리더십을 보면서, 무겁게 눌려있던 압박과 부자유함으로부터 벗어나는 청량감을 맛본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미치는 신선한 영향력은 비로소 살맛나게 하는 희망스런 일이 마구마구 도래할 것 같게 만든다.

그러다가 일부 한국교회 목사들의 제왕적 리더십에로 관심이 돌려진다. 목사들이야말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섬김의 리더십으로 본을 보여야 할 자들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통과 위계적 리더십은 인간을 도구화할 뿐이다. 새로이 출범한 문재인 대통령 정부의 '겸손한 권력'의 리더십은 기득권자들을 부끄럽게 할 것이다. 위르겐 몰트만은 인간의 진정한 구원과 해방은 '열린 공동체'라고 했다. 교회는 평등과 정의, 자유와 소통을 추구하는 열린 공동체를 지향하도록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구약의 예언자들과 예수 그리스도는 한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는 오히려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양상이다. 지난 해 말과 올해 한국사회에 큰 변화의 물결이 일었지만 이른바 ‘주류’ 보수교회는 수구반동 세력의 편에 선 것이 대표적이다. 이제 교회더러 사회에 미래 비전을 제시해 달라는 식의 버거운 요구는 하지 않겠다. 다만 사회 흐름에 맞춰 권위주의적인 리더십만큼은 내려놓을 것을 주문하고 싶다. 

사실 목사가 성도들 위에서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지 않은가? 이웃 종교인 가톨릭의 최고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도 몸소 권위를 내려놓지 않았던가? 신학적 우위를 주장하는 개신교가 왜 가톨릭에도 뒤쳐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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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 성애자들 2017-05-25 21:06:05
권위와 권위주의는 다른거라는 케케묵은 소리를 지금도 즐겨하는 사람들이
목사들 입니다.
그저 말씀사역자 정도로 자신의 신분을 낮추고 말씀으로 성도들을 섬긴다는
인간은 본적이 없고 내가 너희 머리 위에서 가르치는 사람이라 여기며
성도를 무지몽매한 백성으로 알고 우민화 시키며 조롱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게 먹히니 백성은 개돼지 소리를 들어도 할말이 없습니다.

왜이러지? 2017-05-24 11:17:55
그러게나 말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권위를 내려놓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