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교회가서 잔소리 설교 들으실래요
딱딱한 교회가서 잔소리 설교 들으실래요
  • 정영민
  • 승인 2017.06.12 0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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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같은 스타벅스가서 커피한 잔 하실래요

행복하고 여유로운30대 중반의 백인 여성, 제니퍼는 자신의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인 캐딜락 에스컬레이터에다 6학년인 큰 딸 죠앤과 2학년 막내 아들 마이클을 태워 학교로 향합니다. Bye, Mom! Have a good day! 아이들과 인사를 한 제니퍼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네 스타벅스로 향합니다. 제니퍼는 늘 하던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주문합니다. Grande size Caramel Frappuccino Blended Coffee with whipped cream…커피를 들고 가죽 소파에 앉은 제니퍼는 자신의 아이패드를 열고 페이스북을 첵업하고 타임지 인터넷판을 열고 기사를 봅니다. 이곳 스타벅스는 제니퍼에게 “제 3의 장소” 즉 집이나 직장에 대한 염려를 잊고 편히 쉴 수 있는 비공식적인 공공 장소입니다. 이곳은 사회적인 논란과 갈등이 없는 중립지대와 같은 곳입니다. 제니퍼처럼 이 아침에 스타벅스에 모인 고객들은 누구하나 더 특별하거나 높은 지위를 내세우지 않는 동등한 행복한 고객들입니다. 한 동네 사는 앤디엄마를 만나 대화 할 수 있는 즐거운 공간이며 내 집처럼 편안함이 있는 곳입니다. 이 곳에는 주문하지 않고 오래동안 앉아 있어도 누구하나 눈치를 주거나 다른 고객을 위해 자리를 비켜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곳입니다.

스타벅스는 추수감사절이며 펌프킨 스파이씨 커피를 성탄절이면 진저 라떼같은 새로운 커피를 경험(Experience)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일반 커피점과는 다른 용어로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커피를 조합해서 주문해도 파트너라 불리우는 직원이 잘 알아듣고 만들어주는 흥미로운 참여(Participation)가 가능한 곳입니다. 커피 테이블은 물론 책상같은 테이블, 소파가 잘 배치된 스타벅스의 벽에는 원산지의 생산자가 신선한 커피 수확물을 들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기뻐하는 대형 액자가 여러개 걸려 있습니다. 이는 스타벅스가 아프리카 커피 농가에게 기쁨과 만족을 주는 기업이라는 이미지(Image)를 고객들에게 줍니다. 가난한 제3세계 커피농가에 행복을 주는 일에 자신도 동참한다는 마음에 제니퍼도 흐뭇합니다. 조금 지나니 친구인 앤디엄마와 리암 엄마도 옵니다. 세 사람은 만나 수다를 떨다가 곧 있을 학교의 스프링 콘서트를 어떻게 PTA 차원에서 도울 수 있을까 의논하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스타벅스는 커피전문점이지만 학교의 PTA 모임으로 연결(Connection)됩니다.

인쇄기가 발명되기 전인 주후 1500년까지의 인간문화는 구술문화중심의 문화이였기에 예전이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하였습니다. 중세교회의 화려하고 장엄한 성전과 복잡한 예배의 순서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체험하는 채널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쇄문화시대가 도래하여 평신도들은 읽지도 알아 듣지도 못했던 라틴어 성경이 독일어로 번역되었고, 구술로 메세지를 전하였던 메신저, 설교자보다는 메세지 자체였던 성경의 권위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결국 종교 개혁이 일어나고 중세교회의 권위는 인쇄기를 통해 번역되었던 독일어 성경의 권위앞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1950년대 라디오와 텔레비젼의 등장으로 시작된 방송문화 시대에는 지구촌이라는 개념의 등장과 함께 수 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건너편 지구촌의 소식을 보고 즐기게 되었고, 이에 따라 교회의 모습도 축제의 모습으로 변모되어 갔습니다. 높은 강단은 낮아져 무대처럼 꾸며 졌고 파이프 오르간으로 그레고리안 챤트 스타일로 부르던 찬양은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복음성가로 바뀌어졌으며 구술문화에서 중시되던 말하고 듣는 능력과 좌뇌적 직선적 사고의 설교보다는 감동과 기쁨을 불러 일으키는 우뇌적 감성으로 감동을 전달하는 설교가 선호되기 시작하였습니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디지털 문화시대를 맞이한 교회는 이제 스크린 프로젝트와 컴퓨터를 연결하여 예배 실황과 예배 순서가 예배자들앞에 비춰지고 교회마다 웹 싸이트를 만들어놓고 교인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온라인 목회적 돌봄을 제공하는 디지털 컨버전스 교회(Digital Convergence Church) 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와 달라진 사람들의 필요를 잘 알아차린 스타벅스는 날이면 날마다 자신들이 세워놓은 기업의 목표를 달성하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 시대의 이민교회는 어떻게 교회의 본질을 상실하지 않고도 급변하는 상황속에 달라진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충족시키며 목회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두,세 배가 넘는 비싼 커피값을 지불하고도 스타벅스를 찾는데 교회는 아직도 성직자 중심의 권위적이고 엄격한 목회방식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오늘 날의 교회는 스타벅스처럼 시간만 나면, 기회가 되면 들어가고 싶은 곳인지, 교회에 들어가면 아침마다 새롭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Experience) 할 수 있는 곳인지, 하나님의 선하신 사업에 교역자로, 직분자로 참여 할 수 있는 곳인지(Participation), 교회는 진보와 보수, 기성세대와 신세대, 가진 자와 못 가진자들 사이의 반목과 갈등이 없는 평등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미지(Image)를 세상을 향하여 보여주는 곳인지, 또한 의사와 변호사, 네일가게 종사자와 콜 택시 운전자가 주 안에서 서로 상합하고 연락하여 하나님의 거하실 거룩한 처소로 연합(Connection)되어 지어져 가는 곳인지, 성도사이가 일방적이지 않고 쌍방적이고 인격적인 대화의 기적이 일어나며 내 집처럼 편안하고 안락하며, 각자의 허물과 실수가 덮어지고 용납되는 곳인지 신실한 마음으로 물어야 합니다.

오늘 날 교회는 우리 가운데 섬기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 받기 보다는 예배당의 첨답을 높히고, 강단을 높히고, 어렵고 복잡한 교리를 높히고 성직자의 권위를 높히며 예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높아지려는 교회의 시도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의 태도와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참 교회의 모습과도 동이 서에서 멀듯 너무도 동떨어진 교회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마굿간의 말 구유 위에서 나셨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창기, 세리, 과부들과 교제하셨고 그들의 친구가 되셨고 결국은 흉악범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단 한 순간도 스스로 마음을 높은 곳에 두지 않으셨던 주님께서는 우리처럼 화려하고 넓은 집에서 살지 않으셨고, 철따라 값비싼 명품옷을 입고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이 세상에 섬김을 받기 보다는 섬기는 자로,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께는 자고하여 교만하고자 하는 어떠한 시도조차 하신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따른다는 교회가 더 높아지지 못해 안달한다면 이는 이만저만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 바로 지고 주님을 따르려면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온유하게 자신을 낮추지 않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산 밑에 핀 순결한 백합처럼, 낮은 곳에 겸손한 왕으로 오신 주님께는 어린아이도, 노인들도, 가난한 자도, 몸이 불편한 자도 심지어 죄인도 얼마든지 나아 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님을 닮은 교회는 친정집같은 교회이 며 목회자와 성숙한 직분자들은 영적인 젖먹이와 걸음마를 떼는 연약한 성도들을 더욱 아끼고 사랑으로 돌보는부모역할을 하는 교회 입니다. 이처럼 문턱이 낮은 교회, 겸손한 교회, 사랑이 넘치는 교회는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들이 가고싶은 주님의 교회임에 틀림 없습니다. 언제나 따뜻하게 맞이해 주시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교회는 힘들고 고달픈 이민생활을 꾸려가는 우리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교회일것입니다.

정영민 목사 / <예수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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