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난민은 상품이 아닌 이웃일 뿐
시리아 난민은 상품이 아닌 이웃일 뿐
  • 김동문
  • 승인 2017.06.23 2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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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 프로젝트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존종해야
터키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엽 근처에서 구걸하는 시리아 난민.

'난민'이라는 단어가 한국인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전세난민, 경제난민을 비롯하여 정치난민 등의 용어가 종종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6.25 67주년을 맞이하면서 전쟁 피난민이었던 시절을 떠올리는 어른세대들도 있다. 전쟁이 났다고 모두가 피난민이 되어 피난길에 오른 것도 아니었다. 전쟁으로 고통하는 시민들도 있었지만, 그 특수를 이용하여 부와 힘을 얻게된 이들도 있었다. 전쟁의 슬픈 자화상이 그렇다.

시리아 난민 이슈가 종종 우리에게 다가온다. 시리아 난민을 시리아 피난민으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들 다수는 경제난민이 아니라 전쟁난민이다. 한국인들 가운데 중동과 유럽 등에서 시리아 난민 사역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나는 때때로 시리아 난민 사역 현장에서 안타까운 장면도 목격한다. 그것은 '난민'이 하나의 전략 상품 마냥 취급되거나 활용되는 것을 볼 때이다. 난민 돕기 현장에서도 배급품, 구호품 조금 나눠주면서 생색내기, 사진찍기에 열심인 이들을 마주하는 것은 불편하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시리아인 모두가 난민은 아니다. 시리아 난민이 다 동정의 대상도 아니다. 여전히 시리아 정부군 관할의 다마스커스나 주변 지역은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인다. 전쟁은 시리아 북부 알레포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전쟁 피난민 다수가 바로 이 지역 출신이다. 시리아와 인접한 터키에서 그리고 프랑스에서, 한국에서 다양한 처지의 시리아 난민을 만났다. 이들 다수도 시리아 북부지역 출신이었다. 일달 초순에, 터키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해엽을 연결하는 다리 주변에서 시리아 난민 여성들이 어린아이들까지 동원하여 구걸을 하는 풍경을 지켜보았다. 최대한 오고가는 시민들의 동정심을 유발할 몸짓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 관찰을 하면서 난민을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으려는 내 의지가 움직였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직후 이라크에서도, 그리고 이라크 난민이 많았던 요르단에서도 그 비슷한 경험을 했다. 전쟁 전에 중동과 아랍, 이슬람 세계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개인과 단체, 교회와 선교 단체, 비정부 조직 등이 몰려들었다. "당신들도 예수 믿으면 한국처럼 잘 살게 될 것이다'는 식의 번영의 복음(?)을 설파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전쟁으로 이라크인들은 불편한 처지에 놓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이들을 무시하거나 동정의 대상으로 취급할 자격은 없었다. 전쟁으로 정유 시설이 훼손되고 공급되는 휘발유 등이 절대 감소를 한 상황에서도, 주유소마다 기름을 채우려는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는 상황에서도, 기름 값이 오르지 않는 나라가 이라크였기 때문이다. 없는 사람, 무너진 나라를 부끄러워 하지도 않았다. 단지 불편할 뿐,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 내게 말하는 이라크인 이웃들이 많았다.

우리가 뉴스 속에서, 선교사의 보고와 간증 속에서 마주하고 있는 난민 지원 활동 풍경은 어떤가? "배급품을 트럭으로 가져와서 난민들을 줄을 세우고, 이름을 부르면, 난민들이 신분증(난민등록증)을 가져와서 확인하고 물품들을 하나씩 받아간다. 난민들은 행여나 자기가 못 받을까봐 초조해하다가 자기 이름이 불려 지면 표정이 살아난다. 그리고 기쁘게 물품을 받아서 돌아간다.“ 레바논에서 시리아 난민 지원 활동을 하는 한인 사역자 A 목사는 말을 이어간다.

레바논의 시리아 난민 소녀들이, 선물을 받고 즐거워 한다.

"이것은 난민촌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런데 이번에 한 교회에서 가져온 선물보따리를 나눠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보급품이 아닌, 선물이 되게 하자. 받는 사람이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하고, 오히려 당당하게 떳떳하게 자랑하면서 선물을 받도록 하자'.고, 주는 것이 아닌, 섬기는 것으로. 불쌍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해서 준비한 선물이 되어야 한다." 2015년 11월 하순에 방문했던 A 목사의 사역 현장에서 나는 시리아 난민들의 자존감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을 느꼈다.

이렇게 상대의 처지를 이용하지 않고 공감한다는 것, 조심하고 배려하는 마음, 그것이 복음으로 이웃을 섬기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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