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일)상] ‘정의와 공의’로 동성애 이슈를 바라본다
[책(과일)상] ‘정의와 공의’로 동성애 이슈를 바라본다
  • 김영웅
  • 승인 2017.06.24 07: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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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주교수의 '복음의 공공성'을 읽고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근주교수의 신간, 복음의 공공성(비아토르)

성경에서 ‘공의’(쩨다카)와 ‘정의’(미슈파트)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부분은 창세기 18장 19절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말씀에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가 바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공의와 정의는, 한 사람, 아담의 반역으로 시작되어 죄악에 물든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부르시고 보내시며 시작된, 소위 ‘하나님의 선교’에서의 핵심 포인트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보내시고 함께 하심은, 하나님을 믿으면 단지 높아지고 만사형통하게 된다는 표본을 보여주시기 위함이 아니다. 만민에게 복을 주시려는 통로, 즉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기 위함이다. 복의 목적지는 만민이지 아브라함이나 그 민족이 아니다. 즉, 구약의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 백성, 그리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결코 빠른 출세나 성공과 같은 사적인 욕망의 채워짐이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복음은 처음부터 공적이었기 때문이다. 결코 사적인 소원성취나 문제해결에 그 목적이 있지 않다. 복음은 알라딘의 요술램프 속 요정 ‘지니’가 아닐 뿐더러, 더욱이 액땜을 해준다는 부적도 아니다.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이 선택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자칫 운 좋게 선택받은 사람만 복을 받을 수 있고, 그 복을 받은 사람은 구원받게 되고 남은 인생은 어차피 장망성과도 같으므로 대충 고난과 핍박을 받다가 죽을 때 어딘가 있을 천국으로 건져지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한 사람과 한 민족을 선택하심으로 그 사람과 민족을 통하여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데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그들은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 했고 만민 가운데 있으면서 만민과는 구별된 하나님백성이 되어야 했다. 그 하나님백성이 주어진 현재를 살아야 할 자세가 바로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삶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님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삶이다. 그렇게 살아갈 때에 거룩함과 평안함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거룩함과 평안함은 만민에게 보여 질 수밖에 없다.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선교는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로 표현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 인간과 대화하시고 함께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공의와 정의를 행함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시는 것이다.

김근주 교수의 신간, ‘복음의 공공성’을 읽으면서, 창세기 18장을 다시 읽었다. 그러면서 눈여겨 본 부분이 있다. 공의와 정의가 처음 등장한 19절 바로 뒷 절인 20절이다. 곧바로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죄악을 하나님께서 언급하신다는 점이다. 비신학자이고 성경 전체를 꿰뚫는 눈을 가지지 않은 나로서는 단정짓기가 어렵다. 그러나 문맥상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는 사건에서 하나님께선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공의와 정의를 보길 원하셨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소돔을 향해 중보하는 아브라함의 기도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롯이 나그네로 등장한 두 천사를 대접하는 모습에서도 공의를 발견할 수 있으며, 나그네를 함부로 대하는 폭력적이고 자기 유익만을 위하는 소돔 사람들을 멸하시는 부분에서도 정의를 발견할 수 있는 것 같다.

동성애가 죄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삼는 주요 성경본문이 소돔과 고모라 사건이라는 점은 모두 알고 있다. 나 역시 그렇게 배웠었다. 그러나 오늘 꼼꼼히 창세기 18장과 19장을 여러 번 읽어봐도, 소돔과 고모라 사건이 동성애가 죄라거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멸하셨다고 하는 해석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오히려 나그네를 어떻게 대하는 지가 더 주요한 포인트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소돔과 고모라 전체 사건은 여호와의 공의와 정의를 보여주시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만약 수능 언어영역이나 본고사에 이 소돔과 고모라 사건을 본문으로 던져주고 저자의 의도를 쓰라고 하는 문제가 나왔다면, 난 서슴지 않고 동성애 문제보단 나그네와 공의와 정의에 무게를 두고 답을 쓸 것이다.

동성애가 죄라면서 그들을 인격적으로도 무시하고 차별하고 악한 사람으로, 아니 인간 이하로 멸시하는 행위, 그것도 예수의 이름으로, 또 성경을 근거로 해서 죄악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만약 중세시대였다면 지금처럼 동성애자들을 벌레 취급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동성애자들을 화형시키자고 주장하고도 충분히 남았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들에게서 소돔 사람들의 악함을 본다. 그들은 선과 악을 스스로 구분 짓고 (이것은 소위 원죄사건이라 부르는 창세기 3장 사건,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라고 한다), 그 구분지어진 악을 제거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선과 악을 스스로 판단하는 판결권과 그 판결을 집행하는 집행권은, 미안하지만 그런 당신들에게 없다. 동성애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건 당신들 자유다. 그러나 그들의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이나 인격을 무시하는 행위는 악하다고 난 생각한다. 그것은 의롭지 못한 행동이다. 당신들의 실제 무게중심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악을 제거하는 것에 있지 않고 (제거할 권한도 능력도 없으면서), 당신들의 관점에서 본 악을 제거하여 당신들이 정한 선을 지키려는 행위에 있을 뿐이며, 그것은 결국 자기중심의 자기애를 의미하는 원죄사건과 똑같은 맥락이다.

 

필자 / 글쓴이 김영웅은, 하나님나라에 뿌리를 두고, 문학/철학/신학 분야에서 읽고/쓰고/묵상하고/나누고/배우는 것을 좋아하며, 분자생물학/마우스유전학을 기반으로 혈액암을 연구하는 가난한 선비/과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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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객 2018-08-20 18:56:43
악을 악하다 하지 말라는 너의 죄가 심히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