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삯꾼 목사가 많다
준삯꾼 목사가 많다
  • 신성남
  • 승인 2017.07.10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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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가 싸잡아 비판받는 이유

좋은 목사가 많다는 건 누구나 잘 안다. 크게 감사한 일이다. 만일 나쁜 목사만 있다면 개신교는 진작에 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 목회자가 비리를 저지른다고 해서 모든 목사나 모든 교회를 비난하면 안 되는 것 또한 지극히 옳은 말이다.

어떤 이는 목사가 홀로 교회를 주관하지 않고 장로나 집사 등 다른 제직들과 협의하여 함께 사역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잘 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목사 비판에 대해 강하게 반발한다. 물론 얼듯 들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소리다. 장치만 있으면 뭐 하나. 그게 고장나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지 이미 아주 오래다.

이론대로 하자면 횡령 목사, 표절 목사, 성추행 목사, 그리고 세습 목사는 모두 즉시 척결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실제로 그게 제대로 처리된 적이 별로 없다. 겉으로만 하는 척 우물쭈물 시간 떼우다가 솜방망이 처벌이나 유야무야한 게 대부분이다.

한국 굴지의 대형 교회를 담임한 C목사, J목사, O목사, K목사 등의 화려한 범죄 행각이 그 좋은 증거다. 그래서 이제 어떤 교회에선 표절, 헌금 횡령, 성추행 따위는 아예 관심거리조차 안 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무엇이 문제일까. 왜 이런 악순환이 그치지 않을까.

어느 동네 경찰서에 부패한 경관이 한 명 있다고 하자. 헌데 그 경관이 나가서 횡령, 뇌물, 금품수수, 협박, 사기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물론 신고가 들어왔을 때 그를 조사하여 바로 해임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범죄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동료 경관들이 침묵하거나 보호한다면 과연 그 경찰서는 통째로 함께 욕을 먹을까 안 먹을까. 이건 어린 아이라도 알 수 있는 상식이다.

일제강점기에 모든 일본인들이 다 악행을 저지른 건 아니다. 그런데 안 그런 일본인도 많았으니 일본이 나빴다고 비판하면 부당한 건가. 요즘 일부 목회자들의 논리가 딱 이 정도 수준이다. 모든 목사가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으니 교회를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고 한다. '비판자'에 대해서는 날을 세우며 뜨겁게 반발하는 자들이 정작 그런 비판의 원인이 된 '비리자'에 대해서는 얌전히 침묵한다. 작금의 개신교가 싸잡아 욕 먹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프로테스탄트는 거룩한 저항자였다. 중세 교회의 불의에 저항하고, 불평등에 저항하고, 그리고 죄에 저항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요즘 많은 직분자들은 불의를 못 본 척 하며 그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다. 굳이 사회의 불의까지 갈 것도 없다. 교회 내의 갖은 비리마저 너무 관대하고 동조적이다.

불의한 십일조 강요, 부정한 헌금 유용, 불행한 교회 세습, 그리고 부당한 교권 독점에 대해 침묵하는 목사들이 너무 많다. 그나마 사석에서는 몇 마디 하나 공석에서는 대부분 꿀 먹은 벙어리다. 그나마 차라리 벙어리는 낫다. 도리어 돈과 권력에 적극적으로 아첨하는 위인들도 많다.  

나는 이들을 '준삯꾼 목사'라고 정의하고 싶다. 도적질하는 자만이 범죄가 아니라 그런 도적질을 방임하거나 방조하며 기득권을 함께 누리는 것 역시 중대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개신교가 모두 한통속이라고 싸잡아 욕을 먹고 있는 건 당연한 것이다. 만약 목회자들 스스로 자체 정화할 능력이 있었다면 교회가 현재처럼 심하게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회 개혁이 늘 겉도는 이유 역시 유사하다. 흔히 좋은 목사가 많다는 주장이 강하지만 막상 교회 내에 만연하는 반복음적 불의에 직면할 때 자신의 안위를 무릅쓰고 저항하는 목사가 매우 드물다. 아주 극소수다.

이는 장로나 집사도 마찬가지다. 웬만하면 못 본 척 외면하거나 침묵한다. 심지어 어떤 제직들은 목사의 시녀로 자처한다. 이들에게는 복음의 안위보다 자신의 안위가 중요하다. 자신의 영혼을 도와주는 참된 목사는 경시하고 오히려 자신의 재산을 탐하는 삯꾼 목사에게 충성을 바치는 게 바로 기독교 환자인 맹신도들의 특기다. 아울러 이런 교회는 '복음'보다 '복' 그 자체에 더 몰두한다. 복만 준다면 예수도 팔아먹는다.

그런 면에서 보면 2000년 교회 역사에 거대한 이정표를 세우고 있는 한국 특유의 '목사교'는 삯꾼, 준삯꾼, 그리고 맹신도의 완벽한 합작품이다.

그리고 사실 참된 목사와 삯꾼 목사를 구별하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진실은 단순한 것이다. 목사의 속주머니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부유한 목사'란 '가난한 부자'라는 말만큼이나 모순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요즘은 옛신앙의 거룩한 저항자들이 더욱 그립다.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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