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일)상] 복음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이들의 단비
[책(과일)상] 복음의 공공성을 추구하는 이들의 단비
  • 김영웅
  • 승인 2017.07.19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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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규, 오늘을 그날처럼 - 어느 치과의사의 일터신앙 이야기
오늘을 그날처럼 - 어느 치과의사의 일터신앙 이야기. 이철규 (지은이) | 새물결플러스 | 2017

보통 읽는 속도에 비해 3배 정도 느리게 읽었다. 그만큼 책을 꼭꼭 씹어가며 소화하려고 노력했다. 책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작은 꼭지는 평균 2-3페이지 정도로 짧고 쉽게 쓰여져 있고, 공감이 가는 글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어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함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속도가 빨라져 페이지를 휙휙 넘기려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책을 가만히 덮고 묵상을 했다. 그리고 다시 쉼 호흡을 하고 책을 폈다. 저자의 삶에 녹아 있는 하나님나라를 충분히 느끼고 싶었고, 가능한 많은 것을 배우고 내 삶에 적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저자를 존중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여겼다.

나 역시 직장 현장에서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하나님백성으로서 늘 신앙과 일치하는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이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삶의 예배를 드려야 할 노동자, 인간으로서의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같은 심정이리라 생각한다. 삶과 신앙의 일치, 삶의 예배는 늘 마음 한켠에 부담처럼 존재하면서도 딱히 정답이 없는 문제이다. 아마도 나를 포함한 모든 하나님백성들에게 이 문제는 일종의 아킬레스건 같은 존재일 것이다. 이 문제는 특히 맹목적이고 종교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여정에 접어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존재와 창조의 섭리에 대한 사유의 깊이를 점점 더 깊게 만드는 추진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에 뾰족한 정답이 있다고 말하진 않는다. 삶과 신앙의 일치는 공식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책은 그러한 문제가 하나님백성으로서의 삶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 치과 의사라는 컨텍스트에서 작성된 하나의 모범 답안 정도가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 그로 말미암아 그의 마음과 생각이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실제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게 되는지를 따스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큰 물줄기가 있다면 그것은 저자의 신학적 배경의 중추를 이루는 요한 계시록에 의거한 종말론적 삶과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책 제목, “오늘을 그날처럼”도 이것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미래의 관점으로 현재는 사는 것. “여기서 (Here)” “지금 (오늘, Now)” 자신의 일상적 삶이 “거기서 (There)” “그날 (Then)” 완성될 하나님나라에 속함을 드러내는 것. 바로 하나님백성이 추구해야 할 사명이자 삶과 신앙의 방향일 것이다. 신앙과 일치된 삶은 바로 여기에서 근거한다.

저자의 진료실에 찾아온 하나님의 통치가 저자의 삶 전체에 임하게 되는 과정은 성령의 내주, 인도하심에 의한 점진적인 변화 (연속성)와 순간순간의 어떤 사건으로 말미암은 은혜 (불연속성)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그의 삶에 개입하심을 (결국은)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하나님이 전적으로 일하실 수 있도록 그의 삶의 쓴 뿌리들을 제거해 나가는 과정, 고난으로 다가왔으나 은혜임을 깨닫게 되는 일련의 과정, 하나님을 신뢰하는 연습을 지금도 부단히 해나가며 그의 삶 전체가 변화되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하나님나라 백성이라면 아마도 누구나 동의하게 될 것이다. 아, 역시 하나님이시구나! 라고 말이다. 그렇다. 저자가 믿는 하나님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요, 동시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이렇게 큰 위안이 될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 저자보다도 그의 안에 있는 예수님이 보인다. 내 안에도 같은 예수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무뎌졌던 내 맘을 다시 감사함으로 충만하게 만들었다.

북 콘서트에서 저자 서명을 해주고 있는 이철규 원장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음을 물론이고 나아가 나도 내 현장에서 믿음을 살아내는 삶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게 된다. 신앙과 일치하는 삶이란 일회성의 사건이 아닐 뿐더러 그 결과를 우리의 삶에서 오감으로 늘 체감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그런 삶을 추구하면서 낙심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 역시 그런 과정을 겪어가며 하나님나라를 살아가고 있음이 내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연습이라는 평상시 나의 마음과 생각 속에 있는 명제가 한 번 더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난 답이 없는 인생에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인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수 있었다.

믿음과 생활은 하나이고, 하나님 앞에서의 믿음은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공동체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통해 구현된다는 문장이 내 마음에 꽂혔다. 사랑 없는 배려는 통제나 이해 타산적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도, 역으로 배려 없는 사랑 역시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는 말도 전적으로 동의했다. 또한 미덕과 성품의 근육을 훈련해 강화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당면 과제라는 사실도 아멘으로 화답했다.

공평과 정의를 비롯한 모든 성서적 가치를 가시적으로 보여주어 현존하는 미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하나님 말씀으로 들려왔다. 종말론적 윤리가 제거된 인간의 종교성은 결국은 소비주의와 신분 상승의 도구 외에 다른 무엇도 될 수 없다는 말에도 깊숙이 찔림을 받았다. 또한 종교와 생활로써의 기독교는 있을지 몰라도,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신앙으로써의 기독교는 찾아볼 수 없다는 말에는 내 가슴이 아팠다.

복음의 공공성을 묵상하고 있는 내게 이철규 박사님의 “오늘을 그날처럼”은 적시에 내린 단비와도 같았다. 나는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 라는 답의 힌트를 크리스토퍼 라이트로부터 배웠다. 그리고 김근주 교수로부터 여호와의 공의와 정의로 살아가야 하는 하나님나라 백성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런 나에게 이철규 박사는 그 배움이 이론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현장에서 구현되어짐을 보여준 실례이다.

나도 과학자라는 삶의 컨텍스트에서 하나의 실례가 되고 싶다. 어떤 특별한 능력이나 행운으로 말미암는 성공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정직한 성실과 일상에서 여호와의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삶을 그저 과학자의 삶에도 적용하는 일이 내가 할 몫이다. 그 열매가 어떻든 옳은 과정을 밟기를 다짐한다. 그 과정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백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여호와의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과학자. 바로 내가 되길 간구한다.

글쓴이 김영웅은, 하나님나라에 뿌리를 두고, 문학/철학/신학 분야에서 읽고/쓰고/묵상하고/나누고/배우는 것을 좋아하며, 분자생물학/마우스유전학을 기반으로 혈액암을 연구하는 가난한 선비/과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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