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도 당대 최고의 부자였다
아브라함도 당대 최고의 부자였다
  • 신기성
  • 승인 2017.07.28 06: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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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오스틴 목사, 번영복음 부인(否認)하다
(사진:GOSPEL2DSTREETZ)

[미주뉴스앤조이=신기성 기자] 번영복음(Prosperity Gospel) 설교자의 대표 격인 휴스턴 레이크우드교회 조엘 오스틴 목사는 지난 7일 덴버 포스트(The Denver Post)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번영복음 설교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번영복음을 전한다는 세간의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오스틴 목사는, 교회로부터 한 푼의 사례비도 받지 않음을 강조하며,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목회가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하며, 레이크우드 교회 교인들은 (오스틴 목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비난 보다는 자신들도 노력하면 이렇게 부자가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질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부자가 천국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성경구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당대에 제일가는 부자였다”고 대답했다. “이 구절은 단순한 부에 관한 것이 아니다... 당신이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들을 축복하기 위해 돈을 모은다면, 하나님께는 아무 문제가 안 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해’라는 말을 강조했다.

레이크우드교회는 52,000여 명의 교인이 출석하는 미국에서 제일 큰 교회이다. 오스틴 목사의 설교는 방송을 통해서 미국에서만 매주 천만 명 이상, 그리고 전 세계 거의 100개국에서 이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시청하고 있다.

레이크우드교회의 1년 예산은 9천만불 정도라고 한다. 현재 예배당으로 쓰고 있는 건물은 프로 농구팀 휴스턴 로켓츠(Houston Rockets)로부터 7천5백만 불에 사들였고 리모델링에 1억불 정도가 들었다고 오스틴 목사는 밝혔다.

오스틴 목사는 천오십만불($10.5 millions)에 구입한 집에 살고 있다. 그의 재산은 순자산 4천만불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서적 근거의 부재

번영신학에 대한 비판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비판은 번영신학이 비성서적이라는 것이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는 2016년 3월 27일 “산 소망의 회복”이라는 설교에서 오스틴 목사를 비판하며, 그가 주창하는 “긍정의 힘”은 단지 심리적인 안정감에 의존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오스틴 목사의 설교에서는 ‘할 수 있다’는 말은 반복적으로 들리지만 예수님은 잘 등장하지 않는다. 예수님 말씀과 그 분의 뜻 보다는 심리학적인 긍정적 힘만 있으면 될 것처럼 얘기한다는 것이다. 성서적 근거가 없는 말씀이기 때문에 복음이 아니라 심리학적 가르침이라고 강조한다.

다음은 이찬수 목사의 설교 중 일부이다.

“(기독교 신앙은) ‘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외치는 신앙이 아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시는 부활의 소망은 세상이 주는 근거 없는 싸구려 소망이 아니라 그 주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고 부활의 자리까지 이루어 주신 하나님이라는 대상이 있는 산 소망이다”

      

신앙은 “할 수 있다”가 아니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이다. 믿음 안에서 ‘할 수 있다’는 말의 의미는 내가 언젠가 천만불짜리 집에 살 수 있다는 이 세상의 소망을 뜻하는 게 아니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나에게 허락하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다는 순종을 가리킨다.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하지만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는 고백을 요구한다.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너는 나를 쫓으라 하실 때, 내 이기적인 본성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할 수 있다는 그런 긍정이다.

총신대 교수였던 유응렬 목사는 번영복음에 대해 성경을 자기 계발서의 모토쯤으로 여기는 것이라며 반 복음(anti-gospel)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회개와 뉘우침의 부재

번영복음은 긍정, 희망, 자비의 하나님 등을 강조해서 가르친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하나님과의 사귐을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회개와 중생과 성화에 대한 가르침은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오스틴 목사는 미국 기독교의 쇠퇴 이유를,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고, 정죄하고, 규제하기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우리가 율법적으로 사람들을 구속해서도 안 되지만, 본 훼퍼의 말처럼 ‘값 싼 은혜’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본 훼퍼는 「나를 따르라」라는 책에서 ‘값싼 은혜’를 이렇게 정의한다.

“값싼 은혜는 회개 없이도 죄를 용서하는 설교요, 공동체 훈련도 없이 베푸는 세례요, 죄의 고백도 없이 참여하는 성만찬이요, 인격적인 참회 없는 면죄의 확인이다. 순종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계시고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 이것이 값싼 은혜이다.”

죄에 대한 참회와 중생의 경험이 없이, 우리의 바람과 간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기도한다면 영지주의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지금 어떤 사람인지 매일, 매 순간 성찰하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소원을 이뤄주는 ‘지니’ 정도로 착각하는 일이다.

 

정의와 공공성의 부재

오스틴 목사의 설교는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이다. 고통과 역경을 겪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해 줄 것인가? 라는 질문에 그는 “삶은 고통과 어려움의 연속이다. 그럴 때 하나님께 의지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그 어려움들을 이겨낼 것이다...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믿음을 가지라. 나는 내가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좋은 때에만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어려울 때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이다”라고 대답한다.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그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책임과 방법은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말하는 식이다. 교회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브라질 까마라 대주교(1964-85)는 “내가 가난한 사람에게 빵을 주면 성인이라 불렸다. 그러나 그들이 왜 가난한가를 물으면 공산주의자라 불렸다”고 했다.

사람들이 당하는 어려움은 개인적인 문제도 있지만, 사회 정치 제도의 폐해 때문일 수도 있다. 누군가 고통당하는 현장에서 그 아픔으로부터 벗어날 책임을 당사자에게만 지우기보다는, 교회가 어떻게 그들의 이웃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 뭐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예수께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대하셨던 방식에 더 가까울 것이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 세계를 돌보는 청지기의 사명도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던 세계를 지키고 보호하는 사회적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세상의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과 피조 세계가 우리의 이웃이며, 우리에게 그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는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부를 누리기 위해 다른 피조물들을 착취하거나,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자연을 훼손하지는 않는지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축복의 통로로 그를 선택하시고 은사를 주셨다면 그는 그 돕고 축복하는 일에 좀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이는 오스틴 목사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2016년 4월 5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케네스 코플랜드 목사는 7억 6천만 달러, 펫 로버트슨 1억 달러, 베니 힌 목사는 4천 2백만 달러 등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천만불 넘는 재산가 목사들이 10명이 넘는다. 번영복음이 아니고는 어떻게 정당화 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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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sarang 2017-08-01 08:24:12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가나안의 최고 부자로 만들어주셨을 때 부자로 살지 않고 천국을 대망하면서 믿음으로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다(히 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