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사역, "난민을 난민으로 대하지 않는 것"
난민사역, "난민을 난민으로 대하지 않는 것"
  • 김동문 편집위원
  • 승인 2017.08.13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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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청소년들의 꿈과 끼를 표현하는 '탈렌트 쇼'
시리아 난민 청소년들이 자기 끼를 표현하고 있다.

난민, 가까이 하기에는 거리감이 있는 단어이고 선입견이 작동되는 존재일 수 있다. 난민을 향한 안타까운 손길도 있고, 냉소적이거나 적대적인 눈빛도 있다. 난민 사역이 한국교회의 중요한 사역 분야 또는 방법인양 확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난민을 난민 취급하지 않는 사역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난민을 난민 취급하는 것이 무엇인가? 단지 경제적인 동정의 대상이 아닌 이웃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레바논의 베까 골짜기, 시리아와 다마스커스와 레바논 베이루트 사이에 자리한 평야 지대이다. (구글 지도 갈무리)

난민, 난민 사역.. 자신이 지금 난민이라는 사실을 잊고 또 다른 한사람으로 자신을 마주하도록 돕는 것도 난민 사역의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선택하지 않은 환경 때문에 지금 불편하게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난민이라는 정체성으로 하나 만으로 한 개인과 가정, 민족을 색안경으로 볼 필요가 없다.

1백만이 넘는 시리아 난민이 머물고 있는 레바논에는 35만 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들이 베까 골짜기(Beqaa Valley, 현지에서는 와디 엘-비까아 Wādī l-Biqā로 부른다) 지역에 머물고 있다. 시리아 다메섹에서 60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남북의 길이가 120킬로, 폭이 16킬로 정도 되는 비옥한 평야 지대이다. 이 평야의 끝자락은 민수기 가나안 정탐꾼 이야기에 등장한다. 아래 본문에 나오는 '하맛 어귀 르홉'이 그곳이다. 

 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정탐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렀고 (민수기 13:21)

이 지역의 한 곳에서 난민 청소년들이 참여한 3일간의 ‘청소년 캠프’가 열렸다. 행사 마지막 날 '탈렌트 쇼'를 가진 것이다. 난민 청소년들의 숨겨진 끼를 확인하고, 그 재능들을 어떻게 하면 개발할 수 있을까 하는 목적이었다.

"너의 꿈은 운동선수?" 한 참석자가 복싱을 하는 듯한 춤동작을 하고 있다. 난민 청소년들 그들도 꿈을 꾼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아이들마다 자신의 끼와 재능을 드러내는 자리였고,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했다. 이 센터를 섬기고 있는 A 목사는 “청소년들의 숨겨진 재능을 찾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개발시켜주고 싶습니다. 다음에는 어린이들의 '탈렌트 쇼'도 한번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고 감회를 밝혔다.

A 목사는 일부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사역자이다. 이곳에 오기 전 B 국에서는 현지 아랍인 교회의 담임목회자로 교회와 지역 주민을 섬겼다. 지금 머물고 있는 레바논에서는 난민의 이웃이 되어 섬기고 있다. 당사자를 도구화시키거나 그들의 약점을 이용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아랍 지역에서 현지인 교회의 담임 목회를 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등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한인 사역자들이 그 몫을 감당하고 있다.

시리아 난민 청소년들, 그들도 여느 청소년과 다르지 않은 감정을 갖고 살아간다.

A 목사는 이렇게 고백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리아 난민사역은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요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뭔가 기대하는 것이 있어서 오는 것이지,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이 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심중에 심기고, 성령께서 일하시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은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확신을 가지고 시리아 청소년 아이들을 매일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그의 바람과 확신은 자기 최면이나 복제가 아니었다. 센터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한 청소년이 이런 고백을 하였다.

"제가 어렸을 적에 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을 심하게 때렸습니다. 왜 그 선생님은 우리들을 사랑하는 것을 몰랐을까요? 우리는 지금 센터에서 놀라운 것들을 배우고 있는데, 왜 그때 우리 선생님은 우리에게 이런 좋은 것들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요?”

A 목사는 시리아 난민을 난민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의지적으로도 그리고 실제적으로도 그렇게 산다. 실제로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인종과 종교, 처지의 다름을 넘어 자신들이 존중받고 또 다른 이들을 존중하는 것을 배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 난민 청소년 활동을 돕는 청소년 리더들이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다.

최근에는 연마기, 용접기, 철근 커터 등을 구입하고, 동영상을 보면서 사용법을 독학하면서 시설을 꾸미고 있다. 다음 주부터는 새롭게 유치원교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왜 일군을 불러서 빨리 쉽게 끝내지 않고, 직접 (잘 하지도 못하면서) 고생을 하느냐?’고요. 외국인 선교사가 돈으로 프로젝트로 일을 진행하면, 그들도 언젠가 쉽게 일을 하려 할 것이고, 후원자 찾는데 더욱 집중할 것입니다. 내 땀과 수고가 들어가지 않고, 쉽게 빨리만 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여기에서' 좋은 사례를 보여줘야 합니다.”

A 목사의 고민이다. 센터에서 수업을 안하면 청소년들의 항의가 들어온다. 센터는 난민들의 사랑방이 되어 가고, 청소년들은 센터를 자기 집 드나들듯이 오고 간다. A 목사는 할 거 너무 많고, 청소년들과 그 가족들이 다들 행복하니까 그것이 좋다. 이렇게 난민을 난민으로 대하지 않는 또 다른 일상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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