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와 고린도의 음주문화에 대한 재고
에베소와 고린도의 음주문화에 대한 재고
  • 박우석
  • 승인 2017.08.2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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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와 고린도의 음주문화는 특권층만의 문화였는가?
김동문의 "술, 방탕한 자의 상징? 이방인의 문화코드?" 글에 대한 의견(재고)을 담은 글을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Anselm Feuerbach이 그린 플라톤의 심포지움 상상도

김동문은, 근동 아시아에 대한 풍부한 식견으로 나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최근 미주 뉴스엔조이에 기고한 글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는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에베소서 5:18의 말씀에 대해 사회문화적인 재해석을 시도한다.

그 글은 바울 당대의 일반인들은 비싼 술을 쉽게 접하지 못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당대의 서민들을 대상으로 “술 취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송로버섯과 샥스핀으로 배 채우지 말라”는 말처럼 어색하다는 것이다. 이에 에베소서의 말씀을 음주나 금주의 경구로 이해하는 현대인의 해석을 재고하자는 것이다.

현재 나는 당대의 에베소의 사회문화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오직 고린도에 대한 자료만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자료가 에베소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김동문의 글도 에베소에 대한 글이라기보다는 실상 당대 로마사회 전반에 대한 글에 가깝고, 고린도 지역에 대한 나의 글 역시 사실은 로마사회 전반의 경향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서 당대의 로마 주요 도시들의 음주향락문화가 사회보편적인 현상이며, 단지 상류층만의 문화가 아니라 서민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스의 고대 고린도 유적

고린도의 사회문화 고린도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해상교통과 육상교통의 요지인 항구도시로서 경제적인 번영을 누렸을 뿐만 아니라,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서 정치력을 발휘했다. 시민들은 그 도시의 정치력과 경제력 및 지식적 압도적 우위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다.

고린도인들의 생활은 지극히 문란했다. 넘치는 풍요 덕분이었다. 심지어 'korinthiazesthai'(고린도인들처럼 산다)는 동사가 만들어졌다. 헬라사회에서 ‘술에 취하여 방탕하게 산다’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 단어가 여성에게 사용될 때는 창녀(hateirein)를, 남성에게 사용될 때는 포주(mastropeuein)를 의미하기까지 했다. 당시 고린도는 인간의 생명을 소모품처럼 여겨 낙태, 영아유기를 자행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살육하는 경기도 즐기기도 했다.

고린도의 이러한 사회윤리적 부패는 고린도의 정치경제 상황뿐만 아니라 종교상황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고린도에는 적어도 12개 이상의 신전이 있었다. 대표적인 신전은 아크로코린트에 세워진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Venus) 신전이었다. 아폴로(Apollo),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 아테나(Athena), 데메테(Demeter), 디오니수스(Dionisus), 코레(Kore), 팔라이몬(Palaimon), 제우스(Zeus), 시벨(Cybele), 이시스(Isis), 세리피스(Serapis), 멜카트(Melkart), 시지푸스(Sisyphus), 포세이돈(Poseidon) 등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다. 또한 모든 신들을 섬기는 만신전(Pantheon)도 있었다.

특히 아프로디테 신전에서는 1,000여 명에 달하는 성전 창기(여사제)가 활발히 활동했으며, 아폴로 신전에서는 미동(美童, 남성창기)가 있어 고린도를 동성애의 중심지로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성전 창기 및 성전 미동의 활동은 당시 65만 명에 이르는 고린도인들의 성생활을 지극히 문란케 하고, 성행위와 결합된 형태의 우상숭배활동에 몰입하게 했을 것이다.

아울러 고린도에는 철학과 수사학을 가르치는 학교도 있어, 고린도인들은 말을 매우 유려하게 하였으며, ‘고린도인들처럼 말한다’는 말은 수사학적으로 매우 우아하게 말을 한다는 표현이 되었다. 이상의 지식들은 당대의 고린도가 그리스-로마 문명의 집약한 도시임을 알려준다. 이상의 내용은 고린도전서 배경지식으로서 상식이 된 정보이다.

고린도교회 문제의 로마적 배경 그러나 고린도의 특이점은 이상의 내용을 초월한다. 바울 당대 고린도 지역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광범위하게 연구한 윈터(Bruce W. Winter, 78)와 영국 기행작가 부스(Alan Booth, 1946-93)는 고린도의 사회문화가 단지 고린도만의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로마사회의 일반적인 경향이었음을 지적한다.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약학자인 브루스 윈터(Bruce W. Winter)의 저서들

윈터는 그의 책의 서두에서 주전 44년 로마에 의해 재건된 고린도가 그리스 도시가 아니라 철저히 로마 식민지로 재건되었으며, 따라서 바울 당대의 고린도의 주류 문화가 그리스 문화가 아니라 로마 문화였음을 상세히 서술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그는 고린도에서 발견된 명문(inscription)과 기타 문서들을 충분히 검토하고, 필로의 자료를 통해 1세기의 플라톤 인간론과 윤리적 규범들이 어떻게 당대의 로마관습과,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되었는지 밝힌다. 이로써 1) 플라톤 철학과 이 철학이 유발하는 윤리적 행위와의 관계, 2) ‘모든 것이 가하다(all things are permitted)’는 격언의 용례와 의미, 3) 로마식 연회와 성적 방임과의 관계, 4) 고린도전서 6:12-20, 8:9, 10:23 이하에서 고린도 성도들이 어떤 목적으로 그 격언을 사용했는지를 입증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육체가 불멸의 영혼을 담은 집이라는 필로의 주장은 인간의 육체를 영혼의 감옥으로 본 플라톤의 견해를 1세기에 적응시킨 표현이다. 플라톤 인간론은 당대에 쾌락주의를 정당화시키는 고전적인 신조로 사용되었다.

그는 이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고린도전서 6:12, 10:23의 표현이 바울의 돌발적인 표현이 아니라, 당대 사회의 오랜 신념임을 입증한다. 그리스의 폴리비우스(Polybius, 284-146 BC.)와 크리소스톰(Dio Chrysostom, 40-120. AD)이 ‘모든 것이 허용되는 자유’를 비판한 사례와 자제력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절제가 요청되었으나,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허용되었다는 이중적인 사회분위기도 지적한다.

고든 피에 따르면 그 기독교 공동체 안의 어떤 남자들은 계속 창녀들을 찾았고, 그 권리를 주장했다. 이른바 ‘성령의 사람들’은 그들이 더 높은 성령의 차원으로 이동했고, 세상에서의 육체적 행위는 구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윈터는 고린도전서 6:12-20가 음식이 아니라 육체와 성적 부도덕성을 논하는 본문이며, 당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창기를 찾아다녔음을 지적한다는 고든 피의 견해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1,000명의 성전 창기를 거느린 아프로디테 신전에 대한 그리스 지리학자 스트라보(Strabo, 64 BC - 24 AD)의 언급은 그리스 고린도(Greek Corinth) 얘기지, 로마 고린도(Roman Corinth) 얘기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로마가 아크로코린트(Acrocorinth)에 건립한 아프로디테 신전의 규모로는 도저히 1,000명의 신전창기를 유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고대 에베소와 고린도의 위치와 간격은 얼마나 되었을까? (구글 지도 갈무리)

반론 끝에 윈터는 여러 고대 저술가들의 글을 근거로 자신의 결정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자기정당화 격언은 먹고 마시는 일과 성적 부도덕의 삼위일체 관계가 있다. 폭식과 술취함은 고린도의 사회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다. 코린트 지협 경기대회(Isthmian Games) 대회장이 주관하는 대형 회식 등이 끝난 이후에는 바로 그 자리에서 손님들에게 방문 창녀들이 공급되었다. 엘리트들이 개인 연회에서도 주인은 손님들의 식욕뿐 아니라, 성욕까지 만족시키는 접대를 베풀었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6:12-20은 그리스도인들이 창녀촌을 찾았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바로 만찬을 즐기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성적 교합을 가졌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고린도 성도들은 1세기의 플라톤 인간론, 철학적 향락주의와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All Things are permitted for them)”는 사회적 관습에 기초하여 자신들의 방탕한 행위들을 합리화했다.

부스는 이와 관련된 주전 300년대의 폴레모(Polemo)와 주후 300-400년대의 제롬(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7-420 AD)의 사례 등을 두루 검토하고, 바울 당대의 인물인 세네카가 로마식 연회와 미동 노예들에 빠진 젊은이들을 개탄한 사례 등도 언급한다.

그는 당대의 여러 자료들을 기초로, 음식과 술, 성행위가 결합된 연회 문화가 당대 로마 시민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영감의 원천이자 특권이었고, 자유로운 문화의 총아로 인식되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행위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은 그 남자를 야만인 혹은 노예와 구별시켜주는 주요한 표지였다. 당대에 이러한 ‘로마식 환락(Roman delights)’은 성장기의 불가피한 요소로 인식되었다.

“새로운 젊은이가 18세가 되면 보통 연회 초청장을 받을 권리를 얻게 된다. 그는 충분히 성숙해서 성적인 행위를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Alan Booth, 1991, 117)

“그리스의 심포지움(symposium)과 로마의 연회(convivium)는 요리(palate)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베게(성행위: 필자 주)의 즐거움도 제공하는 퇴폐를 조장했다. 이는 세속적인 사회와 교양 있는 사회 모두에서 불가역적인 문화의 발달 양상이 되었다.”(Alan Booth, 1991, 106)

바울 시대 로마사회의 음주문화 윈터와 부스의 자료들은 당대 고린도의 방탕함이 아프로디테 신전으로 대변되는 종교적 영역을 넘어, 일상적인 시민사회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 문화는 고린도만의 문화가 아니라 로마사회 전반의 문화였음을 알려준다. 고린도뿐만 아니라 에베소에도 적용되는 문화라는 말이다.

고린도와 에베소 사이에는 직선거리로 약 400km 정도의 간극이 있다. 그러나 고린도와 에베소 모두 두 도시 모두 당대의 대표적인 지역 거점도시들이었고, 왕성한 교류를 자랑하는 교역도시들이었다. 따라서 두 도시 모두 당대의 로마문화를 공유했음을 의심할 바 없다. 술취함을 경계하는 고린도전서와 에베소서의 문구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동일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경고일 수밖에 없다.

주전 420년경 만들어진 그리스 토기에 그려진 심포지움 장면

당대의 광범위한 음주문화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짚어봐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이것이 과연 일부 특권층만의 문화였는가 하는 사실이다. 윈터와 부스의 글은 해당 음주난교문화가 심포지움(symposium)과 로마의 연회(convivium)로 대변되는 상류층의 문화였음을 전제하지만, 이 문화가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 고린도교회에도 깊이 침투한 사실을 지적한다(고전 6:12-20, 8:9, 10:23). 에베소 교회 역시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로 구성된 교회였고, 유사한 경구가 에베소서에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당대의 음주난교문화가 일부 상류층만의 문화가 아니라 서민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극적인 향락 문화는 그것이 처음에는 비록 상류층의 문화였을지라도 어떤 형태로든 서민에게 영향을 미치고 파급된다. “사치에 대한 갈망은 사회적 발전을 촉발한다(The desire for luxury fueled social progress)”는 글처럼, 상류층의 사치향락문화는 그 사회의 서민문화에까지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일정 수준 물질문명의 발달도 촉진한다. 그리고 고린도전서와 에베소서는 이 문제가 교인들에게까지 파급되어 있음을 증언한다.

결론은 이것이다. 고린도와 에베소의 음주문화는 단지 상류층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서민사회 전반과 교회에까지 침투한 문화였다. 그것은 또한 단순한 음주습관이 아니라, 이방제의 및 만연한 성적 부도덕과 결합된 문화였다. 1차 술로 시작되나, 2차 3차로 넘어가면서 결국 여자와의 잠자리로 끝나는 현대의 음주문화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다만 바울 당대에는 더욱 광범위하고 공공연하게 이뤄졌을 뿐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고린도전서와 에베소서의 경구는 당대의 음주문화를 경고하는 것인 동시에 음주로 대변되는 향락문화 전반을 경계하는 문구로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일부 특권층의 음주문화에 대한 에베소서의 표현을 일반 시민에게까지 적용해야 하는지’를 묻는 김동문의 글은 당대의 광범위한 음주향락문화에 대한 이해에 따라 재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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