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사랑한 교회
돈을 사랑한 교회
  • 신성남
  • 승인 2017.08.2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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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삼키는 종교는 꺼져라"

주변의 교회를 한번 살펴보시라. 40대 이하의 젊은 교인이 몇이나 있는지. 갈수록 주일학교는 공동화하고 있다. 부모조차 교회에 안 나오는데 자녀들이 많이 나올 리가 없다. 돈을 사랑한 교회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다.

개신교 역사상 이처럼 돈을 열애한 교회는 없다. 한국에서는 돈 없으면 교회 못 간다. 한국교회는 돈에 대해서는 결코 물러섬이 없다. 얼마나 돈을 걷는 수법이 뛰어난지 헌금 종류만 무려 85종이 넘는다.

설교 한번 하고 수백만 원

생일 헌금, 차량 헌금, 직분 헌금, 일자리 헌금, 승진 헌금, 사업 축복 헌금, 안전한 여행 헌금, 출장 보호 헌금, 이사 헌금, 새집 헌금, 가족 건강 헌금, 목사 자녀 등록금 헌금, 기도 응답 헌금, 그리고 심지어 일천번제 헌금(천일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는 헌금)까지 매사에 돈이다. 어떤 이들은 헌금을 무슨 보험처럼 여긴다. 아마 헌금 없이는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를 충분히 못 받을까 도저히 불안해서 살 수 없는 모양이다.

게다가 상당수 목회자들은 구약의 '일천 마리의 번제'를 '일천 번의 제사'로 오해하여 천 번의 바침을 강조한다. 그리고 순진한 교인들을 천 일의 새벽 기도나 천 번의 헌금 등으로 오도한다. 그저 돈 걷는 일이라면 있는 무식 없는 무식 다 짜내어 아주 애쓰고 있다. 자신이 드린 번제가 나중에 이렇게 황당하게 둔갑할지는 아마 그 번제를 드린 솔로몬왕조차 미쳐 몰랐을 거다.

아무튼 교회에서 돈 바침을 가장 열심히 강조하는 사람들이 목회자다. 그리고 그 돈을 가장 많이 가져다 쓰는 사람들도 목회자다. 개신교에 목사 외에 교회 돈을 가져 가는 직분은 없다.

참으로 이상하다. 구약의 제사장 지파인 레위인도 며칠 동안의 성전 봉사 외에는 평생 자신의 초장에서 일을 했다. 유대의 율법 선생이었던 랍비들도 평생 생업에 종사하며 가르쳤다. 목수 예수님도 급여를 받으며 사역하신 적이 없다. 예배를 인도하며 헌금을 걷으신 적도 없다. 사도바울도 '상주 사역'을 할 때면 자비량 목회를 했다. 다른 사도들도 단지 '순회 사역' 중에만 일시적인 재정 후원을 받았다.         

그러니 "성경을 가르치는 직분이기에 또는 주의 종이기에 마땅히 금전적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원리는 도대체 어느 머리에서 나온 기이한 사상인지 모르겠다. 신구약 성경 어디에도 설교를 하거나 성경을 가르친 댓가로 돈을 받은 직업이란 없다. 따라서 고작 설교 한번 하고 수십만 원 또는 수백만 원을 주고 받는 악습은 대체 어느 얼어죽을 종교에서 나온 발상인지 알 수가 없다.

설교의 변질

나는 신실한 목회자가 매우 많다는 것을 잘 안다. 또한 유급 사역이 무조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절대시하거나 당연시하는 건 분명히 큰 오류라고 생각한다. 성경의 가르침은 오히려 자원 봉사적 사역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장로나 집사들은 모두 자원 봉사자다.

본래 개신교엔 중세 사제처럼 성직자가 되는 직분이란 없다. 성경의 선언대로 이미 모든 신자가 다 제사장이며 성직자다. 그럼에도 특정 직분이 설교권과 목회권을 독점하며 급료를 당연시하는 건 중세적 오류일 뿐이다. 모든 성도는 성경을 가르치거나 설교할 권리가 있다. 다만 교회가 목사에게 그 사역을 더욱 전문화하여 더 많이 위임했을 뿐이다.

그리고 초기 교회 사도들의 설교는 자신의 사견이나 잡설이 절제된 매우 담백한 설교였다. 사도바울이나 스데반의 설교가 그 좋은 예다. 그 당시는 성경이 매우 희귀했기에 설교자는 회중에게 직접 읽어주거나 설명해주는 게 꼭 필요했다. 헌데 그런 건강한 설교를 변질시킨 주범은 중세 교회다. 그들은 본문 해석 중심의 초기 설교를 그리스나 로마식 웅변으로 점차 변절시켰다. 이른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고, 사람의 흥미를 유발하고, 그리고 사람을 더 모으기 위한 잔재주가 가미된 것이다.

설교의 웅변화는 결국 인간의 잡술에서 나온 셈이다. 물론 그 잡술은 종교 장사를 위한 영업 기술로 더욱 개발되고 발전되었다. 희대의 웅변 사기꾼 히틀러도 청중을 들었다 놨다 했는데 하물며 하나님 말씀까지 동원한 웅변이 어찌 그에 뒤지겠는가. 우리가 아는 상당수의 초대 교부들과 중세 설교자들은 그들의 많은 신학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이런 재주에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아무튼 무슨 수법을 썼든 교회에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이고, 권력이 모이면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 있다. 교권이 부패하고 성직자가 타락한다. 이른바 돈을 사랑하는 교회가 된다. 결국 모일 때마다 무슨 명분과 핑계를 대서라도 기필코 돈을 열심히 걷는다.

돈 걷는 종교는 꺼져라

그들은 루터를 배신하고, 칼뱅을 배신하고, 웨슬리를 배신하고, 주기철을 배신하고, 김교신을 배신하고, 그리고 예수를 배신한 자들이다. 하여간 인간 역사에 돈을 열심히 걷어서 치부하고 부패하지 않았던 종교가 단 하나라도 있었다면 어디 한번 나와보라.

나는 이제 돈 삼키는 종교는 모두 꺼지라고 말하고 싶다. 만일 돈이 없어서 망할 교회라면 어서 속히 모두 망하기 바란다. 정말 의무적 헌금이나 십일조 따위가 없어서 망할 교회라면 지금 당장 망하는 게 이 세상을 크게 돕는 일이다.

반면에 진정한 개혁 교회라면 그딴 거 전혀 필요 없다. 교회는 돈으로 모이는 곳이 아니다. 집회 처소 한 구석에 허름한 종이상자 연보함 하나 달랑 두고서도 얼마든지 잘 운영되는 신앙 공동체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거룩한 불길은 누구도 막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는 작은 사무실이나 가정집에 단지 신자 열 명만 모여도 충분히 자립과 사역이 가능한 새로운 교회 공동체가 다가오고 있다. 성도가 봉사하고, 성도가 설교하고, 성도가 축도하고, 성도가 심방하고, 성도가 연보하고, 성도가 구제하고, 성도가 떡을 나누고, 성도가 운영하고, 그리고 성도가 섬긴다.

우린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그윽한 그런 아름다운 공동체들을 이 세대가 가기 전에 무수히 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교황과 그 교사 전달자들이 아주 노골적으로 자기들을 우롱하는 것과 자기들의 영혼의 구원을 이익이 많은 장사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과 구원의 값을 돈 몇 푼으로 계산하는 것과 값없이 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보았다.
이런 협잡으로 그들은 예물을 빼앗기며, 빼앗긴 것은 매춘부들과 포주들과 난취 난무에 허비되는것을 보았다. 그들은 또 면죄부의 최대 선전가들이 자기들을 가장 경멸하는 것을 보았다. 이 괴물은 날이 갈수록 더욱 더 소란하고 음탕하게 돌아다니며 그칠 줄을 몰랐고 매일 새로운 납을 내놓고, 새로운 돈을 가져갔다." - 장 칼뱅(Jean Calvin), 기독교강요(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

 

[전자책 다운로드]
1. "성직자 종교는 필요 없다", 200쪽.
2. "돈을 사랑한 교회", 206쪽.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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