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린 친구들에 대한 자랑
우리 어린 친구들에 대한 자랑
  • 신병용
  • 승인 2017.09.02 07: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무교회 선교여행 후기

단기선교인가, 선교여행인가, 아니면 혹은 비젼트립인가? 명칭부터 혼란스러운 이 선교여행은 (이 글에서는 이렇게 부르겠다) 우리 기독교내에서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역 중 하나이다. 실제로 인터넷으로 선교여행을 검색해보면, 이 사역이 얼마나 고비용 저효율인지, 심지어는 현지주민들에겐 오히려 피해만 주고 오는, 안가니만 못한 사역인지에 대한 기사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애석한 것은, 이 선교여행을 여러 차례 다녀온 내가 보긴엔, 이 기사들의 지적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수준이 아니라, 참 아플 만큼 예리하고 정확하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참여했던 나무교회 선교여행만 해도 그렇다.

우리의 주된 사역은 애리조나의 카리조(Carrizo, 원주민 보호구역)라는 작은 산골짜기 마을에서 VBS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루어진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서 20여명의 원주민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하루에 2시간씩, 총 10시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10시간을 위해 대략 만 불 정도를 선교비용으로 사용한다, 즉 한 시간에 $1000 불씩 투자한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 선교여행을 위해 약 3개월 동안 매주 한 번씩 모임을 갖으며 훈련하고, 직장인들은 휴가를, 학생들은 자기 방학을 희생한다. 돈, 시간, 또 마음까지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우리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음을 곧 발견한다, 어설픈 연극이나 인형극(puppet show)으로 성경의 메시지를 전하려 하지만, 우리끼리 이야기 하는 것은, 만일 우리가 한 시간에 $1000을 투자한다면,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교육가나 엔터테이너를 그 시간에 고용해서 훨씬 좋은 공연이나 교육을 그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거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반문은 우리가 단순히 오락이나 교육을 제공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러 가는 것이라는 거다. 온 마을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변화되는 놀라운 사역 말이다. 실제로, 선교여행을 다녀온 팀들이 가끔 이렇게 간증하는 것을 본다, 수많은 아이들과 마을이 예수를 영접했다고.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 적은 믿음으로 보았을 때, 짧은 일주일동안 온 마을이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영접하여 변화하는 것은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만일 이 일이 쉬웠다면, 또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면, 지난 수년간, 해마다 미주 한인교회들만 해도 원주민사역을 위해 몇 백 명을 파송하였는데, 그렇다면 원주민들은 벌써 기독교 민족이 되고도 남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도 이 카리조(Carrizo)란 마을에 총 7년째 다녀왔는데, 어째 갈 때마다 이 마을은 더 황폐해지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자연스러운 질문은, 그러면 대체 왜 가는 것이냐는 것이다, 이렇게 고비용 저효율에, 여러 전문가의 말대로 도움은커녕 피해만 주고 올 이유가 다분한데 말이다. 분명 어렵고 또한 피해가고 싶은 질문이다, 그러나 선교여행을 떠나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될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약 3개월 동안 매주 한번씩 2시간 넘게 훈련을 받는다. 물론 선교에 대해서도 배우고, 우리가 만나게 될 그 민족의 역사, 전통, 문화 그리고 그들이 지금 갖고 있는 어려움과 아픔에 대해서도 배운다. 그러나 이 훈련을 통해 우리가 가장 얻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부인이다. 힘들지만 내 맘속에 가득 찬 내 자신을 비우고 그 안에 하나님과 아이들로 채우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선교여행이 내가 은혜 받고, 내가 새롭고 많은 걸 경험하여, 앞으로 내 신앙생활과 내 교회에 도움 되는 것에 집중하는 영적만족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래야만 이번 선교여행 다녀오면, 하나님께서 그동안 밀렸던 나의 모든 기도제목을 들어주실 거란 헛된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그 가난하고 불쌍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과 마을을 그 누구도 아닌 예수 잘 믿는 우리가 구해줘야겠다는 천박하기 짝이 없는 영웅 심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부인의 훈련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은 그저 나를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희생자 코스프래 할 수 있게 돕는 도구이고, 가난하고 힘든 거 보면서, 내가 최신형 스마트폰이 있고 좋은 학교 다니는 것에 비로소 감사하게 해주는 비교대상이고, 어떻게든 내가 빨리 예수 인정하게 만들어서, 하늘상급 쌓고 교회에 멋지게 간증해야 하는 보고대상일 뿐이다. 감사하게도, 또 다행히도, 지난 수요일 선교보고 때 우리 팀 9명중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 간증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다만 하나같이 간증했던 공통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카리조 마을에 있는 우리 작은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과 자랑이었다.

“글쎄요 카리조에 있는 릴리는 (아이들 이름은 가명이나 별명이다) 야구를 엄청 잘해요, 이말렛은 율동이랑 춤이 환상이에요, 에밀리는요, 세상에, 커서 해병대에 가고 싶데요. 너무 멋지지 않나요!?… 일곱 살 소라는 예쁘게 생겼지만 진짜 무서운 보스에요, 우리 선교팀 남자들 전부에게 여자 치마를 입게 만들고 배를 잡으며 웃었어요.”

물론 그 속에는 아픔도 있다.

“근데요, 중학생 재이뜨는 학교도 안가고 아무것도 하기 싫데요, 사는 의미를 못 찾나 봐요, 브론도 마찬가지구요. 꼬맹이 쥬이는 집에 가기를 싫어해요, 엄마가 매일 같이 때린대요. 에밀리는 남자친구가 자기에게 무심할 때 마다 자살충동을 느끼고 손을 긋고 자해를 해요. 제일 나이가 많은 스키는 얼마 전에 동생이 자살을 했어요, 차마 맘이 아파 장례식에 안 갔지만, 지금은 그게 너무 후회가 된데요.”

그렇다, 앞서 언급한대로, 우리 나름대로 인형극으로, 찬양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나누려 하지만, 우리에게 있는 가장 위대한 무기는 주님이 우리 안에 심어주신 이웃을 사랑하는 그 분의 마음이다. 그것을 나누는 것이다. 실제로 그 아이들이나 우리나, 하나님 보시기에 연약하고 쪼개지고 희망 없는 존재는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물질이 부족해 고생한다면, 우리는 오히려 물질을 섬기는 더 큰 죄악으로 고생하고, 그들이 사랑과 인정받지 못해 아파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도 내 자아의 문제로, 이웃관의 관계문제로 날마다 고민하고 아파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 아픔을 그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애들아, 우리도 너무 연약하단다, 우리도 겉으로는 잘 사는 거 같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 우리 역시도 문제투성이지. 그래서 우리 모두는 그분이 필요해, 함께 걸어가며 같이 그 분께 울부짖지 않을래?”

이 마음을 나누며, 우리는 5일 동안 그들과 뛰고, 업고, 업히고, 안아주고, 안기고,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손을 잡고 같이 운다. 또 못 볼까봐 울고,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다 해주지 못해 울고, 서로의 아픔을 알기에 울고, 그렇게 친구가 되었기에 함께 운다.

이렇게 사역하면 그 마을이 변할 거란 확신이 우리에게 있을까? 이렇게 하는 선교가 정말 가치가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지금 여기 우리 인생에 대한 확신도 왔다 갔다 하는데, 고작 일 년에 일주일 머무는 2200 마일 떨어진 그 땅에 대한 확신이 있는 자체가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가 아는 것이 있다면, 그들이 자신들의 동양 친구들을 해마다 기다린 다는 것이다. 선물과 생필품을 잔득 싣고 오는 구제팀이 아니라, VBS 전문 사역자가 아니라, 자신들의 친구가 되어준 김영자 권사, 성홍용 집사, 다솜, Sarah, Jacob, Timothy, Andrew, Sam, John 을 말이다. 그래서 간다.

카리조의 그 아이들이 우리의 확신이고, 우리 선교의 이유이자,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본 글은 뉴욕 플러싱에 있는 나무교회(담임: 정주성 목사)의 애리조나 단기선교 후기이다. 글쓴이는 나무교회 신병용 간사이다. (편집자 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