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누가 우리를 그로부터 보호할 것인가?
[번역] 누가 우리를 그로부터 보호할 것인가?
  • 최봉실
  • 승인 2007.02.09 0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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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조지 부시의 심상치 않은 종교적 독선

9·11 5주년을 맞았을 때,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높아가는 원성에 맞닥뜨렸다. 이에 부시 행정부는 파국의 전쟁을 방어하기 위한 새로운 공세에 들어갔고, 애도에 젖어 있던 국민적 정서를 격렬한 당파적 정치 논쟁으로 바꿔버렸다.

먼저 이라크 전쟁은 실패이며 정작 테러리즘에 대한 진짜 싸움을 방해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는 광범위한 대중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일련의 연설에서 이라크 전쟁과 테러 전쟁을 동일시해버렸다. 그런데 다시 그는 ‘최고의 신학자’가 되어, 선과 악의 황량한 이미지를 내세우며 ‘문명의 충돌’을 선포했다. 자신의 묵시론적 사명을 주창한 것이다. 9월(2006년) 밝혀진 16개 미국 정보기관이 작성한 기밀문서인 ‘국가정보평가서(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는 이라크 전쟁이 테러리즘의 위협을 감소시킨 것이 아니라 증대시켰으며, 신세대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을 곳곳에 생겨나게 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한다. 정부는 전쟁을 비판하는 자들의 진정성과 그 의도, 그리고 그들의 애국심을 공격하는 것으로 반응했다. 대통령은 훨씬 더 자신감에 차서 단언했다. “나의 결정이 옳은 결정이라는 것에 나는 전에 없는 더 큰 확신을 느낀다.”

딕 체니 부통령이 조정자로 나섰다. 여느 때와 같은 로-로드 방식(low-road approach)을 취하여 전쟁 반대론자들이 테러리스트들을 지지하고 달래고 있다고 비난했다.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부장관은 히틀러의 전례를 들추어내며 전쟁 반대자들이 나치즘과 파시즘에도 물렁물렁하게 반응할 게 아니냐고 비꼬았다. “민주당 친구들의 말을 들어 보니, 그들은 미국인들을 보호하는 것보다 테러리스트들을 보호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한 하원 다수당 의장인 공화당 존 베이너의 말은 정치가들이 딱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갈 수 있는지를 정확히 보여 주었다. 도대체 합리적인 국민적 토론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가? 

저명한 공화당원들조차 부시의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부시의 1기 국방부장관인 콜린 파월이 존 맥케인 상원의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세상은 테러리즘에 대한 우리의 싸움이 도덕적인가를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네바 협정은 포로에 대하여 ‘굴욕감을 주고 품위를 떨어뜨리는 대우’를 포함하여 ‘개인의 존엄에 대한 잔악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는 테러 용의자들에 대하여는 이러한 국제법을 무시할 수 있는 자유를 비밀 CIA 심문관들에게 허용하기 위해 미국은 더 이상 제네바 협약의 금지 조항을 준수하지 않을 것을 제안했다. 맥케인과 용기 있는 몇몇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이에 반대했다. 고문에 의한 심문에 대하여 부시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기독교 우파 행동주의자들에게 비판을 받은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비록 테러리스트들이 그러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국은 보다 더 숭고한 견지에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부시의 조치가 미국을 위해 헌신하는 군인들과 여성들을 심각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우려했다.

세상 대부분이 ‘고문’으로 보는 것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국정 운영 정책으로 옹호하고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경악할 일이다. 아부 가리브와 관타나모 포로수용소, 그리고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는 CIA 비밀 수용소 심문실에서 자행된 일들은 미국에 심각한 도덕적 오점을 남겼다.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과 ‘테러 전쟁’의 수행은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반미 감정을 초래하여, 분노한 신세대 살인자들을 징병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테러리스들에게 완전무결한 환희를 던져주었다. 부시는 세상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었지, 덜 위험하게 만들지 않았으며, 우리의 아이들을 더 안전하게 한 것이 아니라 더 안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스런 것은, 부시가 자신의 정책에 얼마나 확신에 차 있는지, 그에 비해 세상의 현실은 부시가 자기반성을 할 수 있도록 어찌 이리도 개입하지 못하고 있는지 하는 것이며, 부시의 종교관과 신관이 무엇보다도 그를 가장 자신 있게 만들 뿐 아니라 심상치 않을 정도로 독선적이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 가을(2006년), 부시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보수 언론인 그룹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신앙과 이라크 전쟁을 관련지었다. 그리고 ‘제3의 대각성운동’의 가능성은 반테러리즘 전쟁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아브라함 링컨과 노예 폐지 전쟁과 두 번째 대각성운동을 기억해낸 것이다. 부시는 대통령 선거 유세 시 보호 경계 줄을 사이에 두고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것에 얼마나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나를 포함해 수많은 미국인이 이라크 전쟁을 선과 악의 대결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랬던 것처럼 부시는 사실을 잘못 이해했다. 제2의 대각성운동은 링컨에 앞서 몇 년 전에 시작되었고, 아브라함 링컨은 독선과 의기양양함이 아닌 국가적인 겸허와 회개를 촉구한 대통령으로 상징된다. 링컨은 자신의 두 번째 연두 연설에서, 선과 악이라는 어떠한 구분선도 긋지 않았으며 남북전쟁의 양쪽 당사자 모두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절대선의 반대편에 놓인 이들을 ‘악당’이라 부르는 부시에게서는, 미국 정책이 지구적 분노와 갈등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한 일말의 자기반성도 보이지 않는다. 어찌 링컨에 비유할까!

부시는 테러리즘에 대한 자신의 전쟁을 ‘21세기의 결정적인 이념 전쟁이며 우리 시대의 소명’으로 본다. 그에 의하면, 이라크 전쟁은 실수가 아니라 ‘새로운 세기의 진로를 결정할 전쟁’이다. 따라서 부시는 어떤 진로 변경도 숙고하고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대통령은 “미국의 안전은 바그다드 거리에서 벌어지는 전투 결과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테러리즘의 위협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라크 전쟁이 답은 아니다. 부시의 완벽한 자신감은 그의 다음과 같은 신학에 의존한다. “우리는 그러한 정신 가운데 신념을 가지고, 우리의 목적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리고 우리를 해방하신 사랑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한다.” 극단적 보수주의 잡지인 <내셔널리뷰>(National Review) 편집자인 리치 로워리(Rich Lowry)는 “전쟁 강화 전략의 적절함에 대한 부시의 믿음은 확고하다. 진실로 신앙의 산물이다”라고 평했다.

군사력에 의존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하나님, 무엇보다도 부유한 자와 힘 있는 자를 심판하는 하나님, 그의 제자들에게 단지 적의 눈에 있는 들보를 볼 뿐만 아니라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볼 것을 요구하며 꾸짖는 구원자. 이 모든 것이 조지 W. 부시의 신앙에는 상당히 이질적인 것 같다. 그의 개인적인 믿음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악이고 우리는 선이라는) 부시의 저급한 신학은 비도덕적인 외교 정책의 토대이며, 자성의 능력이 놀라울 정도로 결여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그가 대통령이라는 사실과, (링컨과 달리) 하나님이 자신의 편이라 믿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 자녀들의 안전과 세계 평화에 진정 중대한 위협이다.

부시의 과도한 자신감과 그의 신학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부시 정책에 대한 반대는 날로 커져가고 있고 지금은 초당파적인 양상으로 옮겨갔다. 이제는 부시의 세계관과 의제에 대한 거부가 우리의 국가 안보의 핵심이다. 만일, 자신의 확고한 종교 때문에 부시의 정책이 변할 수 없다면, 의회가 해야 한다. 의회는 그의 정책을 좌절시켜야 한다.

조지 부시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자신은 그저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이라며 호언장담한다. 그럼 도대체 누가 부시로부터 우리를 (그리고 세계를) 보호해줄 것인가?

* 짐 월리스는 <소저너스(Sojourners)> 편집인이며, <소저너스 / 부흥의 소명(Sojourners / Call to Renewal)> 최고책임자이다.

* 번역 / 최봉실

<미주뉴스앤조이>는 <Sojourners>의 허락을 받아
Jim Wallis의 칼럼 원문, 번역문, 해설을 동시에 게재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양심적인 미국 지성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수준 있는 글로 영어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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