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사회와 예수의 음주문화는 일상적인 것 아니었다.
유대사회와 예수의 음주문화는 일상적인 것 아니었다.
  • 김동문
  • 승인 2017.09.12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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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문 목사의 ‘술’, 다시 생각하기 (3)
성기문 목사가 최근 펴낸 <기독교 역사 속 술>(시커뮤니케이션, 2017.) 다시 읽기 글을 연재합니다. 오늘은 세 번째 글입니다. 저자 성기문 목사의 문제제기와 그것을 주장하기 위해 저자가 사용한 고고학적, 성경적 근거 등 여러 가지 근거를 되짚어 보았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고대 근동의 생활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책이나 주장을 인용하면서, 그 저자가 참고한 자료의 원 출처와 1차 자료도 짚어보는 비판적 책 읽기의 필요성도 재고되면 좋겠습니다. 성기문 목사의 반론도 실을 계획입니다.
각주를 본문 속에 작은 글짜로 넣었습니다. 앞선 글에서는 글을 읽는데 번거로운 편집일 것 같아서 각주 내용을 넣지 않았습니다. - 편집자 주

 

포도주를 가르치고 있는 디오니시스 신(3세기, 싸이프러스 Paphos) © Sonia Halliday Photographs / Bridgeman Images - De Agostini Picture Library / G. Dagli Orti / Bridgeman Images

로마제국의 술 문화와 유대사회의 술 문화는 아무런 상관성이 없다. 저자 성기문 목사는 신약에 나타난 술의 문제를 다루려면, 예수 당시의 유대교의 입장과 교회가 처했던 그리스 로마 제국의 술(식사) 문화를 먼저 이해하여야 한다(p.77)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상관성은 없다. 필자는 로마 제국의 술 문화가 신약에 나타난 술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성기문 목사의 논거에 대한 비평을 통해 짚어볼 것이다.

 

1. 로마 제국의 술 문화

1) “로마인들에게 포도주는 맥주를 마시고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이방인과 맥주를 마시지 않고 포도주를 마시는 야만인을 구별하게 만드는 아주 특별한 음료라는 자부심을 갖게 만들었다. 로마인들은 주위의 야만인들이 마시는 맥주를 혹평했다. 심지어 헤로도투스는 이집트인들이 맥주를 마시는 것은 거기에 포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p.80.

저자가 인용한 이 내용은 인용출처가 <맥주 문화를 품다, 벽을 허무는 소통의 매개체 맥주와 함께 하는 세계 문화 견문록>(무라카미 미쓰루, 알에이치코리아,| 2012년) 이었다. 그렇다면 헤로도투스는 이 같은 말을 한 것일까? 그가 한 말이 ‘로마인들은 주위의 야만인들이 마시는 맥주를 혹평했다’는 성기문 목사가 인용한 무라카미 미쓰루의 논지와 성기문 목사의 논지를 뒷받침해주는 것인가?

이 말은 헤로도투스(Herodotos, BC. 484~BC. 423)가 기원전 440년경에 지은 9권으로 구성된 역사(στορίαι, Histories) 2권 77장 4항(book 2, chapter 77, section 4)에 나오는 말이다. 원문과 몇 가지 번역문을 짚어본다.

2.77.4 ἀρτοφαγέουσι δὲ ἐκ τῶν ὀλυρέων ποιεῦντες ἄρτους, τοὺς ἐκεῖνοι κυλλήστις ὀνομάζουσι. οἴνῳ δὲ ἐκ κριθέων πεποιημένῳ διαχρέωνται· οὐ γάρ σφι εἰσὶ ἐν τῇ χώρῃ ἄμπελοι.

They eat bread that is made from a kind of wheat, which they call “cyllestis.” They use a wine made from barley: for there are no grape vines in their land. *Herodotus, The Histories 2.77 Posted by BREWINGCLASSICAL on APRIL 10, 2017, ttps://brewingclassical.wordpress.com/2017/04/10/herodotus-the-histories-2-77/

They eat bread, making loaves of maize, which they call /kyllestis/, and they use habitually a wine made out of barley, for vines they have not in their land. * G. C. MACAULAY,, THE HISTORY OF HERODOTUS,MacMillan and Co., London and New York. 1890.

“They live on bread made of spelt, which they form into loaves called in their own tongue cyllestis. Their drink is a wine which they obtain from barley, as they have no vines in their country.” *Herodotus, George Rawlinson (Translator), The Histories, Publisher: Everyman's Library (March 25, 1997)

“They eat bread, making loaves which they call “cyllestis,” of coarse grain. For wine, they use a drink made from barley, for they have no vines in their country.“ *Herodotus, A. D. Godley.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20

“그들(이집트인들)은 일종의 밀로 만든 빵을 먹는데, 그들은 "킬레스티스"라고 부릅니다. 그들의 음료는, 그들은 보리로 만든 포도주를 사용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땅에는 포도덩굴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포도주와 맥주 사이의 어떤 차별을 언급한 것이 아니다. 단지 이집트인들이 맥주를 마시는 환경을 서술하고 있는 것뿐이다. 이집트인은 보리로 만든 술을 마신다. 이집트에 포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집트인의 맥주 문화 (아니면 포도주 문화가 없는)에 대해 아주 단순하고 명쾌한 설명이 아닌가. * Nelson, M.C. 2001. “Beer in Greco-Roman Antiquity.” Ph.D. dissertation, the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209-212.

2) “로마인들의 대량소비로 내국의 포도주 생산이 부족해지자, 로마 이외의 나라에도 포도원을 가꾸어 포도주를 생산하여 수입하였다.” - p.80.

Heracles 와 Dionysus 신이 포도주 마시기 경합을 벌이고 있다. (2세기 모자이크, Worcestor Art Museum)

이 언급은 적절하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얼마 정도의 포도주 소비가 벌어진 것일까?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의 시민들은 한 가정 당 연간 146~259 리터에 이르는 포도주를 소비한 것으로 추산한다. 카토(Cato the Elder)는 181~259리터를 지지하고, Andre Tchernia는 146~182 리터를 지지한다. * Alexander Conison, The Organization of Rome’s Wine Trade, A dissertation submitted in partial fulfillment of the requirements for the degree of Doctor of Philosophy (Greek and Roman History) in the University of Michigan, 2012, p.18.

기원전 100년경의 로마 제국의 포도주 소비량이 1억 9천만 리터에 이르렀다고 한다. 모든 성인 1인당 매일 1리터 이상의 포도주를 마신 셈이다. * Thomas R. Sinclair, Carol Janas Sinclair, Bread, Beer and the Seeds of Change: Agriculture's Imprint on World History, CABI, 2010. p.123. 성인 1인당 하루에 한 병의 포도주를 마신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로마제국에서 로마 여자 시민들이나 35세 이하의 남자 시민들도 포도주 음주가 금지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문헌 증거들이 존재한다. *Aliou Cisse Niang, Carolyn Osiek, Text, Image, and Christians in the Graeco-Roman World: A Festschrift in Honor of David Lee Balch, Wipf and Stock Publishers, Nov 3, 2011, p.124. 그 가운데 예수 시대에 닿아있는 시기의 문헌들을 짚어본다. “로마에서 여성들은 포도주 마시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 Pliny the Elder(23~79 AD) At Rome women were not allowed to drink wine Nat 14.14(14:89), Pliny the Elder, PLINY'S NATURAL HISTORY, Translated by H. Rackham, William Heinemann, London;, 1949-54

또한 티베리우스 황제(14-37 AD) 시절의 Valerius Maximus도 동일한 언급을 하고 있다. “로마의 여성들이 술을 마셨다는 것은 알려진 것이 없다.“ *Aliou Cisse Niang, Carolyn Osiek, Text, Image, and Christians in the Graeco-Roman World: A Festschrift in Honor of David Lee Balch, Wipf and Stock Publishers, Nov 3, 2011, p.123. *The Fragments of the Roman Historians: Introduction. Vol. 1, Oxford University Press, 2013. p.41. *Ariadne Staples, From Good Goddess to Vestal Virgins: Sex and Category in Roman Religion, Psychology Press, 1998. p.48.

로마제국의 술 문화는 대단했다. 그러나 그것은 여성들과 35세(?) 이하의 남자 시민권자들도 배제된 남자 시민권자의 몫이었다. 그 포도주의 과잉 소비로 인해 식민지에서의 포도원 증가와 포도주 생산이 이뤄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2. 유대교의 음주 문화

1) “유대교의 음주 문화. 그리스 사람들의 심포지움이나 로마인들의 향연과 비교할 만한 것은 유대인들의 향연이다. 그들은 주로 결혼이나 유월절 만찬, 할례식 같은 때 모여 향연을 즐겼다. 포도주를 즐겨 마셨던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르면, 할례식 때 포도주를 한 잔, 결혼식 때 포도주를 두 잔 안식일과 축제 기간에는 한 잔으로 시작하고 유월절 세데르 때는 적어도 네 잔의 포도주를 마신다. 유대인들은 세데르 중간에 네 차례 나눠서 포도주를 마신다. 네 차례의 포도주는 출애굽기 6:6-7의 구원의 약속을 상징한다. 비록 후대(즉 구약 이후)의 전통이지만, 유월절의 네 잔의 포도주는 모이고 먹고 포도주를 마시고 행복하자는 의미였다.” p.81

이 주장으로 유대인들이 그리스, 로마 사람들과 비교할만한 향연을 즐겼다고 확증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예수의 최후의 만찬이 유대인의 전통 유월절 식사였는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과 같은 유월절 세데르(음식)를 예수 시대에 유대인들이 했는가? 예수의 마지막 만찬이 유월절 식사였는가? 유월절 세데르를 즐기는 유대인들의 문화가 있었다고 하여도, 그것이 모든 유대인들, 평범한 유대인들이 그것을 누렸다고 볼 수 있는가? 누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여도 포도주를 일상적으로 음료처럼 마셨다고 확증할 수 있는가?

2) “유대교의 음주 관습. ... 구약만큼이나 신약에서도 유대인들의 음주 문화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등장한다. 그 용례를 간접적인 언급과 직접적인 언급으로 나눠보자.” p. 83.

저자는 유대인들의 음주 문화의 간접적인 용례로 새 포도주(가죽) 부대에 대해 언급한 것을, 직접적인 언급으로 요한복음 2장의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 포도원 품꾼의 비유, 포도원 농부의 비유, 포도나무 비유 등을 들고 있다. 포도를 언급하고 포도나무를 예로 든다고 하여 그것을 두고 음주문화의 직접적인 예로 제시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포도를 좋아하고, 건포도를 좋아하는 사람을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규정짓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까닭에, 저자나 독자가 이런 성경 본문을 근거로 예수 시대에 음주문화가 유대인들의 보편적인(대중적인) 문화였다고 주장하는 적절하지 않다.

3) “예수의 음주 습관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당시 유대교의 음주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수의 관점은 당대 유대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였던 음식법에 대한 강조/갈등의 구절들 속에서 잘 발견할 수 있다. 즉 예수의 포도주에 대한 태도는 그의 비판자들에게서 나왔으니(‘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 마 11:19, 눅 7:34, 신 21:18-21), 예수께서 여러 사람이 개최하는 만찬(만찬은 당연히 포도주가 포함된다)에 자주 초대되신 것을 보면 비판자들의 비판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 p. 87

예수를 향하여 ‘먹기를 탐하고 마시기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말했던 예수 비판자들의 예수를 향한 비판의 맥락이, 곧이 곧대로 예수의 음주 습관과 연관성이 있다고 볼 근거는 희박하다. 그것은 유대사회에서는 맞아 죽어 마땅한 패역한 자를 일컬어 관용적으로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래의 본문과 이어지는 본문을 살펴보자.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신 21:18-21)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이사야 28:1)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이사야 28:3)

그 무리와 편히 지껄이고 즐겼으며, 또 광야에서 잡류와 술 취한 사람(סָבָאִ֖ים, sā·ḇā·’îm)을 청하여 오매, 그들이 팔찌를 그 손목에 끼우고 아름다운 관을 그 머리에 씌웠도다. [겔 23:42]

이사야는 세겜이라는 도시를 술취한 자(šik·kō·rê), 술에 빠진 자(sheqer)라는 단어와 교차시키면서 풍자하고 있다. 망할 놈의 도시, 망할 놈의 인간 같은 의미로 통용되었던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3. 로마 제국의 술 문화와 유대교의 술 문화

1)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문화들이 공유하는 식탁교제는 ‘환대의 미덕’을 구현하는 사회적 이상이라는 면에서 유대교와 그리스 로마의 술(식사) 문화와 연결된다. 이와 같은 유사성은 사회적 관계성의 측면에서 시작하여 세부적인 사항들, 즉 식탁에 기대어 앉는(눕는) 일, 초대장, 식당의 구조, 음식 등에서도 발견된다.” - p. 77

포도주의 신 Dionysus, (2세기 모자이크, 그리스 디온 고고학박물관)

이 두 문화 사이에 상관성은 없다. 로마의 술 문화의 특성에 대한 무지와 예수 시대 유대 사회가 술 문화를 즐겼다는 전제는 역사적 근거가 희박하다. 이 부분은 앞부분의 내용을 참고할 수 있다.

2) “이와 같은 정결 규례에 따른 종교적 사회적 계층의 구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음주와 식사 예절 자체에는 그리스 로마인들과 많은 차이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 p.88

그러나 이런 추정의 근거는 너무 약하다. 이 책 80 쪽에서 저자도 언급하듯이 로마 제국 아래서 로마인들의 포도주 문화가 점점 일반화되었다. 초기에 귀족들의 맛기행 문화였던 것이 일반 서민에게까지 확대되면서 로마인들의 포도주 대량 소비로 자국의 포도주 생산이 부족해졌다. 로마 황실은 자국 이외의 식민지에도 포도원을 가꾸어 포도주를 생산하여 그 부족분을 채우도록 했다. 이것은 식민제국으로서는 자연스러운 조치였다. 그리고 이런 조치는 로마의 식민지에서의 포도 생산의 증가와 착취의 강화를 통해 그 수요를 채웠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로마 제국하의 이스라엘에서도 로마제국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포도원을 늘리고, 포도와 포도 생산량이 증가했으리라고 추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

싸이프러스 Paphos 고고학 공원

예수의 비유에 포도원 품꾼 비유와 포도원 주인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로마 정부의 주요 정책 과제로서 새롭게 포도원을 만들고 가꾸는 과정에 적지 않은 노동력이 투입되었고, 그래서 일자리로 유명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포도원 주인은 악한 자(?)로 유명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 성기문 목사는 로마제국하의 이스라엘의 포도주 소비 문제를 언급하면서 사회 경제적인 고려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식민지 백성들은 수탈의 대상이고, 식민지배의 특성은 생산 자체의 문제보다 분배가 이뤄지지 않고, 약탈이 강화된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3) 포도원 주인은 누구?

포도원의 소유주는 누구였는가? 이것은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식민종주국 로마제국의 포도주 내수 증대에 따른 식민지에서의 포도원 확장 정책이 벌어졌다는 것을 다시 고려하여야 한다. 직접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지만, 이탈리아나 로마점령하의 이집트, 유럽의 포도원 정책에서 로마제국의 포도원 소유권을 추정할 여지는 크다. * John S. Kloppenborg, The Tenants in the Vineyard: Ideology, Economics, and Agrarian Conflict in Jewish Palestine, Mohr Siebeck, 2006. p.303. 따라서 이 포도원 주인이 로마인이거나 로마에 충성하던 이스라엘인이었을 것이다.

로마제국에 앞서서 헬라제국과 그 뒤를 이은 프톨레미 왕국에서도 포도원의 소유권을 그리스인이 잡고 있었지만, 비그리스인에게도 사용권을 넘겨주었다. * Rod Phillips, Alcohol A History,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Chapel Hill 2014, p.50. 로마도 처음에는 로마인이 포도원을 소유했지만. 비 로마인에게도 포도원 권리를 넘겨주었다. * Roderick Phillips, Alcohol: A History, UNC Press Books, 2014. p.33.

이런 배경을 통해 포도원의 위치나 존재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포도주 틀의 존재는 그 만들어진 시기에 대한 검토와 함께 이런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읽어야 할 것 같다.

이런 과정에 고대 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지방과 헤브론 등 유대산지, 갈멜산 지역, 골란고원 등에 포도원을 새로 만들고 직접 관리했을 개연성이 크다. 프톨레미 왕조와 로마 제국 통치 시의 이집트의 경우 포도원 주인의 이름이 그리스인 이름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 John S. Kloppenborg, The Tenants in the Vineyard: Ideology, Economics, and Agrarian Conflict in Jewish Palestine, Mohr Siebeck, 2006. p.304.

 

4) 포도주 한 잔 값은 얼마?

사실 현대 이스라엘에서도 포도원이 곳곳에 있지만, 모든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구약시대는 물론 예수 시대 이스라엘에서도 포도원이 낯설지는 않았지만, 흔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포도주 한 잔 비용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있다. 로마의 최대 식민도시였던 이집트의 경제 상황을 소개하는 자료들이 그것이다. Louis C. West는 그의 글 “The Cost of Living in Roman Egypt”에서 언급한 수치를 통해 1 데나리온에 5리터 정도의 포도주를 살 수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Louis C. West, The Cost of Living in Roman Egypt, Classical Philology, Vol. 11, No. 3 (Jul., 1916),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 306. 1 암포라(27.84 리터).The Britannica Guide to Numbers and Measurement, Britannica Educational Publishing, Apr 1, 2010, p.207. 가 6 데나리온, 1데나리온에 5리터 정도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로마 제국의 문명이 그대로 이식되었던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던 이집트의 경우이다. 이보다 물자 공급이 달리고, 수송에도 어려움이 있었던 고대 이스라엘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큰 비용을 지불하여야 했을 것이다.

 

5)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 물가

또한 여기에 더하여 예수 시대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반 물가 수준과 생계비 등을 고려하여야 한다. 어른 한 사람이 먹고 사는 데 1년으로 따지면 거의 70 데나리온이 들었다고 추정한다.*Ekkehard Stegemann, Wolfgang Stegemann, Jesus Movement: A Social History Of Its First Century, A&C Black, Aug 1, 1999. p.83. F.M. Heichelheim은 이보다 조금 많은 반 데나리온 이하의 비용이 필요했다고 계산했다. *F.M. Heichelheim, ‘Roman Syria’, in Tenney Frank, An Economic Survey of Ancient Rome, Vol IV, Pageant Books, 1959, p.180. 미쉬나(the Mishnah)에 따르면, 한 데나리온으로 빵 12개 정도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Gildas Hamel, Poverty and Charity in Roman Palestine (Berkeley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9), p.40. 빈민들은 하루 500그람 정도 되는 빵 두 개로 하루를 살아야 했다. *Gildas Hamel, Poverty and Charity in Roman Palestine (Berkeley :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9), p.40. Luise Schottroff, Wolfgang Stegemann, Jesus and the Hope of the Poor, Wipf and Stock Publishers, Jul 1, 2009, p.41.

고대 이스라엘에서 6식구가 기본 생계를 유지하려면 연간 250~300데나리온이 필요했다. *에케하르트 슈테게만, 볼프강 슈테게만,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 고대 지중해 세계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손성현, 김판임 역, 동연, 2012, pp.148-149, *Ekkehard Stegemann, Wolfgang Stegemann, Jesus Movement: A Social History Of Its First Century, A&C Black, Aug 1, 1999. p.83. 카토(Cato the Elder)는 일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연간 250데나리온이 필요했다고 추산한다. *Marcus Porcius Cato, Agriculture, Harvard University Press, 1934, p.56. *James R. Davila, The Dead Sea scrolls as background to postbiblical Judaism and early Christianity: papers from an international conference at St. Andrews in 2001, Volume 46, BRILL, 2003, p.106. *James H. Charlesworth, Jesus and Archaeology, Wm. B. Eerdmans Publishing, Jul 28, 2006. pp.493-494. 이 수준은 가족 한 사람당 연간 400개의 빵을 겨우 먹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벤-다비드에 따르면, 가장 안정적인 일자리인 농업 노동자의 경우 날씨 등 여러 가지 환경을 고려할 때, 연간 200일을 일할 수 있을 뿐이었다는 것을 감안한 추정이다. * Ben-David, Tahlmudishe Okonomie, 65-69, 292. 그런 점에서 연간 소득 200데나리온은 6식구 기준의 최저생계비였다. *에케하르트 슈테게만, 볼프강 슈테게만,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 고대 지중해 세계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손성현, 김판임 역, 동연, 2012, p.158, *Ekkehard Stegemann, Wolfgang Stegemann, Jesus Movement: A Social History Of Its First Century, A&C Black, Aug 1, 1999. pp.89-90. Ekkehard Stegemann, Wolfgang Stegemann, Jesus Movement: A Social History Of Its First Century, A&C Black, Aug 1, 1999. p.84. 이것은 로마에서 로마시민이 소박한 생활을 유지하는데 들었다는 연간 5000데나리온*에케하르트 슈테게만, 볼프강 슈테게만, 초기 그리스도교의 사회사 고대 지중해 세계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손성현, 김판임 역, 동연, 2012, pp.148-149의 1/20에 불과하다. *Scheidel, Walter, Real Wages in Early Economies: Evidence for Living Standards from 1800 BCE to 1300 CE (April 18, 2009). Available at SSRN: https://ssrn.com/abstract=1114424 또는 http://dx.doi.org/10.2139/ssrn.1114424

이런 사회 경제적인 요인 등을 고려할 때, 유대 사회의 술 문화는 일반적일 수 없었다. 그야말로 그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던 이방인(로마인)들의 몫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친로마의 삶을 살던 이들 가운데는 포도주를 마시는 일상이 존재했다는 것은 억지스런 추정은 아니다. 이번 연구에서 제외하였지만, 성전에 바쳐지던 포도주가 존재했을 것이다. 이 바쳐진 술 제물은 제사장 귀족들과 친로마 유대인 귀족들의 몫이었을 것이다.

 

4. 신약성경 속의 술 문화

1) “신약에 나오는 술(포도주) 이야기는 로마 사람들의 음식(의 일부로서의 술-음료)과 만찬(교제의 수단)의 문맥으로 이해해야 한다. - p.79.

2) “예수께서 여러 사람이 개최하는 만찬(만찬은 당연히 포도주가 포함된다)에 자주 초대되신 것을 보면 비판자들의 비판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 pp.87-88.

이런 주장은 부적절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로마 제국 지배하의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도주를 당연히 만찬 자리에서 마셨다는 것은 시대 상황에 대한 무지, 몰이해, 억지스런 추정에 의한 것일 뿐이다..

3) “여기서 우리가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할 사건은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이다. 예수는 자신의 교훈을 들으러 모여 있는 사람들을 떼를 지어(심포시아) 앉도록 했는데, 이 말은 심포시온의 복수형이다. 이것은 마치 예수께서 넓은 들판에서 모여 있는 군중들에게 연회를 베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윤철원 신약성서, 164 실제로 예수의 청중들은 바닥에 기대어 누운 채로 만찬을 즐겼다.(보라 요 6:10-11) 그러한 점에서 예수의 사역을 종말론적 만찬의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점에서 예수의 사역은 죄인들과 같이 당시 유대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과의 만찬 속에서 행해졌다. 이것은, ‘우정, 친밀함과 일치’의 상징이다. 윤철원 신약성서, 151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예수께서 베푸신 만찬과 예수께서 초대되신 만찬 모두가 그리스 로마의 문화적 이상과 일치된다는 점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 pp.88-89.

그러나 이런 논리는 자연스럽지 않다. 지나친 논리의 비약으로 보인다. 로마인들의 심포지움(symposium)을 연상시키는 단어(συμπόσια)가 나왔다는 것으로, 심포지움 symposium 같은 그런 잔치로 이해하기에는 연결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짚어본다.

이 표현 συμπόσια은 마가복음에서만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먼저 주목하여야 한다. 누가복음(9:14)은 κλισίας(klisias)를 사용하고 있다. 마가복음의 특징이 로마 문명권 독자를 고려한 표현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마가복음에서는 로마 어법의 군대용어(막 5:9의 Λεγιὼν 레기온, 막 15:16 Πραιτώριον 브라이도리온), 법정 용어(막 15:15 φραγελλόω 채찍질), 화폐 명칭(12:15 δηνάριον 데나리온, 12:42 κοδράντης 고드란트), 3:17, 5:41, 7:11, 34, 9:43, 10:46, 14:36, 15:22, 34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마가복음에서 오병이어 현장을 묘사하면서 로마 귀족들의 향연을 떠올릴 수도 있는 신포시아(συμπόσια)를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라틴어로는 convivium으로 묘사하지만, 더 익숙한 그리스어 표현 symposium을 사용했다. 평민들의 소박한 잔치를 두고, 고대광실(高大廣室)에 베풀어진 산해진미(山海珍味)가 부럽지 않다고 묘사하는 것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의할 것이 있다. 예수 시대 심포지움 또는 convivium이 갖고 있던 정체성이다. 로마식의 향연은 음주와 성적 유희가 어우러진 향락 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인용한 윤 교수(윤철원, 신약성서의 문화적 읽기(킹덤북스, 2013))의 오병이어를 그리스 로마의 문화적 이상과 일치된다는 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불편하다.

또한 ‘바닥에 기대어 누운 채로(ἀνέπεσαν)’ 오병이어를 즐겼다는 것은 일반적인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자세를 묘사한 것이다. 이 표현은 오병이어 기록 중 요한복음 6:10, 마가복음 6:40에서 묘사되고 있다. 이것을 두고 로마인들의 심포지움 장면과 연결시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예수께서 베푸신 만찬과, 예수께서 초대되신 만찬 모두가 그리스-로마의 문화적 이상과 일치된다는 점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 p.89.

이런 주장의 근거는 앞서서 언급했던 것처럼, 억지스럽다. 만약 이것을 입증하려면 예수 자신이나 예수를 따르던 이들, 예수를 초대하던 이들이 당시 서민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급스런 만찬을 즐겼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맺는 말

로마제국의 술 문화는 그들만의 것이었다. 그것이 유대교의 술 문화와 상관성을 보인다고 볼 수 없다. 그것은 종교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요인에 의해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신약 성경의 술 문화를 규정짓는 것은 부적절하다.

로마제국의 술 문화가 일반적이었고, 그 영향을 받은 유대사회의 술 문화도 일반적이었고, 신약성경 속의 예수의 술 문화 등에서 보듯이 그것은 아주 일반적이었다는 논증의 논리적 연결 고리, 논거는 전혀 없다. 저자의 섬세한 글쓰기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저자 성기문 목사가 그의 책에서 던지는 화두는 단순하다. 그러나 그것을 논증하는 과정은 빈약하다. 관련 주제를 다룬 다양한 자료를 넓고 깊게 검토하지 못한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1차 자료에 대한 사실 확인이 없어 보이는 것도 학자로서의 글쓰기 자세로서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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