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진화에 대한 세가지 견해
창조와 진화에 대한 세가지 견해
  • 정한욱
  • 승인 2017.09.1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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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랜드 외 지음 | 박희주 옮김 |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IVP) | 2001년
모어랜드 외 지음 | 박희주 옮김 |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IVP) | 2001년

이 책은 창조-진화논쟁으로 알려져 있는,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관련된 복음주의 기독교계의 세 가지 대표적 관점들을 체계적으로 비교하여 각 이론의 내용과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그 이론들은 다음과 같다. (1) 젊은 지구 창조론 - 창세기 1장의 6일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우주진화와 생명진화를 모두 거부하고 우주의 나이를 6천년-1만년 사이로 보는 이론으로 한국 창조과학회의 공식입장이다. (2) 나이든 지구 창조론 - 창세기 1장의 6일을 매우 오랜 기간으로 해석하여 현대 천문학과 지질학의 성과들을 수용하지만 생물진화에 대해서는 부정하는 이론이다. 한국에서는 ‘프라이드를 탄 돈키호테’ (SFC, 2009) 를 포함 최근 많은 관련 저작을 내고 있는 VIEW(Vancouver Institute for Evangelical Worldview)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의 양승훈 교수가 대표적이다. (3) 창조적 진화론, 혹은 능력으로 충만한 창조 - 창조계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우주진화와 생물진화를 모두 수용하는 이론으로 한국에서는 서울대 우종학 교수가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IVP, 2014)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주장했다.

양승훈 | 프라이드를 탄 돈키호테 기독교와 과학에 대한 한 창조론자의 반성 | SFC출판부 | 2009년

창조-진화논쟁은 과학, 신학-해석학, 과학철학등과 관련된 수많은 세부적 논점들을 가지는 상당히 복잡한 논쟁이기에 간단하게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좀 무리해서 여러 저술들을 통해 논의되는 각 이론들의 장단점을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은 생물학적 불연속성에 대한 수많은 증거들이 있기에 생물진화론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이론이며, 자신들은 1등급의 성경해석을 추구하기 위해 잠정적으로 천문학이나 지질학의 최신 성과들과 부합하지 않는 2등급의 과학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젊은 지구 창조론은 스스로의 고백처럼 주류 과학자 사회에서 지지를 얻지 못하는 취약한 2급의 과학이론 혹은 유사과학(pseudoscience) 으로 취급받고 있으며, 1등급이라고 주장하는 성경해석 역시 주류 복음주의 신학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극단적 문자주의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2) 나이든 지구 창조론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이 최근의 천문학적 지질학적 발견에 부합하면서 복음주의적 성경해석의 전통에도 충실한, 과학-신학을 모두 만족시키는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주진화는 인정하지만 생물진화는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학문적 일관성이 떨어지는 일종의 지적 타협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3) 능력으로 충만한 창조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우주진화나 생물진화는 이미 잘 확립된 과학이론이며, 이들에 대한 반대 증거로 제기된 자료들은 신빙성이나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몇몇 복음주의자들은 이 입장이 취하는 성경해석의 방법이 과연 복음주의 신앙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상당히 오래전 스쳐 지나가듯 읽었던 이 책을 다시 펴들게 된 것은 얼마 전 어떤 사이트에서 젊은 지구 창조 지지자 한 분과 만나 토론하게 되면서였다. 전공도 나이도 나와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나는 그분은 토론의 대부분을 주로 진화를 부인하는 창조과학 특유의 몇몇 증거와 관련 성경본문들을 나열하는데 할애한 후 마지막을 창조냐 진화냐를 선택하라는 엄숙한 개종의 권유 (라지만 사실은 거의 신앙을 시험하는 종교재판관의 협박처럼 느껴지는) 로 끝내곤 하였다. 이 책과 다른 관련 서적들의 도움을 받아 그분과 토론하면서 떠올랐던 몇 가지 단상들을 정리해 보기로 한다.

(1)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창조와 진화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며 한 쪽을 선택하면 자동적으로 다른 쪽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지의 여부는 ‘왜’ 라는 질문과 관련된 세계관의 영역에 속한 것이며, 진화란 그와 다른 차원에 위치한 '어떻게' 에 대해 대답하는 과학이론이기에 둘을 대립개념으로 보는 것은 일종의 범주오류이며, 과학이론으로의 진화와 세계관으로서의 창조에 대한 믿음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대다수 복음주의자들은 이 두 범주를 구분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만약 어떤 그리스도인이 아직도 이 논쟁을 신앙적 창조 대 불신앙적 진화의 대립이라는 구도로만 알고 있다면, 그는 아직 이 논쟁에 제대로 참여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확언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2) 과학자 사회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인정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창조과학자들은(지구의 나이가 6000년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21세기 첨단 과학의 시대에 무슨 수로 입증하겠는가?) 주로 주류 과학계가 받아들이는 이론이 틀렸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서 자신들의 이론을 정당화시키려는 전략을 취한다. 즉 생물 진화나 빅뱅이론과 같은 기존의 과학이론이나 그 이론의 기초가 되는 몇 가지 방법(예를 들어 탄소연대측정)이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젊은 지구 창조가 맞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백번 양보해서 진화나 빅뱅 이론이 틀렸다면 당연히 젊은 지구 창조론이 맞는 것인가?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빅뱅이나 생물학적 진화가 아닌 지적 설계자에 의한 직접 창조가 맞는다면 그 신이 알라나 외계인이 아닌 여호와여아 할 필연적이고 과학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 비과학성을 떠나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교만하고 제국주의적이며 기독교 세계 바깥에서는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서구 중심적 시각인지는 굳이 설명해야 할 필요조차 없다.

(3) 대다수의 창조과학 지지자들은 소위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무신론적 세계관과 동의어로 여기며 상당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러나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과학이라는 학문이 성립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요 작업가설이며, 엄밀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존재나 개입여부와 같은 세계관적 질문과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진리"라면 방법론적 자연주의라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연구된 자연이라는 책은 특별계시의 개입 없이도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 그리고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과학의 핵심적인 작업가설을 거부하면서 '과학'이라는 이름이 주는 권위의 달콤한 열매는 따먹겠다는 것은 일종의 지적 사기행위다.

(4) 어떠한 과학이론이든 그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논문의 형태로 동료심사 (peer review) 라는 과정을 통과한 후 재현이나 관찰을 통해 과학자 사회에서 입증 받아야 한다. 그러나 창조과학자들은 연구실과 학회에서 일반 과학자들을 상대로 분투하는 ‘좁지만 바른 길’을 가기보다는 그리스도인 대중들을 상대로 하는 강연이나 저술활동을 통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전파하려는 ‘넓고 편한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신들의 과학적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이 책의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과는 달리, 한국의 창조과학자들은 일반인들에게는 "젊은 지구"가 과학계에서 정식으로 인정받는 대항이론인 것처럼 활발히 선전하면서도, 동료 과학자 집단과는 자의든 타의든 거의 소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당대의 과학자 사회와는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고 자신들끼리만 교류하는 자폐증에 빠진 '과학'이론을 지칭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용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유사과학이다.

(5) 현대의 모든 학문 특히 과학은 세속주의 세계관에 의해 점령되어 있으며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은 현대의 과학계와는 소통 자체가 어렵다고 불평하는 창조과학자들은 당대의 과학이론을 혁명적으로 뒤엎는 지동설이나 진화론과 같은 이론을 주장했던 학자들도 자신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환경 속에서 심지어는 신변의 위협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분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허접하고 부실한 증거만으로 현대과학의 모든 기초를 뿌리부터 흔드는 주장을 하는 용감한 단체가 그 정도의 비판과 어려움도 감수하지 못하겠노라고 불평한단 말인가?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과학이란 원래 강연장이 아닌 연구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과학적 진리란 대중을 상대로 한 이야기책이나 자신들의 리그에서나 통용되는 질 낮은 논문이 아닌 당대 과학자 사회와 소통이 가능한 수준 있는 논문을 통해서 입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과학"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가지고 싶다면 자신의 빈약함과 초라함을 직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글쓴이 정한욱 님은, 우리안과 원장으로 일터에서 복음을 품고 살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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