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증을 쓰시오
차용증을 쓰시오
  • 유혜연
  • 승인 2017.09.1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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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연의 선교일기
<유혜연의 선교일기>는 A국에서 사역하다가 지금은 미국에 거주하며 다인종 교회에서 섬기며, A국을 오가면서 사역하는 유혜연 선교사 가정의 선교일기이다. 일명 ‘비거주 선교사의 선교이야기’이다. - 편집자 주

 

LA에 있는 Salt & Light Community Church

차용증을 쓰시오.

독립과 성숙, 이 두 단어는 어떤 유형의 사역을 하더라도, 항상 나의 마음속에 새기는 단어다. 예수 안에서 한 생명, 한교회의 독립과 성숙을 돕는 것이 나와 남편의 궁극적인 선교사역의 방향이다.

A국으로 선교를 떠나기 전 남편은 이민교회 교육목사와 선교목사로 사역하였다. 후방에서 선교사님들을 돕는 사역을 하면서 배운 많은 것 중에 중요한 한 가지가 ‘물질의 능력’이었다. 선한 의도로 시작된 물질 후원이 현지 상황 파악 미숙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덕스럽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적지 않게 보았다. 선교의 시작부터 우리 맘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다시 독립과 성숙이었다,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신중하고 의도적인 물질 후원만이 독립과 성숙을 가져올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사역을 진행하였다.

A국의 B도시 시내에서 두 시간 떨어진 소도시에서 허름한 판잣집을 빌려 교회를 개척한 젊은 현지 사역자 부부를 돕고 세우는 사역을 할 때의 일이다. 허름한 판잣집이지만 몇 명 안 되는 교인으로는 월세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주중에 장소가 활용되는 방법을 구상하던 중에 그 사모가 자기가 놀이방을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내게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돌아보면, 그 현지인 사역자 부부 스스로 대안을 생각해 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전하며 세달 이상을 보낸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놀이방이라도 이런저런 물품과 교재들이 필요했고, 교사 훈련도 필요했다. 교사 훈련은 우리 사역팀이 도울 수 있지만, 물품과 교재 구입은 목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마침 사업선교사이신 동역자가 사역을 위해서 헌금한 2천 달러 정도가 있었다. 그 정도면 당장 필요한 것들은 구입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신중하고 의도적인 물질 후원의 원칙을 갖고 있던 우리 사역팀이 머리를 맞대고 가장 지혜로운 방법을 의논하였다. 후원헌금이라며 간단히 건네주면 될 것을, 2만 달러도 아닌데(?) 회의까지 한다고 팀원들이 눈치도 주었지만, 원칙을 이행함이 결국은 그 현지 사역자부부를 독립하고 성숙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답이 나왔다, 차용증이었다?

헌금이 아닌 투자. 최선을 다해 놀이방을 운영하여 3년 안에 원금을 회수하는 내용의 차용증. 회수된 원금은 다른 사역자를 돕는데 재투자 한다는 설명과 함께. 이러한 상황을 전해들은 사모는 잠시 당황하는 듯싶더니 바로 차용증에 서명을 하며, 나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것은 나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했다는 웃음이었다.

놀이방을 시작하고 처음 6개월을 열심히 도왔다. 어느 정도 사역이 안정이 되면서 우리팀은 그 사역에서 뒤로 물러났다. 간간히 들리는 소식은 어렵지만 교회도 놀이방도 계속된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그 헌금을 다시 되돌려 받으리라 생각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는 것이 옳은 일이나, 그 ‘거저’가 현지인들을 독립하지 못하게 하고 스스로 성숙해 가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기에 기꺼이 남편 선교사가 차용증을 받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거의 3년이 지났을 때쯤 그 사모에게 연락이 왔다. 원금회수의 상황이 된 것이다.

선교지에서 듣도 보도 못할 일일 것이다. 차용증을 내어주고 내가 그 사모의 손을 꼬옥 잡고 기도했다. 한동안 우리는 그렇게 손잡고 울었다. 그 돈을 만들려고 힘들었을 그 어린 사모의 손은 내 손보다 훨씬 거칠고 투박했다. 좀 더 독립되어지고 성숙해진 그 하나님의 딸을 보며, 내 맘이 이렇게 기쁠 때 하늘 아버지는 춤을 추실 것이다. 혹시 들어는 봤는가? 헌금 전해주며 차용증 받는 선교사를...

 

글쓴이 유혜연 선교사는, LA에서 LA에 있는 Salt & Light Community Church 를 남편과 더불어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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